예술가의 수필⑤

 

나의 나비

 

 

                                                                                        이혜경

2010년이다. 언젠가 21세기가 되면 난 몇 살인가 하고 계산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도 멀고 긴 시간이라 계산을 하면서도 그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안했다. 아니 못했다.

그런데 2000하고도 10년이나 됐다. 12월30일 밤 12시를 기다리며 흥분도 하고 또 새로운 희망과 소망으로 가슴 벅찼던 그 시절은 어디가고, 빨리만 가는 시간이 무섭고 애석한 내 모습을 본다. 정말 똑같은 속도로 가는 시간이련만 왜 자꾸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음악가로 살겠다는 목표가 확실해져서 그것 이외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된 지도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 헌데 나는 아직도 연습에 쫓기며 항상 나 스스로를 꾸짖으며 살고 있다. 지금쯤은 아주 통달한, 멋있는 대가가 되었으리라 확신했던 그 시절은 어디 가고, 작고 부족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는 한심한 못난이가 서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만화 영화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변하는 그 영광의 장면을 그리고,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에 발을 넣는 그 감격스러운 장면을 꿈꾸면서 무수히도 내 앞날의 영광을 그리면서 살았다. 너무도 꿈이 커서 사춘기의 외로움도, 그리고 슬픔도 견딜 만했다. 항상 가슴이 울렁거리고 내일을 생각하면 다 견딜 만했다. 아마도 나는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이었나 보다. 지금도 악보 속에서 많은 만화 영화 장면을 본다. 그 영화 속의 음악도 내 귀에는 생생히 들려온다. 그래서 항상 나를 채찍질하면서 산 것 같다. ‘더 잘해야만 돼. 그래도 내일은 더 잘 할 거야.’라는 흥분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시 연세대학교 주최 콩쿠르에 나갔었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콩쿠르를 하는 강당의 2층에 기도실을 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 하느님께 기도했다. ‘1등 하게 해 주십시오.’ 가 아닌 ‘하느님 아버지가 보시기에 제가 노력한 만큼만 연주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께서는 내 기도에 당장 대답해 주셨고 그날부터 더 연습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살았다. 기도의 답이 올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면서도 내 속은 또 다시 희망으로 메슥거렸다. 참 한심한 아이였나 보다.

고등학교부터 미국에서 생활한 나는 외로움마저도 즐길 줄 아는 아이였다. 오늘의 외로움이, 아니 서러움이 꼭 나중에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과 희망으로 그 순간들을 미화시키며, 훗날 내 자서전에 필요한 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난 희망으로 내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메슥거림을 느꼈다. 엉뚱하기도 하지.

그런데 요새 문득 ‘내 뱃속을 날아다니며 메슥거리게 만들던 그 나비는 어디로 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분명히 있었는데…….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하거나 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난 아직 백조가 된 것도 아니고 유리 구두를 신지도 못했거든. 제발 돌아와 줘, 나비야…….” 난 나비를 찾고 싶다. 다시 그 메슥거림을 느끼고 싶다.

연주 때마다 나는 물속에 잠수한 기분이 든다. 수영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보이나 오로지 내 생각만 들린다. 무대에서도 똑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내 생각과 음악, 그리고 하느님하고만 대화하는 이 순간이 좋다. 버릇처럼 나는 시작하기 전에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던 똑같은 기도를 한다. 노력한 만큼만 연주하게 해주시고 아버지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이 순간 나의 나비는 분명히 난다.

올해의 목표는 분명히 내 안에 있을 나비를 구해내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날기를 힘들어 하는 나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 동안 너무 열심히 날았다고 칭찬도 해주고 싶다. 정작 뒤 한 번 보지 않고 날기만 하라고 재촉했던 나이든 나비에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꽃이라도 심어 줄 것이다. 이젠 즐기면서 향내도 맡으면서 날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안다는 그 말이 너무도 깊숙이 느껴진다. 나를 용서해주고 또 칭찬도 해주면서 그만큼 남에게도 자비로운 어른이 되고 싶다. 정작 지금 나의 모습이 백조가 아니고 또한 공주로 변한 신데렐라가 아니지만 나의 나비는 자비롭고, 지혜롭고, 세련된 어느 나이든 여인의 모습을 향해 또 열심히 날 것이다. 특히 유난히 춥고 눈이 많던 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

 

풀륫티스트: 미국 Manhattan 음대 박사.

Artists International 주최 Carnegie Recital hall New York 데뷔 독주회.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산시향, 부천시향, 등과 협연. 국외 연주 다수.

현재 단국대학교 음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