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다시 읽는 글 ⑭|

 

안인찬 편

 

 

                                                                              해설_ 최순희

미산米山 안인찬 선생님(1941~2005)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충북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한 농경제학자였다. 전공과는 달리 청년 시절에는 단편소설도 썼고, 1987년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하기 전에도 더러 수필을 발표하신 것으로 안다. 그러다 수필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자 한동안 매주 서울로 오르내리며 언론사 문화센터의 수필 강좌를 들었고, 이것이 정식 등단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이미 박사 학위를 소지한 현직 교수였던 점을 생각할 때, 수필에 대한 그분의 열정과 겸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인찬 수필의 특징은 별 대단하거나 거창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나, 작고 소박한 단서로부터 조곤조곤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궁극적으론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웃음이 묻어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제목부터도 얼핏 기억나는 것만 꼽아보더라도 <이래봬도>, <하다못해>, <아무거나>, <잘게 잘게 여사 만세>,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등등, 때론 다소 실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여기에 소개하는 <개비다 철학>과 <대답 솜씨 4단> 역시도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전자는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개똥철학 다음 장쯤으로 한 단계 나아간 철학으로, 머리 아프게 파고들고 물고 늘어지는 철학이 아니라 미루어 짐작하고 인정하고 접어두는 마음 편안한 철학을 일컫는다.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하고 장단을 맞추어 주고 침울한 얼굴을 보면 ‘혼자 있고 싶은가 보다.’하고 놓아두는 그런 철학. 웬만한 일엔 눈 지그시 감고 ‘…가 보다.’, 즉 선생의 고향 사투리로 ‘…개비다.’ 하고 받아들이는 관조와 달관을 곁들인 철학 정도가 되겠다. <대답 솜씨 4단> 또한 나이, 혹은 인생의 경륜이 쌓여감에 따라 문답의 도가 트이는 급수 혹은 단수를 선생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매겨 보인 작품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생전의 선생과 매양 정중한 인사만 나누었을 뿐, 서로의 대답 솜씨의 단수를 매겨볼 만한 것이건 뭐건 별로 대화를 나누어본 기억이 없다. 선생은 항상 단정하고 점잖은 외모에 진지하고 진중한 인상이어서, 그 ‘사람’과 웃음이 묻어나는 ‘글’이 어째 줄긋기가 잘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몇몇 선배들에게 듣자니, 선생은 진지하고 점잖은 인품이면서도 일단 입을 열면 의외로 소탈하고 부드럽고 재미난 이야기 솜씨를 지닌 분이었다고 한다. 4단에 족히 이르렀을 선생의 대화 솜씨를 직접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 선생의 대표작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2002년 제 20회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으로 《개비다 철학》(선우미디어, 2001)과 수필선집 《꽃 피는 봄날에》(좋은 수필사, 2009)가 있다.

 

 

대답 솜씨 4단

 

 

무슨 일이건 처음 시작할 때는 서툴고 어색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갈고 닦다 보면 솜씨가 생기고 마침내 예술의 경지 혹은 도道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허공에 내지르고 걷어차는 손짓 발짓이 어설프기 그지없다. 눈으로 본 가락은 있어서 열심히 흉내를 내어 보지만 익지 못한 동작이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가끔 내지르는 구호도 동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소리만 요란하기 쉽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도 몇 달을 지나면 기본동작이 몸에 익고 주먹에 굳은살이 생기면서 가끔은 어깨가 근질거리게 된다. 한 주먹에 상대방을 눕힐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한번 자기 주먹을 시험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걸핏하면 또래들과 한판 싸움을 벌여 말썽을 일으킨다. 아직 검은 띠를 두르기 전에 대개의 수련자들이 거치는 과정이다.

일단 유단자가 되면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동작이 매끄러워지고 몸조심을 하게 된다. 자기가 태권도를 한다는 표시를 좀처럼 드러내는 일이 없지만 시작했다 하면 바람을 가르는 동작과 부수고 자르는 파괴력이 보는 이의 혀를 차게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도복을 입고 있는 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도장 밖에서의 모습은 떡 벌어진 어깨나 솥뚜껑 같은 주먹이 그저 미덥게 보일 뿐 여간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다.

우리가 남과 대화를 하는 데에도 태권도의 경우처럼 솜씨가 있고 그에 따라 급수나 단수를 매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하찮은 대답을 하면서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거북한 대답도 부드럽게 해내는 일이 흔하니 말이다.

함께 살지 않는 할머니가 오랜만에 여섯 살 난 손자를 만났다. 볼 때마다 키가 자라고 아는 것도 늘어나는 손자가 할머니는 여간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물오물 과자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다 귀여운 나머지 할머니가 손자에게 물었다.

“얘 경호야, 할미가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아무래도 오래 못 살고 죽을 것 같다. 어떡하지?”

“할머니, 죽으면 안 돼요. 할머니가 왜 죽어요. 슈퍼맨!”

이러면서 손자가 자기에게 매달릴 것을 기대하면서 던져본 질문이다. 그런데 경호의 대답은 할머니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할머니! 죽으려면 우리 집에서 죽지 말고 다른 데 가서 죽어. 우리 집에서 죽으면 무서워.”

그리고는 과자봉지도 던져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기의 느낌을 꾸밈없이 표현한 경호의 대답 솜씨는 초단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휘두른 몸동작이 사람을 다치게 하듯 할머니의 감정을 상해 드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린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하고 받아넘기는데도 할머니는 ‘까짓 손자 귀여워해서 뭐 하느냐.’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경호야 단수가 낮으니까 대답 솜씨가 저 정도지만, 그보다 높아지면 사람을 데리고 놀려 한다. 아직 자기를 억제할 정도로 익지는 못하고 남의 의중을 넘겨다볼 만큼은 대답 솜씨가 생긴 것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사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젊은 신부가,

“세리와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하고 성경 말씀을 읽었다. 그 중에 세리라는 말의 뜻을 아는지 어린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무도 대답하는 아이가 없었다.

“그렇지, 여러분들은 객관식이라야 잘 알지. 그러면 다음 중에서 답을 골라 보세요. 세리란 1)훌륭한 학자를 말한다. 2)세금 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3)학교 선생님이다.”

여기까지 말을 해도 아무도 정답을 대는 아이가 없었다. 답답하다는 듯 신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4. 4…. 4는 무엇이라고 할까?”

그때 5, 6학년 쪽에서 합창처럼 답이 나왔다.

“예, 4번이 답입니다.”

4번을 무엇이라고 말도 안 했는데 그것이 정답이라니, 정답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신부를 놀리는 것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부모들은 신부를 데리고 노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운지 코미디를 보듯 웃고 있었다. 이래서 대답 솜씨 2단쯤 되는 사람을 대하기가 가장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답 솜씨가 3단쯤 되는 이의 대답은 비교적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진다. 그 대답을 들으면 마치 태권도 고단자에게 일격을 당하고 넘어질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얼떨떨하여 언짢고 어쩌고 하기 전에 나의 부족함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학생 때 속리산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문장대를 돌아 내려오는 길이 늦어져 산 중턱 어느 암자에서 낙조를 맞았다. 마침 한가로운 시간이었던지 스님 한 분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약수로 목을 축인 일행은 다리도 쉴 겸 스님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그럭저럭 스님과 대화가 시작되고 누군가 스님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스님이 입산하신 동기는 무엇인지요?”

그 무렵 우리 또래는 입산수도하는 이들에게는 실연을 했거나 가정에 큰 풍파가 있었거나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막연하게 짐작하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질문 참 잘하였다고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스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 만에 입을 연 스님의 대답은 실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나같이 하찮은 개인의 입산 동기가 학생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귀중한 시간에 더 뜻 있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해야지. 늦기 전에 어서들 내려가게.”

부끄러운 중에도 그때 머리를 스친 생각은 ‘아하! 어려운 질문에는 저렇게 대답하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스님 대답 솜씨는 3단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이름난 스님 한 분이 입적하시자, 그 분이 생전에 남기신 대답 한 마디가 여러 사람의 입에 올랐다.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들이 불안할 때 누군가 빛과 같은 한 말씀을 청하여 들었다는,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라는 대답 말이다.

‘우향우! 좌향좌!’ 혹은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같은 분명한 방향 제시를 원하던 세대에게 ‘산은 산, 물은 물’이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대답의 참뜻을 아는 이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훌륭한 분의 말씀을 모른다고 하기는 싫어서 대개가 체면치레로 ‘아, 그렇지.’하고 아는 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의 경지에 이른 무술인의 동작이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파리를 잡는 것으로 보였는데 난데없이 옆에 섰던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본다면 입이 벌어질 뿐 감히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그 스님의 대답 솜씨는 족히 4단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없이 말대답을 하면서 가끔은 대답 솜씨 4단의 흉내를 내어본다. 상대방이 무엇을 물어오건 눈을 지그시 감고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해두는 것이다. 상대방이 답답해하는 때도 있지만 그야 듣는 이의 수준을 탓할 일이다. 나로서야 어설픈 대답으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니 마음이 편안하기만 하다. 비록 어쭙잖더라도 높은 단수를 열심히 흉내내 볼 일이다. 그러다 보면 솜씨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비다 철학

 

 

어린이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다. 처음 보고 처음 듣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 것도 많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장미꽃을 보고 이건 뭐냐고 묻고, 장미꽃이라고 일러주면 또 장미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어른들은 질문을 성가신 것으로 여겨 어물어물 대답하고 때로는 ‘별걸 다 묻네.’하고 비켜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빠, 나는 어디서 나왔어?”하든지 “사람은 왜 죽어?” 하는 질문이 튀어나오면 ‘이놈 봐라.’하고 아이를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순간 대단한 천재를 옆에 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특하고 깊이 있는 의문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가 세월이 가고 이것저것 아는 것이 늘어나면 묻는 것이 줄어들고 하는 말도 평범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더러는 나이를 어지간히 먹고서도 철부지 시절에 가지고 있던 의문이나 고민을 어린애 젖꼭지 빨듯 오물거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그가 개똥철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비다 철학은 바로 이런 철학체계에서 개똥철학 다음 장쯤에 나오는 한 단계 나아간 철학이다. 그것은 머리 아프게 파고들고 물고 늘어지는 철학이 아니라 미루어 짐작하고 인정하고 접어두는 마음 편안한 철학이다.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하고 장단을 맞추어 주고 침울한 얼굴을 보면 ‘혼자 있고 싶은가 보다.’하고 놓아두는 그런 철학이다. 쉽게 말하면 엔간한 일엔 눈 지그시 감고 ‘…가 보다.’하는 짐작으로 소화하고 넘어가는 편안한 마음을 내 고장 사투리로 ‘…개비다’로 바꾸고 그 뒤에 흔히 쓰는 말 ‘철학’을 붙여 본 것이다.

주말의 청주 서울 간 고속도로 노선은 예매하지 않고는 이용하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예매를 한다 해도 서둘러야지 정오를 넘기면 자칫 막차 표를 구하기조차 힘들다. 예매한 차표를 들고 시내에서 동동거리다 보면 여유 있게 일정을 짜도 차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때가 적지 않다. 서울의 교통 사정이라는 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한번 막혔다 하면 한 시간의 여유쯤은 쉽게 길 위에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영락없이 타려던 차를 놓치고 고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차를 놓치는 사람 때문에 요행을 잡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예매한 손님이 안 온 자리에 5시간 후에나 떠날 표를 들고도 탈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노려 출발이 임박한 버스 앞에는 열 명 혹은 스무 명이 목을 빼고 줄을 서 있다.

하루는 차가 떠날 시각이 되었는데 바로 내 앞자리가 둘 모두 비어 있었다. 검표원이 “00시 손님 없습니까?”를 몇 번 외쳤다. 이윽고 젊은 여자 둘이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올라와 빈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검표원이 차를 출발시키기 위하여 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방금 자리에 앉은 이들 또래의 젊은 여자 둘이 급히 차에 올랐다. 그들이 성큼성큼 바로 내 앞자리로 왔다. 손에 들고 있는 표를 내밀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지금 막 왔지 뭐예요” 하는 말이 나에게도 들렸다.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내용을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올라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는 사람들은 차표를 미리 사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출발 시각에 맞추어 표를 가진 사람은 먼저 나오고 한 사람은 허겁지겁 늦게 도착을 한 것이다. 출발 시각이 다 되어도 동행이 오지 않으니까 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였을 것이다. 마침 자기 또래의 여자들이 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사정을 하여 표를 바꾸었을 것이다. 그 표는 방금 떠나려는 차보다는 30분인지 혹은 한 시간쯤 늦게 떠나는 것이었을 테고. 그런데 막 표를 바꾸고 돌아서니까 기다리던 친구가 나타난 것이다. 타려던 차는 아직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 30분이나 한 시간을 기다리려니 손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차로 올라와 사정을 하였을 것이다. 먼저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은 군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얼떨결에 차에서 내려갔다. 좋다가 말았다는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뒷모습이었다.

누구의 설명을 들은 것이 아니고 모두가 ‘…개비다’ 하는 나의 짐작일 뿐이었다. 이렇게 짐작을 하고 보니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뒤통수가 밉기만 하였다. ‘야 인마, 너 편한 대로만 남을 이용하기냐? 네가 필요하여 바꾸었으면 손해가 되더라도 뒤집지 말아야지. 금방 너 편한 대로 또 바꾸어 달라니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 아냐’하고 호통을 치고 싶기도 하였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앞자리의 두 여자는 마냥 즐겁게 입방아를 찧었다. 목소리가 크기도 하여 그 내용을 뒷자리에서도 다 들을 만하였다. 그나마 좀처럼 끝날 줄을 몰라서 조용히 좀 하라고 할까 싶었지만 그도 그만두었다. ‘저런 사람들이니까 저런 식으로 사는 개비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하여 본래부터 ‘개비다’ 철학자로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상당한 기간 개똥철학에 깊이 빠진 적이 있고 젊은이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대든 적도 있었다.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에 화가 나거나 언짢을 수도 있는 법. 그럴 때 나는 지긋이 참기보다는 기분이나 느낌대로 한 걸음 나서고 보는 편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었으나 그 결과가 개운하게 마무리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 어리석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을 보기 안타까웠던지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넌지시 제동을 걸어왔다. “까짓것, 개비다지 뭘 그러슈”하는 말로 자기의 철학을 전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창 화가 났던 터라 그 말 자체가 도움이 되기보다는 기분을 더 상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까짓것, 개비다지 뭐’ 하고 속으로 중얼거려보니 놀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알았다. 마치 대단한 주문이라도 외운 듯 효과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개비다 철학이 단순한 체념의 철학이 아니라 관조와 달관도 곁들인 철학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버스표를 두고 심란했던 것도 사실은 나 혼자였을 뿐 내 앞에 앉아 온 두 사람은 즐겁기만 하였다. 차가 떠나기 직전에 밀려난 두 사람 역시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나보다 훨씬 일찍 개비다 철학을 터득한 대가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개비다’로 끝내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까지 중언부언하고 있다. 어쩌면 면전에서 들이대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 개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