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에 대한 몇 가지 명상

 

 

                                                                                          김수봉

눈이 내렸다. 그것도 많이많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눈폭탄’이란 말과 ‘대란’ ‘마비’란 말을 거침없이 쓴다. 신문 방송은 일 만났다는 듯 북새통, 아수라장, 전쟁터 같은 가공할 말들을 동원해서 눈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게 한다.

갑자기 세상은 눈을 원망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도시는 교통을 마비시켰고 농어촌도 시설물들이 망가졌다고 야단들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눈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눈이 불쌍하다. 눈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예나 지금이나 눈은 하늘이 시키는 대로 내렸을 뿐인데….

소복이 내려쌓인 눈은 아름다움과 낭만을 가져왔고 풍요를 예감케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된 옛일이 아니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고요해진다. 사락사락 눈 쌓이는 소리, 자박자박 눈 밟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밤의 눈 내리는 소리를 ‘먼 곳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한 시인도 있지 않았는가.

눈이 내리면 나는 지금도 어린시절을 되살린다. 많은 눈이 쌓이면 더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나에게 그 많은 설렘과 기쁨을 주던 눈,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그 설렘 그 기쁨이 이렇게 간직되지 않았더라면 내 가슴은 세월의 켜에 묻혀 바래버렸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이 좋아했고 개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어른들은 “눈이 오시네.” “눈이 내리시네.”라고 겸허한 말로 눈을 맞이했으며 하얀 눈은 떡가루로 보았고 고봉으로 담긴 흰쌀밥을 연상했다.

그 시절엔 아무리 눈이 많이 쌓여도 눈에 갇힌다는 생각을 안했다. 그래서 눈을 다 치워버리지도 않았다. 산골은 물론 들녘과 읍내에서도 사람들이 내왕할 곳만 조금 치우고 눈이 녹기를 느긋이 기다렸다. 아니, 눈을 보며 눈과 함께 지내는 날들을 더 오래 즐기려 했다. 눈은 함께 봄을 맞을 자연의 일부이지 치워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눈으로 인해 한 식구가 오붓하고 따뜻하게 정을 나누는 날들로 여겼다. 뜨끈한 장판방에 엎드려 벗들에게 편지를 쓰고 친척네의 안부를 묻고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에겐 용기와 희망을 실어줄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날이 풀리고 길이 뚫려 우체부가 오는 날에 꼭꼭 당부하며 편지를 부쳤다.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풍경을 봉창구멍으로 내다보던 아버지는 문득 일어나 가축우리에 북데기를 더 따뜻하게 넣어주고 쇠죽솥에 불을 지폈다. 어린 아들도 탱자울에 깃털 부풀리고 오종종 앉아있는 참새 떼를 보다가 곡식 몇 줌 주머니에 넣고 나가 짚가리 근처에 은근슬쩍 뿌려놓기도 했다.

뒤뜰에는 눈을 인 댓가지가 한껏 휘어지고 처마 끝의 고드름은 날로 길어졌다. 눈 덮인 비탈밭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새해 봄에는 냉이와 달래 맛이 더 깊어지겠구나.” 하셨다.

‘친환경’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현대인이지만 실제로는 ‘역환경적’인 일을 자행하며 살고 있다. 예전의 눈은 자연의 일부로 여겼기에 추운 날씨를 만들어도 포근함으로 느끼며 살아가려 했다.

70여 년 전, 수필가 김진섭은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라고 <백설부>에서 단언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은 눈에 대한 서정도 낭만도 사라진 시대다. 눈은 다만 귀찮고 짜증스런 불청객으로 적대와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 눈 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눈썰매장 영업자나 상업적 돈벌이를 노리는 사람, 눈과 대결하고 정복의 쾌락을 즐기려는 스키어들이다.

서정도 낭만도 풍요의 예감도 주지 않는 눈, 이것은 현대의 인간이 불러온 또 다른 재앙이다. 어느 신께서 만들어라 했기에 인간은 스스로 거대도시를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자동차와 고도의 통신기기들을 만들어 놓고 원망을 늘어놓는가. 한 치 앞을 바로 본다면 초고속의 통신과 교통이 인간의 마음에 조급증을 키워서 속도 중독증에 걸리게 했다는 것을 알 텐데.

자동차를 몰랐던 시절, 백리길 걷는 것도 마땅히 그러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도 중독증에 걸린 지금은 단 오리를 걷는데도 짜증내는 사람들이 되었다. 자연에 순응하면 평안해진다는 것을 잊은 지 오래다. 자연과 대결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벅벅이 대든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억겁 년을 더 싸워도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눈을 눈대로 두기와 무엇을 함부로 만들지 않기를 다시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싶다.

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중략)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함민복의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백년만의 폭설이라는 눈이 나를 가두었던 지난 겨울, 나는 눈 덕분에 글 몇 편을 얻어냈다. 갇힘은 이렇게 생산적일 때가 있음을 알았고 고마워했다. 겨울에는 좀 갇혀서 살아볼 일이다. 그래서 느긋이 시간을 음미하며 ‘속도 중독증’도 치유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