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산정까지

 

 

                                                                                     남기수

동기動機

 

거제도로 내려간 지 여덟 달 쯤 되었을까, 일요일 어느 하루를 택하여 아침 일찍이 집을 나섰다. 지형과 섬 인근의 조망과 주변 안팎의 정돈을 위해서, 섬 안의 여남은 봉우리들 가운데에 하나를 오를 생각이었다.

바다 가까이 남쪽 홍포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망산望山 뒤로 다대산이 있고 그 뒤로 멀리 넘어지는 듯 높은 가라산이 전부터 마음을 당기고는 했었다. 거제도에서는 그중 높아서, 주위 인근의 뫼 봉우리들과 갈라져 내려오는 등성이들과 섬들 사이로 파고 든 만灣들을 내려다 볼 수 있기에는 큰 산이 부러울 바 없는 봉우리라고 여기고 있었다.

 

열림 - 인상

 

섬 가운데에 동서로 등뼈처럼 불거져 오른 고개를 넘어서면 한 눈 아래에 온 바다가 열린다. 턱밑까지 다가와 있는 광활한 인상을 대하는 때면, 돌연한 그 가까움이 언제나 놀람이었다.

고개마루턱에서 한 쪽에 차를 세워놓고 사방을 한 동안 둘러본다. 푸른 안개가 엉기어 있는 해금강을 바라보는 머릿속에 아득히 백로의 무리와 소나무 숲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 솔숲은 검은 빛깔이 깊다. 어선 한 척이 마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저만큼 거리를 두면 바다는 언제나 빛의 반점들로 가물거린다. 진녹색 만灣 안은 그대로 이들이들한 청포묵 같다. 어촌은 정적에 묻혀 있다. 그는 이러한 조망 앞에 한 동안 서 있다.

모든 것이 간밤의 휴식에 좀 더 잠기어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솔 숲

 

한없이 조용한, 어촌의 초등학교 교정. 학교 담벽과 인가들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른다. 하얗게 널려 있는 찔레꽃 향기가 잔풍스런 바람결에 진하게 날려든다. 닭 우는 소리가 무던히 한가롭다.

포장한 길이 끝나는 곳에 마당이 깨끗한 기와집이 한 채 있다. 대문 앞 박우물에서, 배낭의 사과를 꺼내어 씻어 넣고, 담을 돌아 나선다. 새소리, 꽃향기, 잉잉거리는 벌, 물 흐르는 소리가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길은 가장 귀진다. 오른쪽 길은 낡은 창고 곁으로 오르다가 묘가 한 기 풀에 덮여 있는 공터에서 끝난다. 되돌아 내려와서 잡아든 왼쪽은 가슴을 넘는 풀숲 길이다. 인적을 더듬어가며 풀줄기를 헤쳐 나가기를 삼십 분쯤 했을까, 울창한 솔숲에 햇살이 연푸른 은빛 발을 드리우고 있다. 물속처럼 고요하고 몸과 마음이 자못 새롭다.

외진 곳, 고요한 곳, 일상의 관계 밖으로 벗어나면 생각은 몇 줄기로 단순화하여 구체성을 띠기 시작하는 것인지, 마음은 뜻밖의 것들을 대하게 된다. 사람들에 대한 생각. 이어서, 산다는 것―대부분 본능을 좇는다. 따라서 사람들 그 아래에 흐르고 있는 자연성은 같다는 것, 이러한 생각들이 그의 하루 과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내면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에 놀란다.

 

풀밭

 

땀이 흐르고 안경에 김이 서리자 손바람을 일으켜서 시야를 몇 번 살려보다가 그늘에서 땀을 식히기로 생각을 바꾼다. 그런 뒤에 다시 산을 오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귓속이 막히고, 숨을 쉴 때마다, 귓속을 긁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솔숲을 벗어나자 첫 능선이 가까워지면서 경사는 완만하게 눕는다. 산잔등 위에는 부추 같이 포기 진 잔풀이 모숨모숨 가득하다. 넓게 풀밭을 이룬 풀줄기들이 간간이 지나는 산바람에도 허리를 꺾고 신들린 듯 몸을 떤다. 그 위로 하늘의 빛살이 물결 짓는다. 풀어헤친 본능이 즐비하게 누워있는 듯 눈이 부시다. 풀잎의 한 시절에도 굴종과 적응의 몸놀림이 저처럼 따르고 있다.

 

나신裸身의 군상群像

 

암석들이 고만고만한 돌 바위 지대―산잔등은 좌우로도 밋밋하여 사방이 저만치 물러선 가운데에 위쪽으로만, 빛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 쪽으로만 열려있는 느낌을 준다. 단조롭고 너른 사위는 환하게 드러나 있고 호젓한 가운데에 마음을 당기는 무엇이 잔잔하게 배어있다.

뭉긋한 산잔등을 휘이휘이 오르다가, 그는 자신이 무엇엔가 노출되어 있다고 문득 의식한다. 머리를 드니, 저 앞이 빛의 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꽂혀있는 광경이다. 어른 키 높이로 갈래진 나무 둥치들이 땅속에서부터 서로를 감아가며 서리서리 솟아오른 한 무리의 나무 군상群像이다.

몸을 꼬아가며 서 있는 회색의 둥치들은, 껍질이 얇고 매끈해서, 햇빛 아래에서 얼핏 투명한 살결처럼 속이 내비친다. 그렇게 부드럽고 맑은 줄기들이 주변 일대에, 빛의 후광 아래에서, 바람에 눈부시게 흔들리고 있다. 땅의 정기精氣가 그루마다 다발로 피어오르고 생명의 줄기들이 몸을 감고 돌아가며 더부룩한 채 머리로 솟아 있는 모습들은, 스스로 땅속에 뿌리를 박고 머리를 하늘로 들어올려서 온몸이 빛 속에 잠겨있는 느낌으로 그 자신을 끌어들인다. 천지간에 흐르는 빛의 중재를 몸으로 대신하는 쾌감의 갈래들 끝마다 새 잎들이 다복다복 붙어 있다. 신비로운 느낌이 해맑은 빛깔로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정화淨化의 화신으로 구불구불 서있는 태態들은, 몸마다 극치에 이른 모습들로, 하늘과 땅이 연緣을 맺고 있는 기이한 장면이다.

 

회색의 큰 바위들

 

산잔등을 비껴서 급경사로 내려가다가 길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들어선다. 집채 같은 바위들이 빙 둘려있고, 사이사이로 아름드리나무는 훌쩍 커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 휘휘한 곳이다.

둘러서 있는 회색 빛깔의 바위들이 회색의 공간 안에 들어선 느낌을 던져온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우꾼 싸돌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긴장한다. 동시에, 비극 <오에디프스 왕>의 무대장면이 떠오른다. 회색의 석상들이 원형의 무대를 둘러 서 있었는데, 극의 진행에 맞춰서 석상들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착각이려니 하여, 그 움직임에 처음에는 주의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무대의 장식인 줄로만 여겼던 석상들은 왕의 운명에 대한 신탁을, 신이 내린 듯한 몸놀림에 실어서, 영탄조로 읊조리고 있었다. 석상들의 몸놀림과 신탁의 괴이한 음조에서 드러나는, 한 운명의 불길한 전조에 속이 메스꺼워지고 소름이 끼쳤었다.

그는 비탈 벽 가까이 자그마한 돌을 하나 골라 가 앉아서 둘러서 있는 집채 바위들과 무대 위의 석상들을 연결지어본다. 크고, 무겁고, 어두운 배경들이다.

서늘하고 묵직한 정적 가운데서 모든 것이 몸과 더불어 가라앉기 시작한다.

불현듯 주변에서 낯설고 음습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듯이 느낀다. 그는 일어나서 산잔등 쪽으로 난 길을 빠르게 잡아든다. 밝은 데로 나오니 빛과 온기에 온몸이 그렇게 빨려들 수가 없었다.

 

산정山頂

 

가라산 남쪽 정상―어른 키 높이의 솔들뿐인 빈약한 정상. 벌떼 소리가 빛과 같이 산정에 가득했다. 산에서 정상을 탐하는 것은 그 위치, 하늘과 땅의 묘망渺茫을 맛볼 수 있는 곳, 그 관계를 조감할 수 있는 높이기 때문이다.

사방을 조망한다. 해무 위에 돋아난 듯 가까운 섬들, 운무에 떠있어 꿈같이 먼 섬들. 남동쪽으로 저구와 대포, 그리고 다대와 대포 사이에 솟아 있는 정봉이 홍포를 뒤에서 감싸고 있는 바위산, 망산望山이다. 거기서 이쪽 편으로 해금강의 진초록 덩이가 엄지로 가운데를 꾹 눌러 놓은 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바다로 내밀려 있고 그 너머로 섬, 섬과 해금강 사이로 배가 지나다닌다. 다대 포구의 방파제, 부두, 어선들, 양식장, 논밭―도로가 해안 가까이 산기슭을 구불구불 포구를 향한 실뱀 같고, 적갈색 네모진 경작지들이 조각보처럼 야산을 덮고 있다. 뭇 인적들이 발 아래 한눈에 들어와 있다.

산정은 하나의 점일 뿐, 오르던 열정은 올라서면 다음 점을 향하여 이미 떠나고 없다.

 

수작酬酌

 

박우물이 있는 인가에 이르렀을 때, 주인 남자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가 그에게 말인사를 건넨다.

“어데서 오는 길입니까?”

“가라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입니다.”

“일행이 없이, 혼자서요?” 대답 대신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그 주인 남자 말은 다음과 같았다.

“다음부터는, 혼자 몸으로는 올라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환청幻聽

 

우짖는 새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