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한원준

전라북도에는 부안이 있다. 그리고 부안에는 염전이 있다. 아직 염전이 남아있다.

한 때 바닷가 전체가 염전이었고, 끝없이 펼쳐진 염전에선 언제나 소금 만드는 소리가 덜컥덜컥 시끄러웠다. 그러나 값싼 외국 소금이 밀려들어오고, 힘든 일을 마다하는 사람들 덕에 지금 염전은 서럽도록 조용하다. 거기에 늙은 번철씨네 부부가 남아 있다.

칠흑 같은 밤, 염전에선 파도 소리가 들린다. 번철씨가 소금밭을 긁는다. 너까래로 염전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소금을 거두어들인 염전을 청소해야 다시 깨끗한 소금을 만들 수 있다. 염부는 밤새 일을 한다. 그리고 낮에는 토막 잠을 잔다. 번철씨 부부도 언제나 그렇게 일을 했다.

이른 새벽, 어둠은 달아날 생각도 않는데 부부는 염전으로 나가 소금을 거둔다. 부인은 삽으로 흰 소금을 퍼 담고 남편은 외발 수레를 밀어 창고에 소금을 쌓는다. 해뜨기 전에 이일을 끝내야 다시 바닷물을 받아 소금을 만들 수 있다.

서둘러 염전 바닥을 긁어 소금을 퍼 담고, 번철씨는 양수기를 돌려 바닷물을 끌어온다. 염전으로 들어온 바닷물은 칸을 옮겨가며 증발해 점점 더 짜지고, 점점 맛이 짙어진다. 소금은 기다림 자체이다. 땡볕아래 장화 속이 땀으로 가득 찰 때까지 염전 바닥을 오가다보면 그제야 꽃이 핀다. 소금꽃이 희게 피면 소금이 열리기 시작한다.

소금이 알갱이로 만들어지면, 염부는 넉가래 같은 삽을 밀어 소금을 모은다. 그리고 모아진 소금에서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려 다시 염전 바닥을 긁어 소금을 수레에 싣는다.

모은 소금을 창고에 쌓는다. 창고에 쌓인 소금에선 물이 줄줄 흐른다. 간수가 빠지는 거다. 간수가 빠지면 광물이 잘 배인 천일염이 된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해요?”

소금 만드는 법을 전혀 모르는 내가 어눌한 목소리로 묻자, 노부인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비도 맞고 그래야죠. 햇볕도 잘 맞고, 바람도 잘 쐬고 그래야 소금이 달어요.”

소금이 달다는 말을 난 염전하는 아낙의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쓴 소금을 맛본 기억이 났다. 친구들은 ‘중국 소금이라 그래’ 하고 쉽게 말했지만, 포장지엔 분명 ‘서해 소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중국의 바다는 동해다. ‘서해 소금’은 우리나라 소금이어야만 했다.

양수기를 틀어 소금밭으로 바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번철씨가 아내 곁에 와 앉는다. 예전엔 수차를 밟아 바닷물을 끌어들였다. 그래서 옛 염부들은 모두 무릎이 부서졌다.

“우리가 만든 소금이 아마 작은 산 하나는 되았을 것이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 수다가 는 부인이 자꾸 입을 놀린다. 번철씨는 그냥 주름 많은 웃음으로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다.

“안 아픈디가 으어요. 무릎이랑 허리랑.”

부인은 손가락도 아프다는 듯 목장갑을 벗어 굵어진 손마디를 눌러본다.

“날 만나서 그렇지….”

“그려도 우리라도 남아서 소금을 만들어야지. 안글면 우리나라 소금이 완전히 으어져 부려요.”

그저 모든 것에 미안한 남편이 입을 열자마자 아내는 다른 소리로 남편의 말을 닫아버린다. 몸 아픈 것이 남편 탓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소금은 농사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처럼, 힘든 농사다. 그래서 소금 만드는 사람들은 염전을 소금밭이라 부른다.

갯바람이 분다. 바람을 향해 실눈을 뜨고 뻘을 뛰는 망둥이를 바라보던 번철씨는 몸을 일으켜 외발 수레에 담겨 있는 소금을 쥐어 맛을 본다. 이방에서 온 낯선 이에게 우리 소금이 맛있다고 시위하는 중이다.

소금은 서해의 맛이다. 오천 년 동안 이 반도 안에서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안고 먹여 키워왔던 바다의 맛이다. 소금은 태양의 맛이다. 그 긴 세월동안 반도 안의 모든 생명들을 살리고 살찌웠던 태양의 맛이다. 그래서 소금에 바다와 태양과 바람이 간으로 배어 짜고 달고 고소하다.

번철씨는 양수기를 멈추고 소금이 쌓인 외발 수레를 밀어 창고로 들어간다. 오늘 젓갈 만드는 사람들이 소금을 사러 온다고 했으니 소금을 포대에 넣어놔야 한다.

아침해가 등 뒤에서 올랐는데, 바닷물이 들어온 염전이 반짝인다. 서해 바다가 우리 몸 속으로 스며들어 생명이 되기 위해 여기 들어와 있다.

해가 하늘 위로 오른다. 이제야 염부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염전 위를 이리 저리 오가며 소금을 쌓던 염부의 장화도, 긴 넉가래도, 바닷물을 부리던 양수기도 멈춘다. 늙은 염부와 그의 아낙이 집으로 돌아가, 시장으로 소금을 내다 팔기 전에 잠깐 눈을 붙인다. 이제부터는 해가 일을 해야할 시간이다. 태양이 염전을 달구어 바닷물을 끓인다. 그 위를 부는 바람도 물을 말려 싸라기 눈 같은 소금 꽃을 피운다.

하루종일 염전을 달구고 구워대던 해가 진다. 염전 위를 힘들게 불던 짠바람도 이제 잠깐 멈춰선다. 그러면 염부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마른 땀인지 소금인지 허연 알갱이가 붙은 장화를 신고 소금밭으로 다시 나온다.

부안엔 염전이 있다. 거기엔 까맣게 늙은 부부가 남아 흰 소금을 만들고 있다.

 

 

《계간수필》로 등단.

저서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