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일상사도 이곳에 오면

 

 

                                                                                          배채진

주머니를 뒤져 꾸겨진 종이를 끄집어냈다. 입은 조끼에는 주머니가 많다. 현장을 누비는 사진가들이 즐겨 입는다는 ‘돔키’(DOMKE)라는 이름의 조끼다. 이 옷 입고 뭘 하나 꺼내려면 손을 아래위, 앞뒤로 헤매게 해야 한다. 심지어 등 뒤에도 주머니가 달린 까닭이다. 분류해서 넣는다고는 하지만 손은 아직도 헤맨다. 끄집어낸 종이에는 김복진 시인의 <욕지도에서>가 적혀 있다.

‘물의 일상사도 그곳에 오면, 아무렇게 널브러져 바다와 하늘과 산, 그 사이에 누워 어느덧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라는 욕지도에 가는 길이다. “커피 마실라요? 탈까요?” 아내가 묻는다. 떠나온 뱃머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른 시간이다. 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출발하여 도착한 통영 산양의 삼덕 항이다. 서둘러 집을 나서느라 마시지 못한 커피였다. “타라. 마시자.” 달음박질 바삐 하는 섬들을 뒤로 보며 마시는 선상의 커피는 또 다른 운치였다. “욕지도에 가면 바람이 아무렇게나 불어댄단다.” “누가?” “욕지도 시인의 말이다. 봐라, 내 종이에 안 베껴왔나.” “안으로 들어가서 책이나 볼라요.” 책은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이다. 사실 오늘은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기로 한 날이다. 예정을 바꾸어 욕지도로 가는 바닷길이다. 산으로 가려다가 바다로 왔다.

욕지도, 이는 내 생각의 구석진 곳에 지속적으로 붙어 있는 주제의 하나였다. 나는 이 섬을 모른다.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욕지도는 내 인식의 창고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봐서 친숙해지는 주제도 있고 들어서 친숙해지는 주제도 있다. 욕지도는 들어서 친숙해진 주제일 것이다. 유년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때 내가 뭘 봤고 뭘 들었는지 지금 확연히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래서 내 인식의 창을 백지라고 하고, 듣거나 본 것이 그 위에 기재된다는 가정법을 써본다. 그리고 유년기 이 무렵에 형성된 개념들을 모어母語라고 말해본다. 떠오르는 대로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이다. ‘내가 넘은 삼팔선’ (영화), ‘느티나무 있는 언덕’ (책), ‘어디로 갈까?’ (영화), ‘니야카쟁이 큰들 사람들’, ‘욕지도’, ‘대마 종 또 오키나와’ (고구마), ‘대평 무시’(무)…. 무나 배추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진주 저 안쪽의 큰 들을 출발, 삼사십 리를 달려 사천장에 대기 위해 어둔 새벽에 우리 집 앞길을 왁자지껄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니야카쟁이’라 불렀다. 그들은 그때 내게 부지런함의 표상이었다.

욕지도, 고구마 때문일 것이다. 당시 우리 집은 밭이 많았고 논이 적었다. 우리 집은 고구마를 많이 경작했다. 황토여서 품질이 단연 좋았다. 삶아서 파는 고구마 장수 아주머니들의 일등 구매상품이었다. 우리나라 고구마는 욕지도에서 시작되었다고 그때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고구마와 더불어 익힌 개념이 욕지도일 것이다.

“섬은 작고 바다는 크다는데요.” 읽던 책을 들고 나와 두어 곳을 펼친다. “새삼, 무슨? 당연한 말을.” 배가 소리를 낸다. 기적汽笛이다. 도착할 모양이다. 멀리 선창이 보인다.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욕지도라고 한다. 난 연화도인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바다는 길이요, 섬은 집이라는데요. 섬은 독립이고 바다는 자유고….” 책을 접어 배낭에 넣는다. 배는 기적을 또 울린다. 안개가 끼었더라면 무적霧笛인데 안개는 없다. 포구는 그 앞의 섬 허리에 가려져 있었다. 등대가 보인다. 빨간 등대 노란 등대, 등대가 둘이다. 배가 항구로 들어갈 때 오른편으로 보이는 등대 색은 빨간색이고 왼편으로 보이는 색은 흰색 아니면 노란색이라고 한다. 옆 사람에게 들어서 알게 된 지식이다. ‘동산 같은 섬’을 급히 찾았다. 왼편에 있었다. 글쓴이의 ‘마음의 등대 섬’이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작은 섬이었지만, 의미의 안경을 쓰고 보니 다른 섬이 된다. 섬의 흔들리는 나무는 나를 기다리다 부르는 손짓으로 된다. 이때부터 나는 유의미의 다리를 건너기 시작한 것이다. 욕지도, 이 섬은 나의 섬이 아니고 태어난 이들과 사는 이들의 욕지도이지만, 이때부터 이 섬은 나의 섬으로 된다. 오키나와 와 대마도 고구마, 유년시절의 상상 속 욕지도가 비로소 눈앞의 욕지도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배가 섰다. 기다리는 듯한 표정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주 다니는 배여서 그럴 것이다. 내린다. ‘바람이 아무렇게나 부는지, 물의 일상사도 이곳에서는 널브러지는지,’ 그건 아직 모르겠다. 보통의 바닷바람이고 그냥 바닷물이었다.

내리니 광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터가 크다. 울릉도의 배 대는 곳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매표소로 들어갔다. 돌아가는 배표도 미리 사고, 이것저것 물어볼 참이다. “어제 전화하신 분 맞지예?” 자기가 받았다고 했다.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계속 웃는다. 웃음이 고구마처럼 푸근하다. 한 대뿐인 마을버스 서는 곳을 손가락질해 주었다. 욕지도 고구마를 먹어보고 나가셔야 한다고도 했다.

버스가 왔다. 길은 계속 바다 위 언덕이었다. 기사는 자기를 땜질기사로 소개했다. 사량도에서 오라고 하면 사량도로 가고 신수도에서 오라고 하면 신수도로 가며, 한산도에서 오라고 하면 한산도로, 연화도에서 오라고 하면 연화도에 가서 섬 버스 핸들을 잡는다고 했다. ‘유동’이라는 이정표의 마을에 버스가 선다. 탈 사람이 없다. 좀 기다리니 아래 마을에서 숨 가쁘게 올라온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기사에게 건넨다. 삶은 고구마였다. “먹다 매킬라,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 먹으라.” 라고 물병도 함께 건네면서 당부를 한다. 고구마를 건네받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섬 끝까지 가자는 것을 걷기 위해 한사코 내렸다. 내려, 앞의 유동마을 등대 산으로 갔다. 가는 길은 고구마 삐알 밭이었고 길가엔 빼대기가 길게 널려 있었다. 고구마 섬에 온 실감이 물씬 풍겼다. 섬엔 우리만 있는 것 같았다. 이 좋은 섬 길을 우리 둘만 걷고 이 좋은 전망의 자리에 우리만 앉아 있는 게 미안했다. 옆에 먹땡깔이 있어서 땄고 가져온 감이 있어서 또 깎았다. 이 자리를 우리 자리로 하자고 했다. 봄에 또 오기로 했다. 손가락 걸었다. 도장 찍었다. 사인했다. 사인 장을 손바닥에 철석 부쳤다. 앉아서 보니 과연 바람은 아무렇게나 불어대는 것 같았다. 저만치서 이는 파도는 시간의 무게를 한 아름 안은 것으로 보였다. 다시 돔키 조끼 주머니를 이곳저곳 뒤져 종이를 꺼냈다. 이번엔 소리 내어 읽었다.

‘욕지도 노적 마을에 가면 아무렇게나 불어대는 바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바람에 나부끼는 장승들이 꺼이꺼이 소리 내어 한바탕 울고 나면 파도는 저만치 낯선 시간의 무게를 안고 떠내려 옵니다. 그리고 나서 파도는 몽돌 사이사이 하루의 안식을 할 채비를 합니다. 어스름 그림자는 제 갈 길을 찾았는지 고른 숨을 몰아내는 파도 위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물의 일상사도 이곳에 오면 아무렇게 널브러져 바다와 하늘과 산 그 사이에 누워 어느덧 길고 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욕지도에서 / 김복진)

노적 마을, 걸어서 가기에는 먼 길이다. 그래서 그곳의 발걸음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어서서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가 기념관으로 서 있는 섬 초입 마을로 향했다. 돌아보니 욕지도 고구마 삐알 밭이 저만치서 누워 있다. 그 아래 바닷물은 이리저리 거품을 일으킨다. 그 거품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지는 이곳 바닷물의 일상사로 보였다.

 

 

《계간수필》로 등단(2004년).부산카톨릭대 교수.

부산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