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失語

 

 

                                                                                          김 광

‘애비는 머슴이었다.’고 고백한 어느 시인의 흉중이야 다 짐작할 순 없지만 나 역시 자랑거리도 아닌 일을 토설코자 하는 건, 빈번한 여행으로 제법 자유롭게 생활하는 내가 주위에선 신기하고 이상도 했을 터, 부끄럽지만 스스로 껍질을 벗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아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게 있었다. 해 묵은 노트 한 권- 혼자 애들을 키우면서 써 온 육아일기이자 제 어미에게 느꼈던 배신감,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온 단절의 기록들이다.

녹녹치 않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혼자 울고 혼자서만 말하는 시간이 겹으로 쌓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늘 전의戰意를 다져주던 봉수대의 불빛…… 그 신호가 아들에게 전이돼 애비의 세월을 조명하며 활활 타오르길 바랐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고향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늦은 밤 도서관 문을 닫을 때라야 가방을 챙겨 나오는 나를 정문에서 맞아 주던 그녀가 참 고마웠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같은 시내에 살면서도 매일 편지를 쓰는 기염을 토했었다.

십년쯤 살았지 싶다. 하지만 나의 결혼생활은 법관의 짤막한 판결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어떻게 하든 파경만은 막아보려고 몇 년을 버텨봤지만 끝내 인연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세상에 던져진 나는 모든 게 싫었다. 늦은 밤에 잠을 청할 때 아파트 마당에 켜놓은 가로등이 베란다를 넘보는 것도 싫었고, 퇴근해 집에 오면 인기척 없는 현관에서 어둠이 ‘훅’하고 대드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다. 직장에 장기병가를 내놓고 잠적했던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강원도로 제주도로 온 산천을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그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마음만 더 답답해 올 뿐…….

나의 방황을 가로막은 건 언제나 애들의 눈망울이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한술 더 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고약한 병까지 생겨버리자 자연히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산 속의 키 작은 꽃을 보는 게 더 좋았고, 모임에 나가서 어울리는 것보다는 해안 절벽을 도는 파도를 따라 걷는 게 더 좋았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억새 꽃술이 허옇게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타들어 가는 하늘을 우러르며 시를 조아렸고, 밤이면 눈썹달이 졸랑졸랑 따라오는 남쪽의 강가를 터벅이며 글을 생각했다. 그렇게 글에 빠지다 보니 마음 속 응어리가 조금은 용해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한밤중에 작은 애가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른 적이 있다.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더니 탈장脫腸이란다. 축 늘어진 아들이 링거주사를 팔에 꽂은 채 병원침상에 누워있는데 날이 밝았다. 그날따라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아픈 애를 두고 출근할 수도 없고, 출근 안 할 수도 없었다. 밖에 나와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무는데 구두 끝으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애들 어미가 그 때처럼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이 다시 경련을 일으켰다. “에이 모진 사람”하고 원성이 터질밖에, 하지만 어쩌랴 애가 그 지경이니 두 눈 딱 감아야지. 나는 할 수 없이 공중전화로 발길을 옮겼다. “애가 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출근해서 급한 일만 처리하고 바로 올 테니 그 때까지만 애 옆에 있어줘” 그 때 내 목소린 땅이라도 꺼진 듯 기어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애들 어미는 와 주었고 어미를 본 아이의 얼굴엔 대번 화색이 돌았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애를 볼 때 기운을 차린 것 같은 아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제 어미를 보고 새새거리는 게 영 마뜩찮았다.

‘할 수 없지…….’ 그 사건이 있은 뒤부터 나는 애들과 제 어미가 만나는 걸 모르는 척 묵인하기로 했다. 아마도 어미와 자식 간에 이어진 끈, 그것만은 못 이긴 척 인정해주고 싶었던가 보다. 하긴 갈라선 건 나와 제 어미지 애들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 싶었다.

감정을 삭이는 수단으로만 이용됐던 그 시절의 여행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게도 해주고, 자연의 넉넉한 품을 가르쳐준 것도 같다.

이제라도 가슴 한 편에 두어 뼘 채마밭을 가꾸며 살 요량이다. 무얼 더 바라겠느냐? 아침이면 강가에 나가 산책로도 따라 걷고 석양이면 붉은 술 한 잔 마시고 흥얼대면 그만이지, 그러다 명치어림에 더운 김 올라오면 사진가방 챙겨서 길 뜨면 되는 거고.

독신이기에 이만큼의 자유도 허락받고 가슴에 한 가닥 서정이라도 품을 수 있으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지 싶다. 그러기에 운명은 거부할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시련이 있으면 그 만큼의 보상도 있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에 지닌 한을 자식에게 상속해 주려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다행히 애들은 밝게 자라주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손때가 묻어 귀가 헐린 노트, 원망과 한이 줄줄이 섞여 있는 그 기록들을 이제 나는 아들 몰래 불사르려 한다. 오랫동안 날 결박해온 미움에서 벗어나 더 자유스러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용서? 용서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원래가 인간은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자유였다. 맨몸뚱이 자유가 성장하면서 허물을 입게 된다. 이렇듯 결점뿐인 게 인간들인데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이제 그만 잊자. 하지 못한 말, 잃어버린 말들은 가슴 속에 묻어 두자. 먼 산을 바라보듯 조금은 무망하고 청정한 눈빛으로 세상을 돌아치자.

어디선가 겨울강의 얼음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까무룩 숨을 죽이는 불씨 하나…….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수필》로 수필 등단(2004년). 계수회 동인.

시집 《바람이 사는 나라》, 《구름 몇 장 내게 주더니》,

공저 《시인의 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