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새 집

 

 

                                                                                     이예경

병원에서 요양 중이신 아버지를 지난 연말에 집으로 모셔왔다. 15개월이나 지내셨으므로 퇴원하시자고 했더니 일단 열흘 정도 집에서 머물러 보겠다고 하셨다. 병원에서는 주 1회 목욕을 했지만 집에서는 목욕을 매일 하고 조용히 쉬고 싶다고 하신다. 그리웠던 집에 오셔서 자손들의 세배도 받으시고 식구들의 서비스를 받으시며 연말연시를 잘 지내시다가 다시 병원으로 가신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같은 병실 할아버지들이 대환영을 해주신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더 반기시는 것 같다. 특히 매일 바둑친구가 되셨던 분이 얼굴이 제일 환하다. 아버지가 집에서는 별로 웃지 않고 신경이 예민하신 것 같았는데 병실에 오셔서는 활짝 웃으신다. 그래서 다행이긴 한데도 왠지 마음 한쪽이 짠하다.

파킨슨병 5년, 방광암 수술 2번 등 보행과 용변이 모두 불편하신 아버지를 집에서 간병하기가 너무 힘들어 요양병원에 처음 모셔다 놓고 식구들이나 아버지 자신이나 모두 심기가 불편했었다. 죄지은 것 같아 꿈자리가 사납고 아무에게도 말하기가 싫었다. 며칠 후에 뵈러갔더니 침대 머리에 ‘힘써 나가자’라고 크게 붙여 놓으셨고 이발소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 열흘 만에 퇴원하시며 이게 고려장이 아니고 뭐냐고 하셨는데, 이후 1년 동안 집에 계시며 건강이 악화되자 결국 자진해서 이곳 공기 맑은 산속의 요양병원을 선택하셨고 회복의 기미가 보여 한 달 두 달 지내다보니 어느새 해를 넘긴 것이다.

병실 할아버지들은 진심으로 좋아하셨을 것이다. 의사가 매일 점검해주고 간병인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곳이니 환자들은 걱정이 없다. 그러나 집에서는 식구들이 기쁜 마음 반에 간병 걱정 반이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움직일 때마다 일일이 부축해 드려야하고 기저귀를 갈아 드려야하고 이동 시에는 전문 간병인만큼 편하게 옮겨 드리는 일이 쉽지 않다. 아버지 자신도 기쁜 마음과 함께 자신이 불편할까봐 우려를 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집에서 열흘 지내는 동안 다리 힘이 더 약해졌고 컨디션이 나빠졌다고 하셨다. 병원에서는 일과표에 따라 매일 물리치료 받고 친구와 바둑을 두고 교회에도 가며 무료하지 않게 지낼 뿐 아니라 이동 시엔 청년 간병인이 번쩍 들어 받혀주고 환자 식단으로 정시에 식사를 했으나, 집에서는 종일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시니 운동이 전혀 안 된다. 식사는 환자식보다는 기호대로 절제 없이 하시는데 그래야 즐거워하시니 말릴 사람이 없다. 일탈을 위하여 휴가를 나오신 것 같다. 병원의 어떤 할아버지는 집에만 다녀오면 탈이 나서 중환자실에 실려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식구들 사정은 어떨까. 아버지 간병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반나절만 있어도 안다. 팔십 노구의 어머니는 열흘 동안 골병이 들으신 것 같다. 나도 하루 간병해보면 저녁에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고 하루는 쉬어야 회복이 된다. 그래서 매일 4시간씩 건강보험 적용되는 사회복지 도우미를 불렀는데 생각보다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속옷을 갈아입을 때, 기저귀 갈 때, 취침 전에 목욕 등에 도움이 필요한데, 도우미는 아침 9시에 와서 1시에 가니까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을 못 받고 식사 시에 생선 가려주는 일, 같이 점심 먹은 후 설거지 정도였다. 그러니 나머지 일은 어머니 차지가 된다.

식구들이 최선을 다해도 힘이 부치고 환자는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아 신경이 날카로워지니, 정말로 식구를 간병한다는 일은 남을 간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단한 일인 것 같다. 남남이면 서로 포기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식구끼리는 포기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면 괴로운 상황이니 현주소에선 부부가 병원과 집으로 떨어져 살면서 병원에서 가끔씩 만나고, 집에 나오시면 사흘 정도 머무심이 적당한 것 같다. 그 이상은 양쪽이 다 상처만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이 보인다. 행복했던 옛날은 이젠 한낱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니 나이 든다는 것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렇게도 건강하고 멋있고 자애롭고 성공적인 삶을 사신 아버지의 노후의 인생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모습들이니 말이다. 하긴 자연의 모습들이 다 그렇지. 굵은 나무줄기 가운데가 푹 파인 고목나무 등걸, 가을이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 그 향기롭고 아름답던 꽃잎이 속절없이 땅에 떨어져 갈색으로 말라버리는 장미꽃….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 다시 넓게 보면 자연은 그냥 데려가지는 않고 후손을 남기게 해준다. 가는 쪽이 절망이고 불쌍한 것은 잠깐이고 새로 태어나는 쪽은 희망과 기대에 차 있고 축복 받는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인생의 춘하추동이 차례대로 지나가고 거슬러 갈 수는 없다.

노인이 가는 길이 천당이라 확신한다면 누구나 즐겁게 기다려질까? 신심이 깊은 소수의 노인들은 확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걸 보면 상식적으로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누구도 한번 가면 돌아와 가르쳐준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초행길은 긴장과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위로가 되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노인의 가는 길에 옆에 있어주고 기도해주고 손잡아 주는 것이 그런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성경을 읽어드리고 찬송을 불러드려 본다. 껴안아 드리며 작별인사를 하는데 아버지의 차갑고 딱딱한 등이 느껴진다. 어릴 적에 졸립다고 하면 탄력 있고 넓은 등으로 업어주셨던 생각이 떠오르고 속절없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젠 병원이 아버지의 새 집인가 보다. 집에 와서도 눈앞에 자꾸만 환자복 입으신 노인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잠은 오지 않고 밤은 깊어만 간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우리도 곧 노인이 될 터이다.

 

 

《자유문학》으로 등단(2003년).

남태령 수필동인회 회장. 과천문협 부회장.

공저 《내 마음에 불이 켜질 때》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