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애타愛己愛他

 

 

                                                                                     권혁승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면서 살았을까? 그 명제를 가지고 아무리 전전긍긍을 해도 얻어지는 한 가지는 ‘아니다.’라는 씁쓸한 결론뿐이다.

칠십을 넘게 살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은 없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을 헤쳐 나가며 전투를 하는 것처럼 살아왔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저 그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듯 술이나 마시면서 지냈다. 그나마 두 번이나 저 세상을 구경한 다음에야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고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본들 잃어버린 소가 돌아오지 않듯이 이미 잃은 건강을 회복하긴 너무 힘이 들었다. 지금도 매 끼니 때마다 각종 약이 내 손에 들려 있을 뿐이니. 이런 내가 과연 남을 사랑했을까. 사랑한 것 같지 않다. 아내를 사랑했는지, 자식을 사랑했는지, 과연 내가 살아온 내 삶에 사랑이 있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본다.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듯 사랑이 그리워진다.

어떻게 하고 사는 것이 사랑하고 사는 것인지 그저 멍하니 생각만 할 뿐이다. 빈 들에 허깨비처럼 서 있는 허수아비같이 살아온 것 같다. 먼 지평선을 향해 두 팔 벌려 세상을 얻은 것 같은 허세를 부리는 허수아비처럼 빈 껍데기 같이 생각되는 건 나의 치기稚氣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랑! 그 사랑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됨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흔하다고 말한다. 그저 밥 먹듯 쉽게 하는 사랑이 정말 사랑일까? 온 인류를 자신의 죽음으로 구원한 예수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사랑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부처의 사랑 또한 인류애니. 그런 거창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단 한 사람을 위해 소중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안타깝게도 에고이즘(egoism)이다. 이기주의에 물든 세상에서 사랑은 더 이상 숭고한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남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 사랑을 가장한 일들이 얼마나 세상에 가득한지 돋보기보다 더 크게 확대되어진 세상의 사랑은 오늘도 헛된 이름으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향한 연민으로 극적인 에고에 빠져 남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내 배가 고픈 줄 알아야 남도 배가 고픈 줄을 안다. 배고픈 설움을 겪은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굶는 사람들을 보면 울 줄 안다. 예전엔 콩 한 쪽도 이웃과 나눠먹던 시절이 있었다. 다 같이 굶주리면서도 옆집의 끼니를 걱정해주며 밀가루 풀죽이라도 한 그릇 덜어주던 시절은 날씨마저 코끝이 얼 정도로 추웠지만 사랑이 있어 훈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웃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해질 정도로 메말랐다.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콘크리트 벽 속에 굳어져 버린 사랑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애달파 한다.

나도 사랑 애달파 한다.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간행물윤리 위원장.

전 서울 경제신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