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 선생과 <만년>

 

 

                                                                                   박재식

많은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며 생각이 내킬 때마다 찾아 읽는 꼭 한 권의 수필집이 있다. 피천득 수필집《금아 문선琴兒 文選》이다. 지난 세기의 88년 가을, 두 번째 수필집을 낸 내가 그걸 우편으로 증정하기가 송구하여 직접 드린다는 핑계 삼아 반포아파트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 선생께서 내게 주신 책이다. 평소 ‘수필의 우상’으로 섬기는 분이 손수 서명까지 하여 주신 책이니 나로서는 정작 가보로 삼을 귀중본이 아닐 수 없다.

숫기가 없어 관직 생활 30년을 지내면서 요긴한 상사의 집 한번 찾아가 본 적이 없는 내가 감히 졸저를 들고 당돌하게 선생을 찾아뵙는 만용을 부린데는 그럴 만한 내 깐의 연유가 있었다. 그로부터 6년 전에 내가 첫 수필집을 내고 그걸 국내 수필가들에게 무작정 뿌리다시피 돌렸는데, 뜻밖으로 선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책을 받았다는 수인사가 아니고, 그 중 어느 작품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며 작품 내용에 담긴 대목까지 극명히 챙겨 칭찬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한낱 무명 수필가가 보낸 책을 읽기까지 하여 주시다니, 자상하신 선생께서는 후진에 대한 애정 어린 격려에 불과하셨겠지만 망외의 전화를 받은 나는 그때만큼 망지소조罔知所措의 정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그에 고무된 내력을 밑천삼아 전화를 드려 승낙을 받고 찾아간 것이다.

내가 처음 들러보는 반포아파트 단지는 공원처럼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고층빌딩들이 다투어 군림한 강남의 번잡에서 물러앉아 차분한 여유와 평온을 간직하고 있는 도심 속의 보기 드문 전원 주택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토박이 서울 태생인 선생이 일찍이 아홉 평짜리 셋집에 사시면서 충청도 어느 시골에 ‘아홉 평 건물에 땅이 오십 평이나 되는 나의 집’을 마련하여 노후를 지내기를 소망하셨는데 (수필 <도연명>과 <나의 사랑하는 생활>), 결국 차선책으로 이곳에다 주거를 정하셨구나 하고 집작이 갔다.

선생이 사시는 54동 206호를 찾아 조신스럽게 벨을 누르니 마치 기다리고나 계신 듯 이내 현관문이 열리며 선생께서 얼굴을 내미셨다. 단구의 노안에 맑은 미소를 담은 선생의 모습은 처음 뵙는 분 같지 않은 친근감이 와닿아 나의 서먹한 긴장감을 금세 녹여 주었다. 집 안 넓이는 9평짜리 집을 소망하신 선생의 취향에 적합한 크기의 처소 같았다.

문간의 응접실로 안내한 선생은 손수 방석을 권하면서 앉으라고 하셨다. 정색으로 꿇어앉아 수인사를 하려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지하면서 “나는 박선생을 잘 알고 있어요” 하며 편히 앉으라고 하셨다. 이어 노사모님이 녹차 잔을 들고 들어와 자리 앞에 놓기에 일어서서 인사를 드리려고 몸을 추스르자 이번에도 그냥 앉아 있으라고 말리시고 사모님은 그런 낌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돌아서 나가셨다. 짐작컨대 숱하게 찾아오는 후진이나 제자들을 치르는 허물없는 접대의 소박한 절차인 성하였다. 청결하게 정돈된 세 평 남짓한 응접실은 남쪽 유리창으로 바깥이 환하게 내다보이는 양지바른 방이었다. 방 한 켠에 아담한 타자기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돌배기 아기만한 서양 인형 하나가 달랑 얹혀 있었다.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외동따님 서영이에게 사 준 ‘난영’으로 명명한 인형이라는 것이 대뜸 짐작되었다. 방 안의 유일한 집물인 탁자도 서영이가 사용한 책상임이 분명할진대 선생은 장성한 서영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그녀가 쓰던 방을 거실 겸 응접실로 삼아 따님에 대한 노후의 애틋한 사랑을 어루만지는 성하였다. 미상불 내가 “저 인형이 난영이가 아닙니까?” 하고 운을 떼자 선생은 신들린 사람처럼 서영이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지금은 어엿한 물리학자로 성장하여 미국의 대학에서 전신 장애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조수가 되어 그가 개발하는 우주 과학의 첨단 이론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영문 잡지들이 꽂혀있는 책꽂이에서 그런 기사가 실린 팸플릿을 끄집어내어 자랑하셨다. 그 새로운 이론의 요점까지 들어 설명하는 선생의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표정에는 이루 무한한 행복한 기색이 감돌았다.

선생은 <이야기>라는 수필에서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초면인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격의 없이 하셨다. 그 숱한 이야기가 지금은 기억에 남은 것이 없지만, 다만 내가 선생의 건강을 살피는 말에 뜻밖에도 근자에 소화불량 증세가 생겨 대학병원에 갔더니 암 검사를 받고 그 결과가 며칠 후에 나온다고 하시기에 걱정을 드렸더니, “뭐 이 나이까지 여한 없이 살았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수롭지 않다”고 담담하게 하신 말씀이 선생의 넉넉한 인품과 함께 기억된다.

내가 들고 간 봉투에서 졸저를 꺼내어 드리고 일어서려니까 선생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며 안으로 들어가 이윽고 양장으로 장정된 그 《금아문선》을 가지고 나와 내게 주셨다.

아시다시피 《금아문선》은 출판사 일조각一潮閣에서 69년에 발간한 선생의 시문선 《산호와 진주》에서 80년 그 중 수필만을 분리하여 낸 수필집이다. 내게 주신 책은 바로 그 해인 88년에 갓 나온 증정 중판본增訂 重版本인데 여기에는 선생의 전 수필을 망라한 78편의 작품이 수록되었고, 특히 초판본에는 없는 <만년>이 말미에 실려 있다. 과작인 선생께서 70대 후반에 쓰고 절필하신 마지막 수필임이 분명하였다.

만년을 맞은 취향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선생의 책을 들출 때마다 마치 청량한 공기를 심호흡하듯 이 마지막 수필을 재삼 음미하며 깊은 감명에 젖곤 한다. 원고지로 두 장 남짓한 글 속에 그저 근황을 묻는 말에 피력하는 얘기처럼 담담하게 실린 만년의 생활과 심경 속에 선생의 그 주옥같은 수필 세계와 아름다운 생애가 농축되어 댁에서 뵌 선생의 모습과 더불어 와 닿기 때문이다.

금년은 선생의 탄생 백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라 선생께서 주신 책이 한층 보배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