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안인희

영화 ‘버킷 리스트’는 심심해하는 노인들이 볼 만하다. 제목만 보면 무슨 얘기인지 짐작이 안 간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우리말로 직역하면 ‘바께쓰 목록’이 되겠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영어로 ‘바께쓰를 걷어찬다’는 말이 있는데 죽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니까 설명을 한다. 목매달아 죽을 때 우선 나무에 밧줄을 걸고 그걸 목에 감고 난 후 밑받침이 된 바께쓰를 걷어차면 죽게 된다는 말이란다. 옛날 서부활극의 사형장면을 상상 해보면 알 수 있겠다. 이 제목을 우리말로 풀이해보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 되겠다.

간단히 줄거리를 추려 보면, 늙은 남자 두 사람이 우연히도 한 병실에서 암 치료를 받고 있다. 하나는 백인 ‘잭 니콜슨’이고 다른 하나는 흑인 ‘모건 프리먼’이다. 둘 다 폐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앞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은 성숙된 어른의 모습이 아닌 젊은 얘들의 활기와 순진한 표정이다. 백인은 일인용 침대나 특실을 싫어하고 이인용 병실을 고집하는 이 병원이 소유주라 부자다. 흑인은 자동차 정비소 직공으로 가난한 노동자이지만 딸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하고 자신은 역사학 교수를 희망하는 해박한 지식인이다. 백인은 그 괴팍한 성격이 한눈에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몸에 배어있고 흑인은 착한 눈매와 두툼한 입술이 그의 끝없는 인내심과 넓은 아량을 말해주고 있다. 두 사람은 말기 암 환자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비슷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백인 남자의 눈에 띈 게 있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구겨진 종이 한 장. 펴보니 ‘버킷 리스트.’ 흑인이 쓴 거다. 일 번부터 이십 번까지 번호를 붙였는데 첫째가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것, 그것도 다른 차 말고 머그탱 차로. 다음은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등 등… 호기심에 끌린 백인은 종이를 버리지 못하고 자기의 것도 그 리스트에 첨가한다. 더 화려하고 더 웅장한 것, 아프리카의 사파리 여행, 중국의 만리장성,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등반, 등 또 뭐가 있더라. 적어놓기만 한 게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보는 거다. 늙었지만 우람한 체구의 두 남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가 솟아나고 게다가 무엇보다 아무리 퍼 써도 마르지 않는 돈이 있겠다.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재미를 맛보게 되었다. 백인은 흑인이라는 만만한 짝꿍이 있어 즐겁게 신바람 나게 돈을 쓸 수 있고 흑인 또한 괴팍스럽기는 하지만 외로움을 간직한 백인의 속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 꿈 같은 동반여정이 실현될 수 있었다.

결국, 흑인 아내의 간절한 청을 꺾지 못하고 백인은 싫다는 흑인을 강제로 끌고 병원으로 돌아온다. 목록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흑인은 수술 중 죽게 되고 백인은 장례식에 끌려나와 조사를 읽으며 목이 메인다. 혼자가 된 백인이 황혼의 창밖을 내다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장면. TV 디너(TV를 보며 한 끼 때우는 간이식사)의 겉봉을 뜯다가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통곡을 하는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 하다. 확실히 니콜슨은 명배우다. 이 백인 노인은 그 동안 네 번이나 이혼한 경력이 있을 뿐, 혼자 살다 늘그막에 흑인 친구를 만나 짧으나마 잠시 행복을 맛보았다. 행복은 지난 다음에나 알게 되지 미리 알 수는 없는 거다.

목록의 번호가 많이 지워지기는 했지만 흑인이 가버린 후, 백인은 맥을 놓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소원인 히말라야 산 정복은 이루지 못한 채, 그 역시 저 세상으로 갔다. 영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게 한다. 그의 비서인지, 어떤 젊은이가 눈보라치는 히말라야 산꼭대기에서 백인의 유골과 흑인의 유골을 한 곳에 묻어주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미국 영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좋아 한다. 나이 들면서 나도 그런 걸 좋아하게 되었다. 스크린이 꺼지자 나는 다리를 길게 뻗으며 눈을 감았다.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 같은 데가 있나보다. 허긴, 인간이 만든 창작물의 대부분은 어린이의 꿈과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의 소원은 결국 자동차 경주나 고공낙하가 주는 스릴을 맛보는 거다.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은 평생 남아 있는가 보다. 하여간, 그 영화 덕분에 많은 곳을 구경했고 게다가 입장료도 없는 비행기 안에서 관람할 수 있었으니 지루함도 느낄 새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나에게도 하고 싶은 게 있나? 혹시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 얼른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겠다. 어떻게 늙는 것이 좋을까? 인생의 끝마무리는 역시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보통 무심히 세월을 보내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가령 불치병에라도 걸리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수명이 늘어 백세가 평균수명이 된다 해도 너무 오래 살아 민망하다는 사람은 없다. 오래 산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하는 참담한 경험도 포함되는 것인데… 누가 그런 걸 바랄까.

신체적인 노쇠는 아무래도 무력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러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마음 편히 먹고 맞아드려야 한다. 어설프게 젊은이 흉내를 내 빈축을 사지 말고 의연하게, 유머로 받아 들여 자기를 지켜야 한다. 다른 말로는 자존심을 잃지 말자는 거다.

또 한 가지, 노욕을 억제하기 위해 체념할 줄 알아야 한다. 체념은 무기력한 것과는 다르다. 적극적인 의미로 자신을 양보하는 아량인데, 젊은이를 향한 질시의 눈초리를 거두고 품위 있는 눈길로 보아야 한다. 그들의 실수를 눈감아 주고 보다 넓은 그리고 더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습관이 몸에 밸 때 노년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죽음 또한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지. 누가 그런 영화 하나 만들었음 좋겠다.

 

 

전 이화여대 사범대학 학장.

전 이화여대 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