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꿈 같은

 

 

                                                                                     유혜자

친구와 함께 줄장미로 예쁘게 가꿔진 골목을 따라가니 널따란 정원이 있는 주택 앞에 다다랐다. 돌층계를 올라 초인종을 누르고 조바심하며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 집 정원이 아니라 밝아오는 내 집 창문이었다. 새벽에 잠깐 꿈을 꾼 것이다. 꿈도 어차피 픽션이니 줄거리도 그럴 듯하고 주제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은 너무 짧은 꿈이다. 나는 이런 꿈을 자주 꾼다.

신년이어서 “좋은 꿈 꾸셨어요?” 하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자의식이 약해지는 50대 이후에는 예언적 의미 있는 꿈, 행복과 불행 등 변화를 알려주는 꿈을 꾸게 된다는데 어떤 예시적 꿈일까?

꿈에서 본 집은 어렸을 때 자주 가보고 싶던 곳이다. 어른들이 고대광실이라고 하던 Y씨네 저택은 마당도 넓은 데다 울안에 옥녀봉玉女峰의 비스듬한 산자락을 끼고 있어서 온갖 나무와 화초로 수려한 정원을 꾸며 놓았었다. 등꽃으로 둘러싸인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바위틈에 층층이 작은 꽃송이가 피어올랐고 연못 속의 비단잉어가 짙푸른 수초사이로 넘나들었다. 평평한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난만했는데, 한쪽에 우아하게 피어 있던 백장미는 우아한 품격으로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다.

먼 일가였던 그 댁에 할머니와 함께 방문했을 때 대접받은 꿀물과 입안에서 살살 녹던 한과의 향긋함도 잊을 수 없지만, 상상도 못할 정원의 화려함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몇 달 후 집주인이 중병으로 요양 가서 다시 방문할 수 없던 나는 몇몇 친구와 용기를 내어 그 집 초인종을 누르고 누군가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린 일이 있었다. 문을 열어 준 새 아주머니는 정원에서 얌전하게 놀다 가겠다는 어린 이들의 당돌한 간청에 웃지도 않고 승낙해 줘서 두어 번 찾아 갔었다. 얼마 후 중병이던 집주인은 돌아가셔 전설 같은 뒷이야기를 무성하게 남긴 채 그 저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본 적이 없는 것은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 시절에 본 꽃들을 자랑했고 추억의 자산으로 삼았었다. 50년이 지나 고향에 들렀을 때는 그 집이 오래 전에 헐렸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예시력을 지닌 꿈은 암호처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점술가를 찾아가 묻기도 한다. 구약에서 애굽왕 바로는 이상한 꿈을 꾼 후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에게 해몽을 부탁해서 닥쳐 올 7년 가뭄의 위기에 대비할 수 있었다. 윤흥길의 《장마》에서도 그런 예시적 꿈 얘기가 재미를 돋운다.

“내 말이 틀리는가 봐라. 인제 쪼매만 있으면 모다 알게 될 것이다.어디 내 말이 맞능가 틀리능가 봐라”

외할머니는 간밤에 어금니가 빠지는 꿈을 꾸고 곧 다가올 어떤 불길한 일에 대한 예시임을 이렇게 강조한다. 이날 밤 멀리서부터 동네개가 요란하게 짖더니 구장님이 찾아 와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전한다.

이런 예시와 달리 현실에서 지닌 잠재적 욕망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판소리 《춘향가》의 <몽중가>가 그렇다.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십장가를 부르며 곤장을 맞고 기절한 채 옥에 갇힌 춘향은, 중국 순舜임금의 두 아내 아황·여영이 사당 <황릉묘皇陵廟>에 초청하여, 절행節行이 장한 춘향을 환대하고, 장독이 풀리는 약을 준 후, 죽으면 서편 빈교에 앉혀주겠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곤고한 현실에서 춘향은 꿈으로나마 억울함을 위로 받는다.

나의 꿈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앞날의 밝은 청사진을 꿈꿀 나이도 아니니 정원이 좋은 집 대문 앞까지만 다다른 꿈은 개꿈일까? 상징적인 의미나 화려한 미래를 기대할만한 젊은 나이도 아니라서 내 꿈은 해몽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다만 미래의 청사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길몽을 꾸고 싶은 욕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초월적 영역이지만.

그런데 꿈 속에서 멋있는 정원 집 대문 앞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기 전에 깨어버리는 것을 개꿈이라고 포기해버리기에는 아깝다. 꿈은 깨었지만 그 시절 화려한 꽃들, 장미꽃 향기와 함께 즐기던 기억들이 거의 생생하게 재생되기 때문이다. 가슴이 살며시 아려 오는 통증과 함께 되새겨지는 지난날의 기억들. 비록 허전하고 가슴 속이 아려도 테이프를 되감고 다시 돌리듯 자주 그 꿈이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허전한 것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이지만, 그런 추억의 발자취라도 남기지 않았다면 한번 다녀가면 그만일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앞으로 멀리 나가면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뒤돌아보고 싶은 발자국도 없었다면 멀리 걸어간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인생이란 종착역에 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삶의 의미 아닌가? 가다가 산에도 오르고 들에서 거닐며 새소리도 듣고 꽃도 꺾고 친구도 만나는 것.

그 큰 집 정원에 가서 놀던 기억도 그렇다. 다른 어떤 기억보다도 거기서 놀던 기억만큼 아름다운 것이 얼핏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꿈이 깨면 허전하고 가슴이 쓰리기도 한다. 가슴이 아리고 쓰리다면 그것도 하나의 상처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아리고 쓰릴 수 있는 상처가 있고 이걸 다스리며 살고 싶다. 그것은 아름다운 기억을 재생시키는 과정에서 어차피 치러야 할 아픔이기 때문이다. 작은 가슴앓이를 지불하고 몇 곱 소중한 추억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