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김국자

책상과 나와의 처음 만남은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치면서 시작되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떼를 쓰며 도리질을 하다가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치면서 책상과의 인연을 맺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인연으로 내 이마에는 상처가 생겼는데 자라면서 그 상처가 주름으로 변하여 흉터로 보이지 않고 주름으로 보여주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구 중에서 책상만큼 가까이에서 늘 사용하는 가구도 드물 것 같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책상과 만나면서 세상을 살고 있다. 우선 어린 시절 학교에 가면 책상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책상과의 만남이 수십 년 아니 평생을 가는 사람도 있다.

세상 일이 책상 위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책상 위에서 땅을 가르기도 하고 파기도하고 큰 건물을 세우는가 하면 헐어내기도 한다. 그뿐이랴 책상 앞에 마주앉아 세상을 흔들어대는 회의도 하고 회의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상은 얻어맞기도 한다. 도가 지나치면 뒤집혀지기도 하고 다리가 부러지는 수도 있다. 책상이 무슨 죄가 있다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나무 책상일 경우는 그 상처를 더 심하게 받는다. 곰보 같은 상처, 칼 맞은 흉터, 담뱃불로 지진 자국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 상처 때문에 책상 위에 받침을 대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못할 정도로 골이 파진 책상도 많다. 책상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억울할 것 같다.

나와 정면으로 부딪친 책상 말고도 책상에 대한 추억이 많다. 육남매가 자라는 집은 각자 책상을 갖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방의 한 벽면의 길이에 맞추어 책상을 만들어 주셨다. 서랍이 달린 책상이 아니라 다리만 서있는 책상을 벽에 붙여 세 명이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 여고 시절의 꿈은 그 책상에서 꾸었던 것 같다. 책꽂이 위에 사과 한 알을 올려놓고 잠을 쫓으며 시험공부를 하다가 참다못해 사과를 다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와 엎드려 잠을 잤던 기억도 있다. 동생들과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하다보면 10분을 못 참아 말을 걸게 되었다. 서로 말을 걸지 말자고 약속을 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책상이 있는데도 나는 밥상을 들고 다니며 공부를 했다. 안방 건넌방 마루를 누비며 조용한 곳을 찾아 밥상을 내려놓고 공부를 했던 기억도 있다.

밥상을 들고 다니며 공부를 해서인지 자연스럽게 밥상을 들고 다니는 주부의 위치로 바뀌었다. 그리고 책상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방바닥에 엎드려 가계부정리나, 어쩌다 쓰는 일기, 편지 카드 정도 쓰는 일이 전부이었으니까 책상은 생각도 못했다. 대신 아이들 책상에만 신경을 쏟고 살았다. 책상 위나 서랍 속에 공부에 지장을 주는 물건이 있나를 살피면서 아이들 책상 정리를 해주며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군대를 가거나 공부하러 외국으로 나가도 그들의 책상은 내 책상이 될 수 없었다.

여자들은 결혼하면서 혼수로 장롱,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용품을 장만해 가면서 책상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본인이 쓰던 책상도 버리고 간다. 신혼집을 가보아도 직업이 특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주부의 책상이 있는 집은 드물다.

그런데 나에게도 책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책상이 하나 있었으면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야만 책을 꺼낼 수 있는 책장 앞에 조각무늬로 장식한 격이 있는 책상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옛 선비 방에서 본 오동나무 연상硯床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도 희망 사항이고 그저 소박한 나뭇결에 대패손이 그대로 들은 그런 나무 책상이면 했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은 나도 책상을 가지고 있는 여자로 위치를 확보해 나가는 첫걸음이며 나를 찾는 작업이기도 했다.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여자가 소설을 쓰려면 연간 오백 파운드의 고정수입과 책상이 있는 자가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제 적인 독립은 물론 정신적인 독립을 지적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리적인 공간의 의미보다는 개인이 제대로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을 지칭했다.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도 나는 책상 없이 책을 두 권이나 내었다. 식탁이 책상이고 거실의 티 테이블이 내 책상이 되었다. 식탁에서 글을 쓰다가 식구들이 들어오면 쓰던 원고를 주섬주섬 추려서 놓고 식탁에서 일어나야 했다. 글쓰기에 깊숙이 빠져 있던 상념과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뚝 멈추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프여사의 말대로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충실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아들 내외가 미국으로 떠났다. 여분의 방과 책상이 생겼다. 육십이 넘어서야 이런 공간이 생길 줄이야!

서둘러 서재書齊를 꾸몄다. 책장을 짜서 책을 정리하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를 설치하고 옆으로 프린터기도 장만했다. 번듯한 내 책상이 생긴 것이다. “보따리 장사는 이제 그만이야” 하며 혼자 좋아했다.

자, 이제는 내 책상도 확보했으니 불후의 명작이 나올 것 같다.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공상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창조의 과정을 도스토예프스키는 고역이라 했다. 책상 앞에서 꿈을 꾸며 소설보다 더 참되고 시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 고역을 달게 치를 각오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글이, 아니 생각이 어디로 간 것인가? 책상 앞에 앉아 “시작”이라고 외쳐보지만 글은커녕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애꿎은 책상만 두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