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체험

 

 

                                                                                     신현복

지금 생각해 보면 일 년도 채 안된 지난 겨울의 일이었음에도 오래 전의 일인 듯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나의 일상과는 너무 판이했던 힘들고 벅찬 시간들이었기에. 우리가 살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겪어야 하는 것도 알게 해 준 특별한 체험이었다.

약수로 이름난 중소도시의 작은 호텔 앞에 여행가방 두 개를 덜렁 내려놓고 도망치듯 차를 돌리는 남편의 옆얼굴을 볼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인 줄 몰랐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서 도착한 집합장소에는 몇몇 젊은 남자들과 커다란 가방을 끌며 들어오는 젊은 청년들뿐 내 또래는 물론 여자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중년쯤으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와서 내심 반가워했더니 뒤따라 오는 딸아이를 데려다 주러 온 부모인 것을 알고, 그제야 내가 올 곳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남편의 차를 타고 되돌아 갔을텐데……‘무식이 용감’이라는 말이 지금 나의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임을 그 와중에도 떠올랐다.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이 직원을 연수 보내서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데 일이 많아 갈 사람이 없다고 하기에, 그냥 참석만 하면 되느냐고 했더니 한 달 정도 합숙하면서 강습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내 생각으로는 남편의 사업도 도울 겸 여행하는 기분으로 집을 떠나 내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멋진(?)착각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적지 않은 연수비를 내서 등록을 하고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문인협회나 수필가협회에서 주최하는 지방 세미나정도로 생각한 세상물정 모르는 나의 한심함이라니. 여행하듯 조금은 들뜬 기분과 호기심으로 마음을 정한 나의 경솔함에 대한 후회와 무모한 착각을 원망하는 동안 정해진 시간이 되자 행사장 앞에서는 관리자인 듯한 몇 사람이 등록한 참석자들의 사진과 신분증을 확인하고 몇 권의 책과 일정표를 나누어 주는 등 연수원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삼주 동안 교육을 받을 교육장에는 책걸상이 속해 있는 회사와 이름이 적힌 명패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고 벽에는 교육 받을 연수생의 이름과 속해 있는 회사, 직책, 생년월일이 함께 적혀 있었다. 연수생 오십 명 중 여자는 나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뿐이었는데, 그보다 나를 더 황당하게 한 것은 연수받을 과목과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전공한 사회학은 고사하고라도 이십 년 가까이 문학에만 접해왔던 나에게 꿈에도 상상을 못했던, ‘데이터의 정리 및 분석’ ‘확률과 분포’ ‘통계적 추론’ ‘신뢰성공학’이라니. 꼬박 삼 주 동안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한 시간과 시간마다 십분 휴식을 제외한 강의시간과 저녁식사 후 취침 전까지의 자율학습도 일정에 있었지만 수강과목에 비하면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문학이 아닌, 꿈에서 조차도 생각하기 싫은 그 과목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학, 과학이 싫어서 대학도 문과를 택하고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 선생님만 멀리서 보여도 돌아서 가던 내가 이 나이에 ‘확률과 분포’를 해야 하다니, 마지막 시간에는 시험을 봐서 한 과목이라도 과락이 있으면 수료증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기가 막혔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한테서는 그 힘든 과목을 엄마가 지금 어떻게 하겠냐며 빨리 서울로 오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 오고, 그런 오지(?)인 줄 알면서도 나이든 엄마를 보낸 것에 대한 아이들의 원망을 듣게 된 남편에게서도 다른 직원을 대신 보낼테니 짐 챙겨서 오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그때의 솔직한 내 심정은, 아직 짐도 채 풀지 않았고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이어서 다시 가방 들고 그 장소만 나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인데, 포기한다면 앞으로 평생의 회한으로 남을 것 같은-일종의 오기(?)같은 것이 무섭게 도사리고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강의는 시간마다 십 분 휴식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여섯시까지 강행군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로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하면서도 뜻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청년들의 젊음 자체가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진지하면서도 체계적인 그들의 학습 태도를 보며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지냈던 나의 젊은 날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는 앞으로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소중한 한 부분에 같이 참여할 수 있음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연수원생 전원이 누구 할 것 없이 시험에 대해 많은 부담을 갖고 있어서 수업 분위기는 진지했다. 강의 후 휴식시간마다 뛰쳐나가는 청년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호텔 유리문이 안개처럼 자욱할 정도였고, 강의실 앞에 수북이 준비해 놓은 커피며 초코렛 사탕 등이 순식간에 바닥이 날 정도였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평소에 좋지 않은 허리의 통증도 감각이 없었고 강의 중에 졸음이 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 산업공학과 출신의 명강사들이었는데, 이과과목임에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명강의를 했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였다. 과목마다 바뀌는 강사들은 나를 볼 때 마다 중간에 포기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나이가 많은 누구도 열심히 해서 시험에 통과됐다.”며 걱정 섞인 격려를 잊지 않았다. 딸보다 어린 네 명의 아가씨들은 나를 ‘큰언니’라 부르며 챙겨 주었고, 청년들은 틈만 나면 내가 묻지 않아도 어려운 공식이나 기초를 적은 노트를 빌려 주면서 나를 격려해 주었다.

대학 입시공부도 그렇게 한 적이 없는데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자율학습 시간에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연수생 대부분이 관계된 직종에 있거나 전공분야여서 나름대로 정리 내지는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암기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부담감이 가중되어 왔다. 같은 것을 반복하기 싫어해서 취약해진 암기력이 이번 공부의 결정적인 장애였다. 모두가 취침하러 들어 간 늦은 시간, 썰렁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 서글픔이라니…….

시험 전날, 아들 며느리 딸에게서는 시험 잘 보라는 격려 문자, 남편에게서는 시험 안 되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음성녹음이 들어와 있었다.

마지막 토요일,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쳐 몽롱한 채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협회 본부에서 내려온 시험감독이 좌석을 앞뒤 양옆으로 바꾸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시험이라곤 아주 오래 전에 운전면허시험밖에 본 적이 없는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공부한 것이 나오면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고 계산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대부분이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갔지만, 나는 시간 끝까지 혼자 남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한 다음 시험장을 나갔더니 젊은이들이 밖에서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큰언니, 괜찮아요?” “여사님, 시험 잘 봤지요?”

짐작컨대 내 얼굴이 거의 사색이 되었을 것이고, 두근거리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수명이 한 십 년은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연수원 퇴소식을 마치고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 얼싸안으며 이별을 나누었다. 삼 주 동안 고락을 함께 한 젊은이들- 나를 ‘엄마’라 부르던 한달 전 이북에서 귀순했다는 병약해 보이는 청년, 우리 전자회사 중국 현지공장에서 온 똑순이 중국아가씨, 경리사원이며 두 아이의 엄마인 싹싹하고 배려심 많은 룸메이트, 나만 보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격려 해 주던 협회 직원들,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 보인다며 나를 기분좋게 해 주던 사위 삼고 싶었던 몇몇 청년들- 나는 어느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생애에서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기에 더욱 소중한 사람들인 것이다.

때로는 감성에 끌려서 뜬구름 잡듯이 현실을 모른 채 살고 싶기도 했던 나에게는 기업의 냉혹한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문학적인 감성만이 최고의 가치라 여겨왔던 나에게 수학과 과학의 정확성과 치밀함은 도리어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던 시간들.

삼 주 전 무겁게 끌고 왔던 가방과 협회 측에서 특별히 마련한 ‘모범상’, 그리고 규칙생활로 3킬로그램이나 늘어난 몸무게를 한 아름 안고 나는 호텔의 유리문을 밀었다.

오늘은 담배연기에 걷힌 유리문이 정오의 햇살에 말갛게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삼 주 만에 올려다보는 2월의 하늘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