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풍경

 

 

                                                                                    김녹희

긴 목도리를 몇 겹 돌려 두르고 집 앞 골목을 걷는다. 아직은 11월이어서 가을이련만 계절보다 일찍 온 겨울바람은 나뭇잎을 남김없이 다 떨쳐버렸다. 찬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휘감는다. 잎이 붙어있었던 흔적도 보이지 않아 저 나무들에게 풍성하고 짙푸르던 날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중학교를 다닐 때였던가. 쪽진 머리의 외할머니를 보며, 아무리 애써도 할머니가 아기였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할머니는 원래 할머니 얼굴로 태어났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나무의 어제는 그간 내내 보았는데도 푸르던 지난날이 꼭 꿈속의 환상이었던 것만 같다.

우리 집 골목엔 비오는 날만 빼곤 언제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걸친 신랑의 모습이 보인다. 웨딩사진 스튜디오가 있어서 신랑각시가 길 위에서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오늘도 새 예비부부를 만난다. 사진사는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에 척 드러누워 머리를 치켜들고 카메라 셔터를 분주하게 누른다. 그들 옆을 지나가며 사진의 주인공들을 바라본다. 풋풋하다.

사진사가 외친다.

“서로 쳐다봐! 아니 아니 그건 째려보는 거잖아. 웃으면서! 다시 한버언. 오케이. 자아 신랑! 신부를 안아 올려요. 오케이. 좋아. 그렇게 안고 뽀뽀! 신랑, 계속 안고 있어요.”

자그마한 신랑은 자기 키만한 색시를 두 손으로 번쩍 들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내가 두 아들의 엄마여서일까. 보기가 안쓰럽다. 딱하다. 아, 벌써 가장으로서의 고생이 시작되는구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좀 긴장하긴 했지만 공주라도 된 듯 고고한 표정이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어깨와 가슴의 맨 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채 우아하게 웃는다. 웨딩드레스가 꼭 파티 복 같다.

내 웨딩드레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결혼하고 열흘 만에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미국엘 갔다. 유학생활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모르던 친정어머니는 그곳에선 파티가 많을 거라며, 웨딩드레스 길이를 잘라 파티 복으로 만들어 주셨다. 사십 년 전 그 시절엔 누구나 미국이 파티의 나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이 공부하던 6년 동안 그도 힘들었고, 육아와 살림에 쉴 틈이 없는 일상은 내 힘에 부쳤다. 늘 피곤했다. ‘파티’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였다. 그런 중에 서울에서 친구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녹희야, 너는 매일 파티에 가겠지?” 파티 복으로 고친 웨딩드레스는 짐 꾸러미 속에 말없이 묻혀있기만 했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올 때나 여기저기 이사할 때나 이는 내 이삿짐 속의 소중한 품목이었지만, 언제부턴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나는 골목길의 신부에게 속으로 말한다. “얘야, 오늘은 마음껏 공주가 되려므나.”

신랑신부를 잠시 구경하다 골목 네 개가 동시에 만나는 작은 네거리에 다다른다. 이름난 양식 일식 중식당들이 모여 있다. 젊은 손님들이 수시로 드나드느라 언제나 복잡하다. 그 나이에 고급식당을 애용한다는 걸 의아해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내 눈엔 웬만한 연령의 사람들이 이제 다 젊은이로 보인다는 걸. 시간여행을 하다 하루아침에 십 년쯤 나이가 들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내 나이에 새삼 놀란다.

왼쪽 골목길로 내려간다. 오랫동안 화랑이었다가 지금은 히피가 입을 것 같은 야릇한 옷을 파는 담쟁이덩굴 건물이 나타난다. 거기만 가면 동창이며 화가였던 점선이가 생각난다. 그 화랑에서 전시회를 했던 그녀가 나와 또 한명의 친구와 점심을 함께한 후 화랑 앞에서 그녀의 남편을 기다렸었다. 잠시 후 도착한 그 남편은 히틀러처럼 콧수염을 길렀지만 소년같이 수줍게 웃었다. 점선이가 우리를 소개했고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런 얼마 후 그녀의 남편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또 몇 년 후 투병 중에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고 강철 같은 의지로 살고자 애쓰던 점선이도 뒤따라 떠났다. 그러나 그 화랑 앞에만 가면 지프차 운전대에서 빙긋 웃던 그녀 남편 모습이 되살아난다. 점선이의 어눌하면서도 정열에 찬 말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누군가가 돌아간 사람을 생각하면 그 순간, 사라졌던 존재가 생명을 얻어 반짝 빛나는 걸까.

비탈길을 오른다. 번잡한 강남 대로변에 있는 우리 집 골목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산마룻길’이다. 골목에 가파른 경사가 있는 까닭인가보다. 그 비탈길에 수많은 나뭇잎이 무늬처럼 찍혀있다. 도르르 구르던 낙엽을 지나다니는 차들이 아스팔트에 꼭 꼭 박아놓았다. 얇게 펴진 잎들은 오톨도톨한 길 표면을 따라 잘게 갈라져서 흡사 박수근화백의 그림 같다.

나는 아스팔트 위의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쓸쓸해진다. 문신처럼 박혀있는 저들도 햇볕에 바래고 비바람에 쓸려 결국은 사라지겠지……. 누군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도무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하게 흐려지는 것처럼.

인간을 나뭇잎에 빗대어 말한 ‘페이터의 산문’이 떠오른다. ‘잎, 잎, 조그만 잎……. 모두가 다 한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네 자신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의 글이 스산한 내 마음을 허무의 늪에 빠뜨린다. 나는 가라앉는 자신을 추스르려 심술을 부린다. “페이터님,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요?”

지나온 골목길을 되돌아본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들어온다. 나무는 옷을 다 벗었기에 나무줄기와 휘어진 가지가 만든 멋진 조형미를 보여준다. 삭풍 속에서 오히려 의연한 기품이 감돈다. 바람에 날리어 쌓인 나뭇잎들은 차가운 땅을 폭신하게 덮어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사진 찍는 이들, 음식점 앞의 젊은이들은 생동하는 기운을 골목 가득 뿌린다. 까만 아스팔트 캔버스에 그림이 된 낙엽은 명화보다 아름답다.

나는 이 모든 풍경 속에 또 하나의 풍경이 되어 천천히 골목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