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합창

 

 

                                                                                        김복희

<솔리스트 앙상블>의 공연이 8월 1일 윌셔 이벨 극장에서 열렸다. 남성 성악가들로 구성된 ‘솔리스트 앙상블’은 한국 남성합창단의 대명사라 불려질 만큼 권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공연이다.

가을의 문턱인 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1995년 8월 LA 필그림 남성 합창단의 공연이 헐리우드에 위치한 ‘포드 극장(John- Anson Ford Amphi Thrater)’에서 열렸다. 야외 공연장으로는 ‘헐리웃 볼’ 다음으로 포드를 꼽는다. 극장 입구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한여름의 더위도 시킬 수 있고 음악도 감상할 수 있으니 여름밤의 야외 음악당은 이래서 인기가 있는가 보다. 오늘 만큼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의 기분을 만끽해 보고 싶다. 무대가 열리기를 고대하며 앉아 있는 이 시간의 기다림이 좋다. 아직은 노을빛이 감도는 하늘. 먼 기억 저편에서 분수처럼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한 테너의 열창이 무대 위에 얼비친다.

오래 전, 남편은 성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풍부하고 윤택한 성량을 타고 났기에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테너였다. 한창 꿈을 키우며 촉망을 받을 즈음, 타의에 의해 성악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하는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으나 남편은 의외로 담담했다. 성악가의 꿈을 훌훌 털어 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민 살이의 고달픔을 알 것도 같았다. 살아가며 쉽게 속내를 보이지 않아서 모르기는 해도 이런 넓은 무대를 보고 있으면 새삼스레 젊은 시절의 꿈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나리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 음악회의 대표 격인 분이 공연에 대한 설명을 했다. ‘포드 극장’은 ‘헐리웃 볼’과 같이 야외극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으며 올 시즌 클래식 분야에서는 ‘필그림 남성합창단’이 유일한 단체라 한다. 이 무대에 한 번 서려면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 심사 과정만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재정상태, 공연실적, 언론의 평가, 단체의 역사, 지휘자의 추천서 등이 있어야 하고 공연 테잎 중 5곡이 심사 기준인데 그 중에 아카펠라 2곡이 최종 결정의 주요 부분을 좌우한단다.

한국 가곡으로 시작하여 팝송, <대장간의 합창>등 오페라 메들리와 <오 수제너> 등의 미국 민요가 밤하늘을 넓게 가르며 퍼져 나갔다. 특히 이종원과 조덕희의 뚜엣으로 부른 <성자의 사원(비제의 진주 조개잡이 중에서)> 이귀임이 부른 <주여 나에게 평화를 주소서(베르디의 운명의 힘 중에서)>와 <보석의 노래(구노의 파우스트 중에서)>는 한여름밤의 공기까지 사로잡았다.

한국민요 <박연폭포>를 부를 때 모두들 기립 박수를 쳤다. 우리의 정서가 듬뿍 담긴 민요와 남성들의 화음은 계곡을 가르는 웅장함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이민생활의 답답함을 한방에 날려주는 기분이었다. 앵콜 송으로 부른 <마이웨이My way>와 <만남>이 허공을 가르고 음악과 함께 흐르는 여름밤은 서서히 깊어만 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딸아이가 엉뚱한 말을 했다.

“엄마, 아빠가 음악을 전공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있기는 했겠지만 얼굴은 좀 달랐을 거야.”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예전에 남편은 방금 이곳에서 공연을 마친 ‘필그림 남성 합창단’의 제 2 테너였다. 지금까지 계속했다면 남편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음악회에 갈 때면 즐거움도 있지만 남편을 대한 연민이 있어 가슴 한 곳이 찡하다. 남편은 음악을 버리고 가정을 택했다. 하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지 못한 남편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필그림 합창단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는 그 합창대원들 속에 남몰래 남편을 끼워 넣는다. 그도 공연장에 오면 스스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분으로 그리움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무대를 대신한 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가족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그의 또 다른 꿈임을 그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날 <솔리스트 앙상블>은 우리의 가슴 속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 힘은 한국 남성합창단의 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렬하고 웅장했다.

8월은 좋은 공연이 많다. 한인사회의 경제 부흥이 눈부시게 성장한 만큼 공연문화도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바람이 속삭이듯 나뭇잎을 스친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콧노래가 실바람 속으로 미끄러진다.

 

 

《수필문학》으로 등단. 재미 수필가협회 이사.

라디오 코리아 공모 우수상. 수필집 《제 별명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