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고考

 

 

                                                                                         정진권

“이봐, 거짓말에 무슨 고考할 게 있나?”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혹 이렇게 말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기야 거짓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이 못된 말에 무슨 고考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어째 한번 고考해 보고 싶다. 아까 읽은 옛이야기 때문인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金부잣집 종년 갑甲년이는 자색이 곱다. 그런데 이를 닦지 않아 이가 늘 누렇다. 박朴부잣집 종놈 을乙놈이는 인물이 훤하다. 그런데 때를 씻지 않아 팔뚝이 늘 새카맣다. 한 마을에 사는 갖바치가 갑甲년일 보고 말했다.

“그 을乙놈이가, 허허. 니가 좋아 죽겠는데 이가 누래서 좀 그렇다더라.”

갑甲년이 깜짝 놀라 이를 닦았다. 내가 좋아 죽겄다구?

이번엔 을乙놈일 보고 말했다.

“그 甲년이가, 허허. 니가 좋아 죽겠는데 팔뚝이 새카매서 좀, 허허.”

을乙놈이도 깜짝 놀라 때를 씻었다. 그것이 증말이여?

그 며칠 후 을乙놈이 김金부잣집 대문 앞에서 갑甲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갑甲년이

나왔다. 을乙놈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물어 가로되

“안에 누가 있냐?”

갑甲년이 흰 이를 드러내며 답하여 왈

“으어여, 들어와.”

이윽고 대문이 쾅 닫혔다.*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갑甲년이의 “으어여 들어와.”다. 대문이 쾅 닫히는 순간 둘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그들의 그런 행복은 물론 갖바치의 시침 뚝 뗀 거짓말의 결과다. 그럼 갖바치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남의 종살이로 힘들게 사는 것들, 나이도 차 한창땐데 밤이면 또 얼마나 짝이 그리울까, 이런저런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다. 좋은 일 한번 해야지.

그런데 세상은 못 속이는 법, 갑甲년이하고 을乙놈이가 그렇고 그렇다는 게 온 마을에 좍 퍼졌다. 김金부잣집 마나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게 헛구역질이라도 하면 집안 꼴이 뭐가 되어? 그래 궁리궁리 하다가 영감님에게 말했다. “그러니 표 나기 전에 혼례를 치러 줍시다.”영감님은 이런 일로 찾아가는 게 싫었지만, 이튿날 아침 박朴부잣집엘 건너갔다. 날짜는 쉽게 잡혔다.

김金부잣집 마나님은 날 가는 걸 세며 우선 이불 한 채를 꾸몄다. 놋수저 두 벌에 사발 대접 종지 몇 개도 살강에서 하나하나 골라 대바구니에 싸 넣었다. 된장 고추장 간장도 작은 항아리에 퍼 담았다. 저게 열두 살에 내 집엘 와 어느덧 스물넷, 어린것이 밥이나 얻어먹자고 왔었어, 불쌍한 것.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년을 차마 어찌 몸만 달랑 보내? 저 줄 몫이야 나중에 셈하더라도.

그날은 가을볕이 좋았다. 김金부잣집 대문 안 키 큰 감나무의 누런 감들이 푸른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연지곤지 곱게 찍은 갑甲년이, 사모관대 의젓한 을乙놈이, 차일 아래 차려놓은 초례청도 어느 양반 댁 못지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폭소가 간간 터졌다. 정鄭부잣집 丙놈이는 을乙놈이가 부럽고 이李부잣집 정丁년이는 갑甲년이가 부러웠다. 우린 언제 저래 봐?

마침 마을 어귀 본동양반네 아래채가 비어 있었다. 박朴부잣집 영감님이 선뜻 그걸 얻어주었다. 각각 늦게 돌아오는 밤, 갑甲년이는 을乙놈이의 넉넉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을乙놈이는 갑甲년이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고 늘 같은 꿈을 꾸었다. 남향받이 언덕에 초가삼간 지어야지, 울밑에 호박 심고 상추씨도 뿌려야지, 아들딸 똘똘하게 쑥쑥 낳아야지, 여보 당신 부르며 오붓하게 한번 살아봐야지…….

“이봐, 거짓말에 무슨 고考할 게 있느냐구?”

맞아, 거짓말에 무슨 고考할 게 있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시작할 때는 한 가지 고考하려던 게 있었다. 거짓말의 효용성- 갖바치의 시침 뚝 뗀 거짓말 한 마디씩이 갑甲년이와 을乙놈이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그런데 이제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니 그 효용성을 고考한 것은 두 줄도 안 되고 그들의 혼례 전후를 상상한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러니까 그 목적에 비추어 이 글은 실패작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실패한 글을 못 버리고 이렇게 미적거리는 걸까? 이 글을 버리면, 허허거리며 거짓말하는 저 갖바치, 날 가는 걸 세며 이불 꾸미는 김金부잣집 마나님, 선뜻 방 한 칸 얻어주는 박朴부잣집 영감님, 이 착한 사람들이 다 사라진다. 이런 좋은 선배들이 많은 사회社會이어야 힘들게 사는 갑甲년이와 을乙놈이가 남향받이를 꿈꿀 수 있는데, 그래야 여보 당신 부르며 한번 오붓하게 살아도 보는데…….

“그들이 사라지면 안 돼.”

* 이 이야기는 송세림宋世琳의 《어연순禦眠楯》에 전하는 한 우스갯소리를 필자의 문체로 고쳐 쓴 것, 등장인물들의 호칭도 다 필자가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