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닦기

 

 

                                                                                    최병호

그는 집에 돌아오면 양말부터 벗는다. 촉촉하게 젖어 있다. 여름엔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겨울이 되어도 완전히 보송보송해지지는 않는다. 세월이 가면 발바닥부터 물기가 가신다지만 그에겐 아직 그런 증후가 두드러지지 않다. 궂은 일이라곤 안 하고 산 덕일지도 모른다. 그의 친구들은 그것을 두고 무슨 ‘젊음의 만년물표萬年物標’나 된 듯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더러는 ‘배 아파하기도’ 한다.

모이는 장소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할 경우,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앉자마자 비문화적인 그 족취足臭를 천연스럽게 방산해야 하는 진원震源이 되어서다. 평소 방 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사는 서양 풍습을 미개의 표본쯤으로 여기던 그지만 그럴 때만은 별수 없이 그 선견의 명에 경탄을 외지 아니치 못한다.

그는 집안 청소를 자청한지 오래다. 그 학력學力이야 초·중 정도이지만 그래도 나중 감독도 한 바 있어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서다.

시작은 배운 그대로 그냥 쓸고 닦기다. 옛날 같지 않게 경각간에 끝이 난다. 그는 기초능력을 익힌 잠재력은 수련하지 않아도 얼마간은 저절로 신장이 된다는 희한한 진리를 깨닫는다. 걸레질이 좀 볼썽사납긴 하다. 거구의 몸이 네모로 접은 수건걸레에 손바닥을 뻗치고 엉덩이를 쳐든 엎딘 자세여서다. 쿵쿵쿵 발가락밀이가 위태롭긴 하다. 이내 바닥이 번들번들해진다. 비록 늙마의 몰골이 코미디를 웃기는 연기가 되긴 했어도.

꼬마들이 거실에다 온갖 장난감을 흩쳐놓고 기며 뒹굴며 부산을 떤다. 그들의 옷자락에 구겨진 그늘 같은 여린 빛깔이 감돈다. 그는 가만히 손바닥을 스쳐본다. 뽀얀 미세먼지다. 아니, 이런 일이?

그는 바로 마트에 나가 진공청소기를 산다. 밀대걸레도 하나 덧붙인다. 청소기는 흡입소리가 역겹긴 해도 효과 면에선 빗자루와 견줄 바가 아니다. 밀대도 신속성이 후련하기 이를 데 없다. 안정된 나날이 그런대로 이어진다.

그는 한가할 때면 이따금 특별청소를 한다. 작업이 끝나면 당연히 거실의 분합창가에 앉아 쉬게 마련이다. 먼저 왼발 무릎을 안으로 접고 그 앞에 오른발을 나란하게 접어놓는다. 왼편 엄지발가락이 오른발 접힌 쪽에 살짝 끼워지는 형태다. 몸의 중심重心을 엉덩이에 깔고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다. 참선의 흉내처럼 가볍게 눈을 감는다. 더없이 편안하다. 발바닥과 방바닥과 지심地心이 하나로 이어진다. 이윽곤 몸이 흔들린다. 작고 가늘게. 점점 그 세가 전후좌우로 퍼진다. 천자문 외던 초립동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느리고 또 느리다. 침묵의 수습 같기도 하고 가락진 맹목 같기도 하다. 그런 요요遙遙한 반수半睡의 휴식을 하염없이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오른발 발바닥이 그의 눈을 쏘아보고 있지 않는가! 아니, 이게 웬일?

그는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안방으로, 서재로 마치 잊어버린 것을 찾기라도 하듯. 그러나 거치적거리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소파에 앉는다. 오른발 발바닥을 왼발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발바닥을 쏘아본다. 자잘한 티끌이 몇 개 붙어 있을 뿐 특별히 지저분한 흔적은 없다. 무심히 티끌 하나를 장난처럼 밀어본다. 잽싸게 이웃까지 덩달아 밀리며 하얀 길을 낸다.

‘젊음의 만년물표’란 게 고작 티끌 같은 먼지나 붙여준 것인가? 그는 피식 웃음을 날린다. 이때부터 그의 청소는 ‘발바닥 닦기’의 일환이 된다. 일기예보에 따른 비설거지처럼 ‘발바닥예보(足掌豫報)’에 따른 티끌(塵埃)설거지가 된 것이다.

별일이 없는 한 예보는 잠자리 들기 전의 발 닦기에서 확인하고 설거지는 다음날 아침에 서둔다. 그는 예보가 그린 빛깔대로 온 집안의 속진俗塵을 쾌청하게 씻어댄다. 그 시간대에 그의 부인은 불편한 허리를 고추 세우며 교회에 나가 이지러진 심령을 추스른다.

그는 새삼스럽게 일상을 잡답하게 느낀다. 편리한 살림기기나 그 보조물들이 왜 그리 휘황하게 늘고 있는지……. 그의 집만 해도 개량된 최신의 물건들이 날로 늘어나 곳곳에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청소할 땐 그것들이 다 훼방꾼처럼 귀찮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 주변만 슬쩍 지날 순 없는 일이다. 발바닥만 씻고 발가락 사이는 그냥 둔 거나 진배없는 일이어서다. 현장의 그런 사태에 대해서 그는 진공청소기의 쓸어 올리기와 막대걸레의 부실문제를 여러모로 따지게 된다.

흡인력이 ‘약, 중, 강’으로 나눠진 청소기는 역시 최신기기답다. 단단한 바닥 등엔 대체로 ‘약’을 놓고, 카펫이나 깔개 등엔 ‘중’ 내지 ‘상’을 놓아 효율을 높인다. 막대걸레는 아예 비상용으로 예편시키고 다시 손걸레로 곰상곰상하게 닦는다.

쓸기든 닦기든 곳곳에 놓인 그 물건들은 어김없이 옮겨가며 철저를 기한다. 옹색한 구석 같은 데는 새끼발가락 사이 때꼽 후벼내듯 못 쓰는 젓가락 짝에 걸레 끝을 감아 촘촘히 닦아낸다. 새집처럼 구획이 깔끔해진다. 보송보송해진다. 날아갈 듯 기분이 상큼해진다.

그는 무릇 생명체가 가려진 누습을 청정하게 닦달한다는 것은 삶의 본연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발바닥 닦기 같은 집의 청결을 그는 집이란 생명체에 대한 본연의 충전쯤으로 간주한다. 정성을 다하고 나면 온 집안이 정말 살아있는 만년물표 같은 흐뭇한 감회에 젖게 한다. 창밖의 하늘이 빙긋이 엿보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