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백임현

눈부신 설경으로 새해가 시작되더니 뒤이어 기습한 동장군의 서슬 퍼런 위력은 정초의 대기를 꽁꽁 얼어붙게 하였다. 지구의 온난화로 해마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면서 찜찜했던 기분이 올 겨울 성깔 있는 냉기는 오히려 신선한 쾌감을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삼한 사온도 없이 계속된 추위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던 화초를 많이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그 중에서도 십여 년이나 잘 자라던 무궁화가 된서리를 맞은 것은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원래 무궁화는 집 안에서 화분에 키우는 화초가 아니라 넓은 도로변이나 정원의 꽃밭 둘레에 촘촘하게 심어져 울타리 구실을 하는 관목으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쉴새없이 꽃이 피는 나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베란다의 화초로 가꾸면서 즐거움이 특별했었다.

손님들은 길에서나 볼 수 있는 무궁화가 집 안의 화분에서 화려하게 꽃피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였다. 더구나 무궁화는 유치원생도 다 아는 나라꽃이 아닌가. 지금은 관상용 화초로 개량재배 되어 어쩌다 아파트 창가에서 꽃을 피우고 있지만 우리가 자랄 때는 태극기와 더불어 조국을 상징하는 특별한 꽃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런 인식이 잠재해 왔기 때문일까. 우리는 무궁화가 보통화초가 아니라 ‘나라꽃’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이다. 어느 봄날, 아파트 담 밑에서 무궁화 묘목을 싸게 팔고 있었다. 싸구려 화분에 젓가락 굵기만한 외줄기 나무에 파란 잎이 듬성듬성 달린 것이 너무도 변변치 않아 감히 무궁화라는 이름이 아까웠다. 제대로 커서 나무구실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더구나 꽃을 피우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꽃주인은 자신감 넘치는 말솜씨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무궁화는 생명력이 강해 웬만한 조건에서는 죽는 법 없이 잘 산다며 한 번 꽃이 피기 시작하면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고 지겹도록 계속 핀다는 것이었다. 무궁화가 괜히 무궁화겠느냐 끝없이 꽃이 피니까 무궁화지 그래서 나라꽃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느냐, 며 꽃장수는 익살을 섞어가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익살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은 웃으면서 하나, 둘, 화분을 사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반신반의 하였으나 나도 무궁화를 집에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화분 하나를 사들고 왔다.

꽃장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무궁화는 특별히 보살피지 않아도 타고난 생명력으로 추위 더위에 잘 견디며 싱싱하게 자랐다. 그리고 한 번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줄기차게 꽃이 피었다. 마치 노래의 가사처럼 피고 피고 또 피는 우리 무궁화였다. 우리는 그 끈질긴 연속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때의 영국이 해 지는 날이 없다고 했듯이 우리 집 베란다의 무궁화도 꽃 지는 날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두 송이씩 피더니 자라면서 분갈이를 해주고 순을 잘라 가꾸었더니 몇 해 지나지 않아 잘 기른 분재처럼 본 줄기가 튼실해지고 꽃송이도 많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수선화처럼 예쁘지는 않아도,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수수하게 화장한 시골 아낙네처럼 소박하면서도 꽃잎이 탐스러운 분홍빛 무궁화는 호감이 가고 정이 가는 우리의 꽃이었다.

밖에서 마음껏 자라야할 나라꽃인데 손바닥만한 베란다 화분에서도 자신이 처한 여건이나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와 언약이라도 한 듯 죽어라고 꽃을 피워 주는 무궁화가 신통하고도 대견하여 우리는 무척 애정을 가졌었다.

그 무궁화가 이번 한파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해마다 신경 쓰지 않고 밖에 두어도 겨울 추위를 잘 견뎌왔기에 무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잠깐 사이에 푸르게 자라던 잎이 얼어서 부풀어버렸다. 가엾어라. 시든 잎새 사이를 살펴보니 가지 끝마다 빨긋빨긋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 추운 엄동에도 열심히 꽃을 피우며 살려고 했던 것이다.

때는 늦었지만 서둘러 꽃나무를 거실로 들여와 따뜻하게 보살폈다. 행여나 소생할까 싶어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늘어지는 꽃잎을 만져보곤 하였지만 한번 죽은 나무는 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뿌리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무 잎은 점점 시들어 마르고 앙상한 가지가 실오라기처럼 메말라 가는 것을 보고 부질없는 소망을 포기해야했다. 애처로운 일이다. 무릇 모든 생명은 한번 가면 돌아 올 줄 모른다.

좀처럼 누그러질 것 같지 않던 추위가 1월이 중순으로 접어들자 한숨 돌리게 되었다. 앞으로는 큰 추위가 없을 것 같아 산 것, 죽은 것, 가려내어 못쓰게 된 화분부터 처리하기로 하였다. 한 때는 ‘나도 생명이로라’면서 우리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었던 화분들이 이제는 버려야할 폐기물로 전락하여 골치 아픈 일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궁화를 치우면서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뿌리 쪽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죽은 듯 메마른 가지 마디마디에 보일 듯 말 듯 티끌 같은 연초록 새움이 트고 있지 않은가. “아 - 살아 있었구나.”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 모진 추위에도 뿌리는 살아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속에서 생명이 숨쉬고 있는 줄 누가 알았으랴. ‘무궁화’는 역시 뿌리 깊은 한민족의 꽃이었다. 숱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굳건하게 나라를 지키고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끈질긴 우리의 저력을 무궁화는 확실하게 상징하고 있었다. 소생한 무궁화는 머지않아 새 잎이 찬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미래처럼 끊이지 않고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