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과 시인

 

 

                                                                                  박종숙

가끔씩 섹스폰을 불고 있는 시인을 나는 쓸쓸한 눈으로 바라본다.

누구나 자기만이 감당해야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지만 무엇으로든 풀어내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짐 진 일꾼처럼 시인의 고충은 태산하나를 진 듯 보였다. 그의 직책과 사회적인 지위, 체면은 시인에게 또 하나의 고립감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다 늘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지켜보며 살아야하니 단애의 끝자락에 선 것과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 날 시인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성도의 모습과 같았다. “나는 죄를 졌어요. 아내에게도 그녀의 인생이 따로 있다는 걸 생각지 못 했어요. 그녀가 입원하던 날 그 창백하던 얼굴……,눈부신 햇살……, 그날의 울고 싶던 심정을 시詩로 표현한 게 있지요.” 다소 후회스럽다는 듯, 과거를 털어놓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시인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만은 없고 불행하지만은 않아서 행복과 불행은 늘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을 느낀다. 평소에 외모로 풍기는 인상이나 태도로 보아 시인은 전혀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 같지는 않았었다. 그는 깔끔하고 핸섬하여 늘 귀족적인 멋을 풍겼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반듯한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는지 안쓰럽기만 했다. 순간 살얼음을 딛는 듯 한 고백을 들으니 나도 동병상린 속에 갇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일년 전이었다. 문협의 책임을 맡고나서 관계기관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이다. 임원 몇몇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인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 별로 반가와 하지 않는 그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라는 부탁에 “ 도와달라는 사람이 한둘인가요? 모두 힘들다니 어떻게 다 도울 수가 있겠어요.” 고민스럽다는 듯 오만상을 찡그리던 시인은 입속으로 우물거렸다. 나는 난색을 드러내는 그의 표정이 하도 우스워 무슨 고위 책임자가 저렇게 자신이 없는가 하여 마뜩치가 않았었다.

그럼에도 사람과의 인연은 점차 퇴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발전해가는 경우도 있는가 보다. 어쩐 일인지 시인은 몇 번 다 내가 외지 출타 중일 때만 연락을 해왔고, 나는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례를 사과하러 가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시인이 집무하는 곳에는 외부와 접근이 차단된 방음장치가 잘된 회의실이 있었다. 그곳으로 안내받은 나는 시인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스테이지에서 배경음악을 반주로 멋진 폼의 섹스폰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일이라서 그 기분을 무어라고 표현해야할지 난감했다. 그 돌발적인 사건으로 보아 시인이 나에 대해 다소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느꼈다고나 할까? 순간 어린애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어머니의 품안 같은 따뜻함을 느꼈다.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마치 마루 끝에 앉아 기타를 치시던 아버지의 옛 모습을 보는 듯도 했다. 시인의 색스폰은 아마추어 실력을 훨씬 넘어 프로에 가까워 있었다. 그날의 계기가 우리에게는 한층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는 돌파구를 가져다주었다.

12월 달력이 달랑 남아 있던 어느 날이다. 뜻밖에도 시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하반기 문학사업이 종결되고 있던 터라 홀가분했지만 관철되어야할 문제 하나를 안고 고민중이었다. 늘 약속을 어긴데 대한 미안함을 풀기 위해 모든 걸 뒤로 하고 나갔다. 시인은 웬일인지 누적되었던 내 문제를 무엇이든 도와줄 태세였고 나는 어렵게 남아 있던 문제를 시인의 덕으로 무난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전하던 날, 하필이면 왜 시인의 상처를 건드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의 우울증을 항상 옆에서 지켜보며 속수무책이었던 나였기에 아내의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을 시인의 고충이 더 크게 감지되어 왔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위기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는 무력증에 빠진 아내 생각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던지 사무실에다 늘 가족사진을 걸어두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흔드는 거센 폭풍 속에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탈선할까봐 노심초사했었다는 말이었다. 그 것은 질풍노도와 같았던 고뇌의 날들을 충분히 대변해 주고 있었다.

부부 중 한쪽만이라도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한다면 어떤 불행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혼자 지고 가다보면 그에 따른 고독과 두려움이 벼랑 위에 선 것처럼 엄습해 올 것이다. 그럼에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며 공부하고 있다는 시인의 이야기는 다행스럽게 들려왔다.

시인은 그날을 계기로 문학행사 끝자락에 서서 칭칭 감겼던 섹스폰 음을 축하연주로 서리서리 풀어내었다. 막혔던 출구가 열리듯 흐느끼는 가락이 피맺힌 절규처럼 여울져갔다. 한 인간의 애환을 달래는 멜로디가 잔잔한 일상에 파문을 던졌다. 고독을 집대성한 쓸쓸한 시인의 섹스폰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