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춘천에서

 

 

                                                                                    이종만

창밖의 풍경은 흐르면서 바뀐다. 다시 눈부신 오월, 연초록 숲과 은빛물결을 반짝이며 흐르는 강, 살랑대는 바람을 싣고 기차는 간이역마다 멈추고 사람들을 토해 낸다.

몇 년 전 신문을 읽다가 어느 기자가 쓴 춘천 여행을 메모해 두었다. 나도 시간이 나면 어느 날 홀연히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리라. 이렇게 빛나는 계절에, 청춘의 중심지이며 희망과 몽상의 도시 춘천으로 가기 위해 그 기자의 하루 여행대로 따라 해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곳은 김유정 문학관이 있고 소설가 오정희와 이외수가 살고 있는 도시이며 고등학교와 대학을 춘천에서 오롯이 보낸 소설가 한수산은 ‘청춘의 가장 반짝이던 때’라고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또 시인 유안진은 ‘어느 날 문득 춘천이라는 이름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의 혼을 기습 점령 해 버렸다.’라고 적었다. 많은 문인들의 사랑 속에 머물러 있는 호반의 도시는 항상 우리의 마음까지도 애틋하게 만드는 묘약이 있었다. 남춘천역은 그곳에 고즈넉하게 서 있다.

역사로 나오니 봄날의 따가운 햇살이 온 누리에 가득 하다. 그 신문에 쓰여 있는 대로 택시를 타고 동부시장 쌍방울 메리아스 집 앞에서 내렸다. 얼핏 보아도 아주 작고 초라한 시장이 그곳에 있어 당황했다. 들어가는 초입 작은 옷집에는 오천 원이라는 가격이 붙어있는 얼룩얼룩한 꽃무늬 옷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그러나 한산하기 그지없다. 바로 옆 가게에서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가 부지런히 기름병을 진열하고, 생선 가게에 나란히 놓여있는 갈치 몇 마리는 사람들의 눈길도 끌지 못한다. 쌍방울메리아스라고 붙어 있는 간판은 너무 볼품도 없는데 그 앞에는 안노인 한 분이 떡을 만지고 있다. 깊은 주름을 보는 순간 지난 세월 그분의 삶을 한눈에 짐작 할 수 있었다. 더욱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아주 작은 글씨로 써 있는 샬 롬이라는 떡집의 간판이다. 아마도 이 집 안노인이 진실한 기독교 신자인가 보다. 우리는 주일이면 예배를 시작할 때 옆 사람과 샬 롬이라는 인사말을 서로에게 건네고 예배를 드린다. 그리하여 이 말은 언제나 내 귀에 익숙하다. 샬 롬이란 평화라는 뜻이며 존귀하게 살자는 인사말인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안노인에게 안으로 들어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반겨 주었다. 작은 공간은 간의 의자와 플라스틱 식탁 한 개가 놓여있고 주위에는 여러 집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앉아 신문에서 읽은 대로 촌 떡과 감자떡을 시켜 먹었다. 처음 먹어본 촌 떡은 메밀가루를 얇게 부쳐 그 속에 무채를 넣고 만 것인데, 그 맛이 담백하여 먹을 만 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소박하여 춘천이란 아름다운 도시에 어울릴만한 떡은 아닌 것 같다. 이 떡 한 개를 먹기 위해 이곳을 와 보라는 것인지, 아주 초라한 시장골목에서 팔고 있는 촌 떡 한 개를 통하여 기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싶었을까 한참을 생각하였다. 언제나 외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이렇게 가난한 시장 한 구석에서 파는 작은 촌 떡 한 개도 소중이 여기고 감사 하라는 것인가. 그러면서 갑자기 그 기자의 얼굴을 떠 올려 보았다. 그는 아주 수수하고 소탈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자 갑자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거리를 서서히 걸으며 묘한 즐거움에 취해 보았다. 어느 간이음식점에 발길을 멈추고 김밥과 국수를 파는 좌판에 앉아 천오백 원 하는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안주인은 친절하여 낯선 도시의 막막함을 달래 주었다. 내 옆에는 구십을 넘기신 안노인 한 분이 그도 역시 국수를 시켜놓고 이가 없어 정물처럼 앉아 계셔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안주인은 우리에게 바깥노인의 점심상을 봐 드리고 가끔 혼자 이곳에서 국수를 드신다고 그 안노인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말없이 앉아 국수를 바라보고 있는 안노인, 그것은 우리 미래의 모습 같았다, 나는 끝없는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의 뜻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밖으로 나오니 신선한 미풍이 나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겨 주었다. 강원 대학으로 가는 길목도 상가는 즐비했다. 한 점포에는 시계 한 개에 무조건 만원이라는 글씨를 쓴 종이를 점포 밖에 붙여 놓았다. 요즈음 고가의 시계를 뇌물로 상납한 어느 기업인 때문에 온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운가. 현대인에게 시계란 시간을 재는 소지품에서 재산목록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우리는 얼마나 쓸쓸한 감정을 삭여야 되는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시인의 강의를 듣다가 참으로 뜻밖의 말 한마디를 듣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군사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본주의의 억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물질 만능의 홍수 속에 떠밀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러나 숲속에 쌓인 대학은 간간히 학생들이 녹음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신선하다. 어느 계절에 서 있든지 학문의 전당 속에 안겨 있으면 나는 늘 꿈을 꾸게 된다. 가장 순수한 시원의 꿈과 미래를,

해가 이울자 현대인의 내면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를 떠나기 위해 나는 다시 기차를 탄다. 기차에는 언제나 그리움을 실어 나르는 낭만이 있다. 오늘은 가볍게 떠나지만 언젠가 다시 오리라 이 몽환의 도시 춘천으로.

 

 

1993년 《수필공원》으로 등단. 저서 《또 하나의 강》, 《에세이 21》 기획위원.

에세이 문학, 이대 동창문인회, 산영 수필문우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