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항변

 

 

                                                                                    윤삼만

창세기에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이 골고루 먹고 살 수 있도록 공기, 물, 햇볕 세 가지를 주고 양식은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하도록 했다. 이것들은 언제나 풍부하기 때문에 말이 없는데 식량은 항상 말썽을 일으킨다.

뒷산에 올라가보면, 넉넉한 햇볕이 바람과 함께 쉬고 있다. 산에는 꿩, 청설모, 멧비둘기 등 많은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다. 청설모는 참나무가지에서 바쁘게 쭈르르 미끄러지듯 가다가 멈춰 서서 나를 힐끔 보곤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다른 가지로 껑충 뛰어간다. 등산로 입구엔 ‘도토리를 줍지 맙시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햇볕을 골고루 받기 위해 나무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고 잎파랑이들은 겹쳐지거나 닿지 않도록 공간을 잘 이용한다. 자연은 서로를 배려하고 욕심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자기욕심만 채운다.

도토리를 줍기 위해 도시 아주머니들은 새벽밥을 해먹고 점심을 챙겨 버스를 타고 먼 산에 간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동무들끼리 어우러져 간다. 해마다 가기 때문에 도토리나무가 많은 곳을 훤히 알고 있다. 이것으로 도토리묵을 만들어서 재미를 톡톡히 본다. 때문에 짐승들이 먹을 양식이 모자란다.

멧돼지는 먹을거리를 찾아 산을 내려온다. 냄새로 먹을 것을 찾는데 고구마를 제일 좋아한다. 고구마 밭을 만나면 횡재한 것과 다를 봐 없다. 주둥이로 밭이랑을 후비고 파서 굶었던 배를 실컷 채운다. 다음엔 동무들과 새끼들로 떼를 지어 몰려오면 나부터 먼저 먹기 위해 날뛰는 바람에 농작물은 작살나고 밭은 난장판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도회지나 농촌마을에 나타나고 119구조대에 사살되기도 하며 고속도로에선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밤마다 지킬 수가 없어서 허수아비를 세우고 사람소리를 내게도 하며 올가미를 해놓아도 훤히 알고 피해 다닌다. 주민센터에 신고하여 대책을 강구해 달라며 야단들이다. 센터에서는 할 수 없이 지방에 있는 포수들을 동원한다.

오후 늦은 시간에 멧돼지 두 마리가 고구마 밭쪽으로 가고 있다. 건너편에서 망을 보던 포수가 총을 쏘고 개가 쫓았다. 무심코 가던 멧돼지는 ‘탕’하는 소리에 혼비백산이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었다. 총알이 전후좌우로 박히고 사냥개에 쫓기어 이리 뛰고 저리 피하며 혼이 났으나 겨우 목숨은 구했다. 포수들을 동원해도 별 성과는 없었다.

산기슭에 있는 마을에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갓 이순을 넘긴 할머니가 고추를 말리다가 이를 보곤 놀래서 소리쳤다. 멧돼지는 주둥이를 끌며 멍석에 널려있는 고추를 이리저리 밟고 다니면서 흩는다. 할머니는 막대기로 때리며 내쫓았으나 오히려 달려들었다. 자꾸 쫓고 달려드는 바람에 할머니는 막대기를 그만 놓쳤다. 달려드는 멧돼지와 엎치락뒤치락 한바탕 육박전이 벌어졌다. 동네 젊은이들이 와서 겨우 멧돼지를 사로잡았으나 할머니가 멧돼지를 잡았다고 한 때 화제가 되었다.

멧돼지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따뜻한 언덕에 모여든다. 대여섯 마리나 되는 돼지들이 해바라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성토한다. 우두머리쯤 되는 큰 멧돼지는 우리가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우리식량을 자기들이 다 주워가놓곤 우리더러 무엇을 먹으라는 말인가.” 새끼 돼지는 “우리들이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먹는 것인데 실컷 먹어봐야 고구마 대여섯 뿌리 정도, 값으로 쳐봤자 서푼어치도 안 되는 것을,” 옆에 있던 암 돼지는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염전에 중국산 소금을 뿌려놓고 그것을 천일염이라 하고, 중국산 활어를 싱싱한 국산이라 자랑하며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을 밥 먹듯 해가며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 우리들이 배고프면 좀 먹는 걸 가지고 총을 쏴대면 되느냐.”고 한다. 듣고 있던 청설모는 “제주도에서 맛좋은 똥돼지를 팔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똥돼지를 제주도에서 기르고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맞장구를 친다.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본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고구마 몇 뿌리 파먹은 것을 가지고 총을 쏴대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계간수필》로 등단.(2000년)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 서예대전 초대작가.

한시동인지 《晉陽風月集》, 수필집 《촛불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