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文鎭

 

 

                                                                                  남영숙

한 생을 살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보잘것없는 물건도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삶의 마디마다 크게 소용이 닿았던 물건들을 보관해 둔 상자가 있었다. 말없이 벽장 속에서 약간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인 그것을 구태여 얼마 전 대청소를 해버렸다. 번다한 세상을 살면서 지난 기억들에 대한 애틋한 정이 무슨 소용이랴 싶어서였다. 요행히 ‘대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몇 가지 중의 하나가 문진文鎭이다.

문자 그대로 종이를 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붓글씨나 그림을 그리는 화선지를 힘찬 붓질에도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여 주고 때로는 구김이 간 종이를 펴주기도 한다. 물리적인 기능 외에 그것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곁에 두기로 한 것이다. 바탕 종이를 누르고 고정시켜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해 주는 문진처럼 마음결에 제자리를 지켜, 삶이 평화롭게 깃들게 하리라는 소망을 조그만 물건에다 담았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게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살다보면 인간의 오욕칠정으로 인한 충돌이 곳곳에서 출몰한다. 야산의 능선처럼 온유하던 사람의 사이가 예각으로 날카로워진 까닭이다.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렁이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아 스스로를 올곧게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이 난분분하게 흩어질 때는 마음의 화선지를 지그시 누를 일이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늘 다면체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크게도, 작게도 보이도 또는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를테면 마음을 여하히 가지느냐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좌우되기도 하는 것이다.

연초에 받았던 카드는 십여 년 째 받고 있는 ‘연하장’이다. 그것을 보낸 선배에게 전화를 하여 그 동안의 적조를 푸는 것으로 한 해의 인사를 시작하곤 했다. 첫 인사에 관한 한 늘 그 분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지만 사람의 관계란 그런 것이었다. 서로 ‘길들여지기’ 나름인 것이다. 올해 육백 여장의 카드를 보냈고 그것을 해온 지 삼십 년이 되었다는 말을 이제야 할 만큼 그는 과묵하다. 그 많은 우편물을 보내는 번거로움을 차지하고라도 단어조차 이미 사어死語가 되고 있는 ‘연하장’을 굳이 보내고 있는 것은 지인들이 계속 받기를 원해서라고 한다. 주고, 받는 이 사이에 생긴 아름다운 관성이다. 처음부터 그 많은 수의 엽서를 보낸 것이 아니라 인연 닿는 이들이 많아지니 숫자가 자꾸 늘어났고 그 어느 즈음에 나도 받는 이의 명단에 편입된 것이다.

자신의 삶에 그토록 살뜰하게 복무하는 그는 문인이다. 동회의 한 귀퉁이를 빌려 차린 문학교실에 십여 년이 되도록 봉사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몇 달 터울로 가족 셋을 잃었다. 이태 만에 두 분 시부모를 차례로 보내고 또 남편을 잃은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하던 것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것은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이어서’라고 했다.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그 마음먹기라는 것은 말처럼 녹록하지가 않다. 부모는 차치하고 생의 반려를 잃고서도 그렇게 꿋꿋할 수 있는 그의 세상에 대한 봇물 같은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결혼 직후부터 쓴 일기장이 책장 하나 가득 메운다는 일기 쓰기가 그의 자산인 듯 하였다. 매일 자신에게 묻고 대답해온 셈이다.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 보고 깊이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찰이라고 한다. 연하장 보내기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하였다.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질문의 기술이다. 이어지는 짤막한 질문들이 낚시의 미늘처럼 그의 말들을 낚아챘고 기왕에 과묵함이 깨어진 김에 그는 많은 말을 쏟아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자신의 생을 개간해온 그 어려움을 지면에 다 옮기지는 못한다. 그 삶이 튀기는 파편이 무수하였을 것임에도 그의 ‘진술’의 행간에 남아있는 푸근함과 온화함도 다 옮기지 못한다. 그라고 해서 어찌 마음의 격랑이 없었을 것인가. 그토록 반듯하게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문진은 무엇일까. 일상이나 삶의 격랑에서 자신을 관통하며 지르던 것들에게 그는 부드러움으로 일관했다. 어떤 날카로운 것에 부딪혀도 부드러움이란 그 자체의 완충작용으로 크게 부서지지 않음으로 해서라고 한다.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긴다’는 노자의 역설적인 경구는 눈부신 산업화 시대에 수공업적 가르침인 듯하나 음미하면 여전히 인생의 큰 지혜임이 분명하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그럼으로 또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인센티브는 품격과 자존심이라고 한다. 그것을 위하여 그는 그저 역지사지로 묵묵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것은 탁월한 인간관계를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로 산들바람 부는 골목길을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인간관계란 각자의 요량대로 통과해야하는 삶의 ‘비보호 구역’이다. 그것의 중요성과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공통분모이다. 비보호 지대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문진은 무엇일까. 그것이 없다면 탁월한 삶의 기술인 마음의 문진 하나 가져 보면 좋지 않으랴.

 

 

《현대문학》으로 등단. 현, 영남수필 문학회 회장.

한국예총 대구시연합회 예술상, 원종린 수필문학상 수상

작품집 《아날로그적인, 그 아름답고 그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