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완료|

 

씨알 하나

 

 

                                                                                       김원길

서랍 속에 열매 한 개가 있다. 어릴 적, 고향바닷가에서 만나 지금까지 나와 한 지붕 아래 살았으니 오랜 벗이다. 때때로 나는 이 암갈색 열매를 손에 쥐고 열대의 꽃과 과일로 덮여 있을 수마트라나 스리랑카를 떠올리곤 한다. 거기 사는 누군가가 내게 보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나기까지 족히 천 년이 걸렸을지 모른다. 낮에는 햇빛과 물새들을 동무 삼으며 바람과 해류에 몸을 맡겼을 테고, 밤이면 달과 별들이 그의 항로를 잡아 주었을 게다. 먼 옛날, 처용을 태운 배가 신라 땅 개운포에 닻을 내렸던 것처럼 유선형의 작은 열매 하나가 수만리 망망대해를 건너 사천만에 닿은 것이다. 무슨 전언傳言을 지니고 왔을까?

2천년 만에 핀 연꽃 얘기를 읽었다. 동경 부근의 늪에서 발견된 석기시대의 카누 안에는 연꽃 종자 세 개가 있었다. 두 개를 싹 틔웠더니 지금과 똑같은 꽃을 피웠다 한다. 오직 한 생각을 하며 2천 년을 기다리고 있던 연꽃 종자. 수천 번 계절이 바뀌고, 천둥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수십 번 왕조가 부침하는 동안 그들 셋은 어두운 카누에 누워 혼곤히 잠을 잔 것이다.

어느 진화생물학 교수는 ‘생물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태어나고, 꿈꾸고, 후세를 남기고 죽어가는 모든 현상이 유전자의 지시라는 것이다.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연꽃을 유전자의 매커니즘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어쩐지 삭막하다. 발아에 대한 갈망, 굽히지 않는 일편단심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 진흙에 뿌리를 박고, 연미한 꽃송이를 피우는 마음, 그것은 누가 뭐래도 순결한 마음이요, 고귀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과 씨앗의 삶이 같은 뿌리와 같은 철리에 닿아 있다고 할진대, 씨알은 그리움의 불꽃이요, 기다림의 함성이다. 저들의 꿈은 푸르고 삶은 숭고하여, 땅에 묻히면 한 그루 청정한 나무로 산다. 다른 목숨을 죽이는 일도 괴롭히는 일도 없이 가지에 새 앉게 하고. 그러기에 나는 저들의 신앙을 찬양하며, 저들의 종種을 숭상하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열매, 어느 나무의 씨알 하나. 그는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춘기를 넘기고, 한 여인과 일가를 이루고, 생의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을 거치는 동안에도, 야무지게 입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고요를 머금고 깊은 사유에 빠져 있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선정禪定에 들어있다. 껍질은 백자처럼 윤이 난다. 애기 머리카락 같은 가녀린 잔금이 새겨져서, 그 잔금 사이로 하얀 백사장이 밀려오다 가고, 끼룩거리는 물새소리와 파도소리가 들려오다 멀어진다. 한 방울의 물도 청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려고 서둘지 않는다. 누굴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으며, 회유나 설득을 꾀하지도 않는다. 눈감고 앉아서 그리움의 불꽃을 다스리며 오직 깨달음 이루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2천 년 전 아소카 대왕의 딸이 스리랑카에 보리수 가지 하나를 심었다는데, 어쩌면 이건 그 상가미타 공주의 보리수 열매일지도 모른다. 이 이국의 땅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그분의 점지일지 내가 어이 알랴. 먼 동쪽, 아침의 나라 내 고향 바닷가에서 낯선 소년을 만나, 그리고는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까지 나와 보낸 도반의 세월만도 넘은 사십 년이다.

새봄이다. 이젠 전언의 두루마리를 펼치게 놓아주어야겠다. 그러면 흙으로 가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푸른 숲을 일구는 생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맛보면서, 바람에 마음 설레며 이국의 하늘에 평화를 고하는 통증에 새로운 꿈을 꾸리라.

먼 훗날, 어느 바닷가에 어떤 소년이 나왔다가 아름다운 열매 한 알 주워 들고 집으로 돌아가겠다. 그날 내가 불었던 휘파람 불면서.

 

 

1947년 경남 사천생.

미국 L.A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