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회 |집중조명|

 

무소유

 

                                                                                 법  정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모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 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초를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 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생생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僧家의 유행기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질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해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그 방향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싸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 집중조명 |

 

● 작     품 : 법정의 <무소유>

● 참석인원 : 22명  

● 사     회 : 엄정식

● 정     리 : 박영덕

● 일     시 : 2010년 3월 20일

● 장     소 : 계간수필 사무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계간수필》 제 60회, 2010년 여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분이라 당황스러움 없이 이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수도자이기 때문에 행적이나 글에 종교적, 문학적 측면,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서 이 분의 사상까지 토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들추다 보니 김태길 선생님의 《나에 대한 사랑의 길》이라는 에세이집에 들어 있는 〈무책임한 마음의 평화>라는 글이 분명히 법정스님을 두고 쓰신 것 같더군요. 추모의 열기가 나라 안에 가득한 이때이지만 법정스님이 시간과 공간을 버렸다고 했으니 이 공간 안에서는 자유롭게 얘기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법정스님을 위한 길이고 그 작품이 오래도록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먼저 김진식 선생님께서 연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김진식 : 갑자기 지명된 일이라 조리 있게 하지는 못했고 단편적으로 있는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문학관이라는 것보다는 연보를 겸해서 그 분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제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법정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2010년 3월 11일 입적했습니다. 고향인 해남에서 11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내고, 12세부터 목포 유달산 기슭에서 살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학력은 조금씩 다른데, 최근 것을 보니 해인사 강원 대교과 졸업으로 되어 있으며 전남대 3년 수료라고 해놓은 곳도 있습니다.

출가는 1956년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같은 해 7월에 사미계를 수계했습니다. 그 이전에 조계사에서 한 번 인사를 드렸었는데, 그 인연으로 경남 통영 미래사에 계실 때 그곳을 찾아가서 제자가 되기를 청하고 머리를 깎은 것 같습니다.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스님을 계사戒師로 비구계를 수계하였고,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화상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습니다. 행적은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하였고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 원장을 지냈습니다. 1970년, 유신 전후해서는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1970년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선하였으며, 1987년 길상화吉祥華 김영한님이 자신의 소유인 요정 대원각을 불도량으로 만들어 달라며 시주의 뜻을 밝혀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분원(주지 현묘)으로 등록했는데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바꿔 등록하고 법정스님은 회주會主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강원도 산간 영월로 들어가 오두막집에서 생활을 한 것이 그의 행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상 및 성품은 〈미리 쓴 유서〉라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 선의식善意識이라는 말을 굉장히 강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텅빈 충만> 같은 글을 보면 철저한 단독자가 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품은 아주 깨끗한, 순수한 성품이었던 같습니다. 최근의 글은 전부 다 자기 성찰을 통한 참회의 글들입니다. 특히 참회에 대한 것은 어릴 적 친구들하고 엿장수를 속인 일, 특히 그 엿장수가 장애인이었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도 화음이나 배경음악이 들어간 것보다는 단순한 원음을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꾸미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싫어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종교관은 불교적 세계관을 범종교적으로 확대했습니다. “부처, 예수, 성모, 공자가 하나의 산의 정상이라면 산에 오르는 길에는 골짜기가 있다. 그리고 그 골짜기를 오르면 전부 다 정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말하자면 하나의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사상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간디와 소로우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했고 시인인 이해인 수녀와도 문학적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산방한담》 《텅빈충만》 《서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진리의 말씀》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일기일회》 등이 있고,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사회 :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연보 등을 시정해 주시거나, 우리가 법정스님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알고 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 분에 대한 것을 객관적으로 많이 알게 된다는 건 이 자리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문혜영 : 사람들이 출가를 하게 된 이유를 묻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우 당황스럽다고 하셨답니다. 특별히 얘기를 해줄 게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나는 전생에도 아마 스님이었을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어렸을 때 부친을 여의고 나서 성장기가 유복하지 않은 것이 출가하게 된 내면적인 영향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허세욱 : 출가의 동기, 이건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재현입니다. 최근 보도에 이런 게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 없는 집안에서 공부시켜 놓았더니 출가하였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답니다. 홀할머니와 홀어머니, 여동생만이 가족이었는데 그들을 버리고 갔을 때……. 이 장면은 이 분이 출가할 수 있는 동기도 되었겠지만, 문학할 수 있는 동기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큰 전기였는데 왜 그랬을까 가슴을 뭉클케 합니다.

사회 : 우리가 어느 정도 이 분에 대한 입체적 지식이랄까 그걸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작품 평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종완 선생님 말씀해 주시지요.                                                  

김종완 : 저는 우선 법정을 대단한 수필가라고 봅니다. 제가 그 분의 작품론을 쓸 때 직접 교정을 보셨는데 매우 흡족해 하셨지요. 예술의 범주 속에서 문예수필이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움[美]이라면, 종교인이 추구는 하는 것은 참[眞]입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참됨을 찾는 과정으로 글을 썼던 것입니다. 법정 문학의 장점은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구축한 성(成)이 아니라 구도자의 아름다움 즉, 구도의 길에서 우러나오는 과정(행동)의 선함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글은 말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의 행동이 아름답고, 그 행동으로 낳은 참된 정신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의 글을 읽고 난 제 결론은‘참[眞]이란 아름 답다.’라는 것입니다.

그의 글은 산사 주변의 미세한 자연의 변화로부터 시작합니다. 열 권이 넘는 그의 저서 속에 담긴 글들이 한결같이 그러하다면 독자들은 물릴 법도 한데, 읽어도 읽어도 물리지 않는 조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것은 작은 변화를 항상 새롭게 보는 깨어 있는 눈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모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오늘의 지정작품 〈무소유〉에 나오는 간디의 이 말은 법정의 좌우명이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무소유와 가난은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가난은 결핍이고 무소유는 자발적 가난이지요. 무소유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인데 비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꽉 찬 개념입니다. 그분 표현으로 하면 텅 빈 충만,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무소유가 결국은 텅 빈 충만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법정의 무소유는 이 작품 하나보다는 법정의 이야기 전부, 법정이 말씀하고 있는 작품 전반의 기조가 무소유라는 것입니다. 또 법정은 미美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무소유〉에서는 난 이야기를 했는데 난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차원이라는 건 미의 차원입니다. 아름다움 앞에서면 날이 선 칼날로 가슴을 베이는 듯한 그런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셨지요. 이렇게 미에 대한 아름다움을 타고 난 사람이 법정인데 그것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법정의 글은 진?선?미에 놓고 보면 종교적인 글을 쓰기 위해 진에 집착했던, 하지만 결국은 진에 집착했던 그마저도 아름답게 쓰고 말았어요. 그 점에서 법정은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습니다. 법정이 미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면 대중들하고 친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아름다운 개념이 대중들하고 친해지는 계기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무소유〉도 좋은 글이지만 〈빈 뜰〉이 법정의 글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무소유〉의 의의는 참으로 큰 것입니다. 왜 전쟁을 하는가?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사실은 소유욕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법정이 이 전쟁의 현장을 떠나 산으로 간 것은‘소유’의 인간역사를 〈무소유〉의 역사로 다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의식의 대혁명을 주창하는 것이지요. 삼라만상이 생일의 축복감에 쌓여 살고 있건만 오직 인간만이 소유의 개념에 매몰되어 삶 자체가 죽음인 연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법정스님, 그리하여 그가 쓴 글이 〈무소유〉입니다. 끝없는 소유의 욕망이 인간사의 불행의 근원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이야기들, 법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사회 : 김종완 선생님께서 법정 스님의 작품론을 말씀해 주시는 동안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갑니다. 다음은 참석회원들께서 자유롭게 한 말씀씩 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혜영 : 법정스님은 살아계실 때보다 돌아가셔서 더 큰 일깨움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너무 유명한 사람의 글은 접근해보고 싶은 마음이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의 글을 탐독하지 않다가 너무나 큰 마무리를 보고 나서 이렇게 큰 분이 계셨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저서를 세상에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글 쓰는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글다운 글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정스님께서 말빚을 가져가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그 말씀이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끝으로 수행을 하면서도 문학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감수성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스님은 돌아가셔서 더 큰 산으로 대접을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염정임 : 저는 법정스님의 인상이 인자함보다는 엄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신 자신도 스스로를 괴팍한 중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나 산 아래로 내려오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거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동심을 간직한 어린애 같은 천진스러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수필을 쓰지만 좋은 악기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듯이, 글 쓰는 사람의 그릇이 훌륭해야지 좋은 수필이 나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정스님의 글들은 대개 청탁을 받아서 썼고 마감에 쫓기면서 쓰신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물이 흐르듯이 써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인격과 인생관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합평회를 통해 그분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원현 : 법정의 수필에는 물 흐르듯 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정의 수필은 그냥 건져올리고 손바닥을 펴고 받아내는 것 같습니다. 의도하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술술 흘러나오는 것을 문자화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천이면서도 개인적으로 법정의 수필을 좋아합니다.

수필 <무소유>는 이원적 대립상의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소유 대 무소유, 난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 난을 지인에게 선물해 버리는 등 가짐(얽매임)에서 버림으로 그것을 비움으로 보는데, 이 비움은 세계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보다 경이롭게 바라보는 적극적 자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정의 무소유엔 인간적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 버린다 해도 버려지지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삶입니다.

정진권 : 우선, 저는 평소 무엇이든지 딱딱 끊는 사람은 사람도 그렇게 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보면‘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이런 경지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난이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사는 식물이 아니라 하니 옮겨 심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 저 같으면 난을 기르는 것이 괴롭지만 길러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법정을 성인이라고 생각할 때 할 수 있는 얘기이고, 상대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면 버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법정을 성인의 자리에 놓으면 허점이 있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보면 너무 위대한 사람입니다.

유혜자 : 저는 전에 신문에서 이 분의 글을 많이 읽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뼈대가 있었으며 또한 감수성으로 미감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좋아했습니다. 무소유에 이르러서는 일반인들이 실천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나타내셨는데, 종교인인데도 그것을 딱딱하지 않게 나타내셨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이 분의 글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면서 사는 종교인이었기에 든든하게 생각했지요. 이번을 계기로 그분의 작품과 김종완 선생님의 작품론을 읽으면서 법정스님의 진가를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유영애 : 저는 오늘 처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여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은 가셨지만 그 향기는 영원한 것 같습니다.

박영자 : 저는  이 분의 작품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의 유언에서“내 머리맡에 있는 책을 신문 배달하는 아이에게 주어라.”라고 하셨는데 그게 40여 년 전의 일이라는 거지요. 지금은 그 아이가 50대나 60대가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나오는데 슬쩍 지나가는 얘기에서도 인생의 말빚을 책임지시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였던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사회 : 여러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모임의 의의를 생각하셔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문장가로서, 문인으로서 이 글을 어떻게 보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병호 : 문장이나 구성이 크게 흠잡을 것이 없는 작품입니다만 걸리는 점 두어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3년이나 기르던 난에의 집착을 벗어나기 위해 친구에게 줘 버리고 마음이 날아갈 듯 후련해집니다. 난에의 집착이 곧 소유이고, 그것을 친구에게 주어 버리는 것이 바로 무소유같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무소유가 자꾸 갸우뚱해집니다. 난 때문에 불편을 느껴 그것을 친구에게 떠맡기고, 그렇듯 무소유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요.  그 무소유의 실천을 그 난을 태생지로 옮겨 자생할 수 있게 풀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결미단락에서“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이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에 눈길이 멈춰집니다. 왜 소유(물량)는 우리의 삶에‘뿌리 내릴’가능성을 제공하지 못할까 하는 등의 소유, 무소유에 대한 형상화가 있어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쩐지 그 변죽만 맴돈 것 같습니다.‘공수래 공수거’란 말을 밥 먹듯 외고 살아온 터 아닙니까.

박양근 : 이 작품은 법정스님의 모든 수필을 이해할 수 있는 메타수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무소유의 무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의 개념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주의 빈 공간 자체로 귀의하는 것을 무라고 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면 법정스님의 작품이 왜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느냐를 생각하면 서두, 전개, 결말이 각각 완벽한 주제를 이루고 있는데, 그 밑을 흐르는 일반적 흐름이 있음으로부터 없음으로, 욕심으로부터 무욕으로 변화의 고리가 이어져 갑니다. 마치 기차바퀴를 이어가는 축 같은 것으로 이것이 법정스님만의 독특한 수필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내용은 불교적인데 전문적인 불교용어를 가급적 쓰지 않았습니다. 탈불교적인 표현으로 불교적인 얘기를 한 것이지요. 또 하나는 ‘난초같이 말없는 친구에게 주었다.’라는 표현을 보면서 처음에는 쉽게 이해하지를 못했으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법정스님이 강직한 분이셨지만 때로는 자기 운명이랄까 삶에 대한 희롱의식이 있어 이런 데서 살짝 드러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장들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과장이랄까 미화적인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걸 좋게 이야기하면 자유자재의 표현을 체득하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 법정스님은 정체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변해가는 도의 세계를 글을 통해서 수련하는 것이라 해석하고 이것은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조한숙 : 법정스님의 <빈 뜰> <초가을 산정에서>를 읽었습니다. 작품으로 만나는 법정스님은 정겹고 다정하고 청정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분으로 다가옵니다. 그분의 작품 <빈 뜰>에서 보면 달맞이꽃의 개화를 애처로워하셨어요. 저는 이 작품을 독자로 읽기보다 여성으로서 읽었어요. 산고를 겪고 아이를 낳는 여인처럼 남몰래 산고를 치르고 밤에 피는 달맞이꽃의 그 아픔을 함께 감내했던 법정스님. 달맞이꽃의 개화를 그냥 혼자 내버려둘 수 없어 개화의 그 아픔을 함께 하며 어둠이 내리는 뜰을 서성거린다는 법정스님이 만일 우리들처럼 필부필부의 삶을 살았다면 아내를 무척 사랑하셨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엣지 있는(바르게 각이 서 있는) 성품을 지닌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법정스님의 성품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성향은 그의 작품에 사회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가을 산정에서> 보면 알 수 있어요. ‘누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신문이나 방송 등 보도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정복’이란 말을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 있다. 잠시 어떤 산의 정상에 깃발을 꽂고 그걸 증거하기 위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산을 정복한 것이 되는가? 단 30분도 못 버티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오지 않을 수 없을 처지인데, 정복이라니 이 얼마나 허황하고 무엄한 소리인가…….’이렇게 바른 말은 법정스님 아니고는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말일 것입니다. 지금 법정스님이 가시고 나니 스님의 청정한 수필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김녹희 : 난을 보면서 그렇게 여리고 섬세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인데, 그렇게 집착하며 키울 정도로 자기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는데, 자기만 바라보고 산 가족들을 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스님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홍혜랑 : 시간이 많이 지나서 부분적인 의문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무소유〉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생각났습니다. 아까 다른 선생님께서 정이 들었던 난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리는 매정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는데, 저는 난을 기르는 그 마음의 자체가 집착인데, 이 집착과 애정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집착은 소유의 개념이고 애정은 존재의 개념이라는 거지요. 법정스님이 난을 애지중지 키운 것은 결국은 소유의 개념, 즉 집착으로 키운 것이며 애정이 묻어있는 대상이었다면 그렇게 버릴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겁니다. 소유의 개념인 집착이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인데 그래서 이 글이 애매하다는 겁니다. 이것을 소유로 본다면 글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경은 :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내용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대중들에게서 다가가 인간적인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구도자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분으로서 그 시각이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평등의 입장이어서, 오히려 그 격을 높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말미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라고 말한 대목은 인간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욕망의 모습이 아닐까요. 저는 이 분이 고승이라기보다는 대중의 곁에 가까이 다가선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스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오늘 갑작스런 변경에도 불구하고 심도 높은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끝으로 회장님께서 합평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허세욱 : 최근 입적한 법정스님의 추모 열기가 식기 전에 합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갑자기 임무를 맡은 사회자와 두 분의 약정 토론자께서 열성적인 준비를 해주셨고, 또 회원들의 참여에 힘입어 난상토론을 진지하게 벌였습니다.

〈무소유〉는 법정 한평생, 열여섯 권의 수필집에 일관한 주제, 신앙이었습니다. 먼저 〈무소유〉를 분석하면 세 개의 문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소유는 무엇에 속박됨이요, 집착은 괴로움이라는 명제였고, 두 번째는 사랑했던 난초 두 분을 친구에게 증여함으로써 소유에서 해방되었다는 전기를 마련했고, 세 번째는‘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구성이 탄탄하고 주제가 뚜렷함으로써 사유思惟수필로 손색이 없으나 지나친 강조에 중복이 보였고, 미적인 감동은 〈빈 뜰〉이나 〈초가을 산정에서〉에 미치지 못했습니다.‘이때부터 나는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그 이후는 바로 강조와 중복이었습니다. 축약했거나 아예 할애했더라면 수필로서는 좋았을 뻔했습니다.

법정 수필의 품격이나 배경을 볼 때, 그는 비록 노자나 장자를 거명 또는 인용치 않았으나 그 정서는 불가적이면서도 차라리 노장의 도가철학에 젖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점은 앞으로 법정의 연구에 시사되는 바 크리라 생각합니다. 〈무소유〉의 결정적인 대목은 거의 《도덕경》의 역해 같은 느낌입니다. 대체로 노자의‘도법자연道法自然’그 방법으로‘반박귀진返朴歸眞’(소박한 생활로써 진리를 이해한다.)과‘곡즉전曲卽全’(굽히면 온전하다.) 등을 실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수필에선 결코 불가의‘극락왕생’을 적극적으로 설법한 대목이 적었습니다.

사회 : 긴 시간 동안 회원님들께서 열렬하게 토론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