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깬 인간의 꿈· 희망

 

  

                                                                                최상묵

옛날 필자가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가정기록부에는 반드시 ‘장래의 희망’을 적는 칸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설문 문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심정으로 그 칸을 메울 때는 나도 모르게 설렘을 느끼고, 아련한 꿈을 꾸는 듯한 느낌 같은 것으로 그 칸을 메운 것으로 기억된다. 무엇을 적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늘에 계신 신神이 판도라를 이 세상으로 내려 보내시어 에피메데우스의 아내가 되도록 하시면서 인간들의 불행이 가득 담긴 상자 하나를 들려 보내며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상자를 열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러나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판도라는 그 상자를 열어보고야 말았다. 그 상자 속에서 질병, 죄악, 북수심, 시기심 같은 나쁜 것들이 뛰쳐나왔다. 당황하여 뒤늦게 상자를 닫게 되었을 때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희망’만이 상자 속에 남게 되었다.

그 후 신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따라 결국 희망이 제일 마지막에 빠져나와 인간들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에도 희망을 가지면서 시간을 소모하게 만들었다고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미 빠져나간 불행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희망이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희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유일무이한 감정이며 그 감정은 신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공포처럼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때처럼 얼굴을 붉게 만들지도 않는다.

희망은 인간의 정신에 활력소 같은 역할을 하고 삶의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근본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미래의 어떤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우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희망을 가지려면 특별히 추구하는 목표가 필요하다. 그 목표가 꼭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미래에는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막연한 목표도 희망이 될 수 있다. 목표가 설정이 되면 그 목표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하며 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과 믿음이 따라야 할 것이다. 높은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남보다 자기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학계, 정계, 스포츠, 직장 등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희망에 찬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성공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는 일에 목표를 더 높게, 더 많이 세워 맡은 임무를 끝까지 해내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를 긍정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희망에 찬 사람들은 좋은 일이 일어나면 자기 성격 탓이고 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고 나쁜 일은 지극히 우연히 한 번씩 일어나는 불운으로 치부해 버리는 낙관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도한 낙관주의는 반드시 만족한 삶의 방법은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은 항상 어떤 사건들이 자기 기대대로 풀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위험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세상에 모든 일이 반드시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 질병으로 고통받게 되고 결국은 죽게 되리라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매우 쓸쓸하고 우울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두려움에 바둥거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게 잘 되리라는 소박한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대부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쪽보다는 좀 낙관적인 면을 더 가지고 있는 편이다. ‘설마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만큼은 아무 문제도 안 생길 것으로 희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희망은 좋은 감정이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나쁜 일이 일어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불행한 상황을 더 좋은 상황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실직을 했을 때도 그것을 재난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사랑, 희망, 신념, 환희 같은 긍정적 정서가 내분비계와 면역체계의 기능에 작용하여 질병의 치유력을 향상시킨다는 의학적 보고는 많이 있다. 희망은 스트레스에 저항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낙관론자들이 질병에 덜 걸리고 더 오래 산다고 되어 있다. 인간의 뇌가 증오, 불안, 절망 같은 부정적 정서 상태에 있을 때 인체에 화학변화를 일으켜 질병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보고는 너무나 많다. 희망이 질병의 진전을 늦추고, 호전시킨다기보다는 절망이 질병의 진전을 더 빠르게 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희망은 앞으로 나타날 결과에 대한 기대를 동반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은 곧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동반하기 마련이다. 앞으로 일어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나쁜 결과를 예견하고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좋은 결과를 희망하거나 항상 그 선택은 두 가지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 즉, 유리잔에 반쯤 물이 찼는지 아니면 반쯤 물이 비었는지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견해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희망이 항상 어떤 두려움을 동반하는 부수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령 희망이 성공과 건강에 기여하고 있다 해도 희망이 크면 클수록 반드시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어떤 희망사항이 실패할 것 같다고 불안해하고 있다가 정말로 실패했을 때는 좀 덜 실망하게도 될 것이며 성공하면 더 기쁨이 커질 것이다. 때문에 실패를 예상하면 불안이 줄어들기 때문에 방어적인 신중한 비관주의가 효과적인 상황대처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계속 실패를 해도 놀라운 의지력으로 다시 시도하고 계속 실패가 일어나면 자아 존중감이 손상이 된다.

그렇지만 희망을 버리는 것은 그 일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다. 자기가 바라고 원하고 있는 희망사항에 대해 스스로 바꾸고 싶은 것이  없는가? 또 그 희망사항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 사항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분석해 본 후에 다시 찬찬히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희망을 갈망하면서 항상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며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희망은 현명한 사람에겐 기운을 주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을 달콤하게 유혹하여 희망을 안고 환상 속에 빠져들게 한다. 우리는 지금 현실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들 걱정 하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고들 다들 말하고 있다. 희망이 그저 희망으로 끝날 때 그것은 무의미한 환상으로 끝날 뿐이다. 희망은 실현될 때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필자는 절실한 한 가지 소원(희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온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원장.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수필집  《우리는 神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