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미용실

 

 

                                                                                          이옥자

‘탤런트 미용실’에 탤런트는 오지 않는다.

원장이며 미용사요 종업원으로 1인 3역인 ‘미스 김’도 탤런트라는 직업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그 이름에 끌려 미용실을 찾았다가도 어느 면소재지 삼거리 미장원보다도 못한 분위기에 되돌아설지도 모른다. 흰색 아크릴이 먼지 빛깔로 바래가는 작은 간판만 25년이 지나도록 의미 없는 상호를 지킬 뿐이다. 서초동 소재의 4차선 도로변이지만, 경사진 거리는 한산하고 우거진 가로수가 드문드문 나앉은 간판을 뒤덮고 있다.

문 밖에 서면 저만큼 산 아래 우리나라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높다는 빌라의 핑크빛 성채가 그득하다. 주변의 연립주택들도 줄줄이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되었는데, 집세 따라 한두 집 건너로 두어 번 자리만 옮겼을 뿐 내내 그 모양이 그 모양이다.

이사 때면 10여 년 묵은 분위기를 일신할 요량으로 인테리어를 하긴 하는데, 한 해를 못 넘겨 구식이 되고 만다. 두 개의 수동식 높낮이 조절 의자를 자동식으로 교체하지 않는 이상 모던하고 럭셔리한 분위기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경비 때문인지 실내장식도 뒷북만 일삼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눈여겨보아 지적하는 손님도 없다.

탤런트 미용실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나이를 먹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무심히 나이를 먹는 것이 어찌 탤런트 미용실만일까. ‘미스 김’, 아니 ‘미시즈 김’, ‘김 원장’도 그렇게 나이를 먹고, 그곳을 드나드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탤런트 미용실과 나, 김 원장과 나와의 세월도 사반 세기가 넘었다. 엄밀히 27년간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 오랜 동안 한결같은 얼굴로 마주본 날들…….

옆 동네 시장 입구 미장원에서 새내기 미용사인 미스 김을 처음 보았다. 전라도 농촌이 고향인 그녀는 화려하고 거센 주인과 손님들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쭈뼛대며 말이 없고 작은 실수에도 화들짝 놀라는 그녀. 10여 년 전 대학생이 되며 맞아야했던 서울생활이 불안하기만 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유치원 재롱잔치며 생일잔치에 몇 번 그녀에게 머리를 맡겼던지. 얼마 후 나는 서초동으로 이사를 했다.        

한적한 주택가 도로변에서 ‘탤런트 미용실’ 간판을 찾은 것은 몇 달 후였다. 왕래하는 차량도 지나는 행인도 드문 곳에서 영업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니 아쉬운 대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도 허겁지겁 미용실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전류에 화들짝 놀랐다. ‘이 넓은 서울에서…!’라는 경이감으로 미스 김과 나는 한참을 말없이 마주보았다. 그녀는 결혼을 하여 이 길가 동네 어귀에 살림방이 딸린 작은 미용실을 직접 개업한 것이다.

나는 미스 김에게 나의 일상과 집안의 애경사, 아이들의 진학, 결혼까지도 보고 아닌 보고를 해야 하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날의 모임이나 행사에 따라 머리 모양을 그녀의 손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거울 속 표정으로 그날의 기분까지도 읽어내는 그녀에게 나는 대책 없이 감정에 쏠려 눈물을 글썽여 보이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그녀는 말없이 머리를 매만진 후, “언니는 지금도 처음 모습 그대로예요.”라는 착한 거짓말로 나를 웃게 한다.  

딸아이는 그녀의 드라이 솜씨를 두고 ‘신의 손’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유명한 미용실을 다녀보아도 그녀의 기술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한다.

미스 김은 시간을 오래 잡지 않는다. 열이 가해진 기구를 오래 사용하면 머릿결도 나빠지고, 수분이 증발해버린 상태에서 계속 머리를 만지면 윤기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스트레이트는 10분, 롤컬은 20분, 올림머리는 25분이면 완성이다. 얌전한 말씨와 신중한 행동에 비해 손은 재바르고 야무지기 이를 데 없다. 미용에 관한한 판단력도 빠르다.

언젠가 친구들과 어울려 명동의 큰 미용실에 간 일이 있다. 미용사도 수십 명이고 장비도 대단하다. 세련된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원두커피를 마시며 화보책자를 뒤적이는 여자들을 보니, 동네 미용실의 다섯 배 가량의 비용이 그다지 마음 쓰이지 않았다. 남녀 미용사들의 상냥한 미소와 서비스에 내 머리는 저절로 브릿지트 바르토나 카트린느 드뇌브의 멋진 웨이브로 재생될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원하는 모양을 이야기하려 하자, 담당 미용사는 “제가 모두 알아서 해드립니다.”라며 엷은 미소로 말을 자른다. 그 결과 내 머리는 앞서 한 여자와 다를 바 없고, 그 앞서 한 여자와도 동일한 모양이었다.

미스 김은 왜 ‘탤런트’라는 이름을 미용실 상호로 내걸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해 물어본 적도, 해답 비슷한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다만 미용에 관한한 그녀는 깊은 애정과 무한한 ‘달란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며 그동안 그녀에게 내 머리를 맡겼던 것 같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기술을 앞세우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자기 얼굴에 맞는 머리 모양은 본인이 가장 잘 알아요. 남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본인이 싫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달란트는 손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타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미의식이 그녀를 진실로 재능 있는 미용사로 살아가게 한다. 그리하여 30년, 아니 40년이라도 나와의 행복한 동행은 틀림없는 일이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이나 인생삼락人生三樂의 버전으로 ‘현대삼락現代三樂’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공맹孔孟에 비해 감각적인 비유가 의외로 인간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러나 사람, 그 중에서도 여자에게는 현대인의 즐거움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용모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어도 나의 일신이 엉망으로 헝클어진 상태라면 어디라도 안 가고, 누구라도 안 만나고 싶은 것이 여자다. 현시적 본능 때문일까. 나이에 관계없이 시들 줄 모르는 나르시시즘 때문일까.

오늘도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탤런트표 헤어스타일로 당당하게 외출을 준비한다.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시간은 스무 살을 갓 넘겼던 그녀를 중년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러나 내겐 처음의 그 모습 때문인지, 청소년인 두 아들을 둔 그녀를 보고 무심결에 “미스 김!” 하고 부른다. 가당치도 않은 호칭에도 우리의 세월을 수긍하듯, “네!” 하는 그녀의 대답은 스스럼없고 경쾌하다. 의아해하는 다른 손님들 사이로 그녀와 나만이 알고 있는 미소가 번진다.

벽면 TV에서는 성형미인 탤런트가 앙앙대며 자기 좀 보아달라고 안달인데, 탤런트 미용실의 미스 김, 아니 김 원장은 시선에 아랑곳없이 가위손만 움직인다. 상큼한 머리의 여자가 거울 속에서 웃고 있다.

 

 

199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회원.

수필집  《안개는 나를 유혹한다》,  《열대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