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 소리*

 

 

                                                                                 구민정

바다 건너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가 손짓한다. 유채꽃 피는 춘삼월에 올레길을 걷자는 약속을 앞둔 터였지만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석양처럼 걸려 있는 겨울의 끝자락, 주저 없이 남편의 동료들과 여행길에 올랐다. “어서들 오세요.” 소탈하게 웃는 그의 미소가 남녘 봄빛을 닮았다.

예정에 없는 올레길에 든다. 세 남자가 앞서 걷는다. 말없이 그 뒤를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 방향을 향해 걷는데 세 남자는 반대편에서 시작되는 길을 거슬러 오른다. 시작과 종착지가 따로 있겠는가, 들고 나는 곳이 곧 길의 시작이고 끝인 것을.

들판을 지나 오름을 오르고 들녘을 지나 동네로 향하는 샛길로 든다. 해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에둘러 쌓은 검은 돌담이 구불구불 마을 안까지 이어진다. 바닷가 섬 마을 골목 풍경이 정겹다. 울담을 돌아서면 마당 깊은 집, 주인이 쉬어가라며 길손을 불러 세울 것처럼 곰살갑다.

바다를 곁에 두고 한참을 걷다 해안가로 내려선다.  

아직 겨울, 망망대해로부터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든다. 바람을 등에 업은 파도가 너울거린다. 꿀렁꿀렁 춤을 추다 한순간에 몸을 부린다. 저렇듯 온몸을 던져 부서져 내릴 수가 있을까…….

시퍼런 파도가 새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 후련하다. 몸을 숙여 바닷물을 손에 담는다. 별다른 저항 없이 손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이 바다에 들면 바람과 더불어 수천수만 년 섬을 조각한다.

바람결이 잠잠해졌을 때,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시선을 끈다. 멀지 않은 곳에 하얀 부표가 떠 있고 주변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수면 위에서 숨을 고른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 하나, 둘, 셋……. 그 모습을 주시하며 기다림을 익힌다. ‘호이―’ 비로소 수면 위로 길고 가느다란 숨비소리 내뿜는다. 지켜보던 숨통이 다 트인다.

수십 년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꿈의 바다가 말라가면서 숨비소리 깊어간다. 쉽사리 멈출 수 없는 고단한 몸짓이다. 심해의 수압을 견디며 작업해야하는 해녀들은 물에 들지 않는 날은 두통을 달고 산다. 그러다가도 물속에만 들면 일순 고통을 잊을 수 있단다. 그래서 다시금 깊고 어두운 세상을 유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헛헛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세 남자, 한날 스물다섯 해 넘도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은퇴가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나이다. 꿈을 채 펼쳐보지 못한 젊은 실업자와 꿈을 접기엔 아직 이른 오십 초반의 은퇴자가 늘어가는 시대, 많은 사람들 명치끝에 알 수 없는 멍울이 생겨 통증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마주한 바다에서 숨비소리 듣는다. 애써 다독이다 응어리진 물의 숨비소리를 토해낸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세 남자 뒤를 따라 묵묵히 걸었다. 뭇사람들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것이라고 쉽게 건네지 못한다. 지금껏 내리 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그리 살아왔으니 다른 길로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색다르지 않겠는가. 다소 시일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 가슴에 올곧은 심지 하나 세우고 있다면 흔들리는 바람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나는 저들이 충분히 숨고르기 하여 이내 다시 곧추서리라 믿는다.

바다, 올레길에서 세 남자가 새롭게 숨을 고른다.

돌아서는 세 남자 등 뒤로 헤엄치는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쪹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참았던 숨을 물 밖으로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를 말한다.  

 

 

《계간수필》로 등단(2003년).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 [토방] 동인.

《빈혈로 흘러내리는 달빛》 등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