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산문⑦

 

 

<루이스 캐롤>

 

 

                                                                             버지니아 울프

논서치 출판사가 루이스 캐롤의 전체 작품을 1,293쪽의 두툼한 책으로 출판했다. 그래서 변명할 여지없이, 루이스 캐롤은 최종적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하게 그의 전부를 파악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한다. 또 다시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는 루이스 캐롤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바라보자 우리는 옥스퍼드 대학의 성직자를 본다. 우리는 C. L. 다지슨 목사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바라보자 요정 같은 존재가 보인다. 책은 우리 손 안에서 둘로 깨어진다. 그것을 결합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전기에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C. L. 다지슨 목사는 전기가 없다. 그는 너무도 가볍게 세상을 지나가서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너무도 수동적으로 옥스퍼드 대학으로 녹아 들어갔었기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관습을 받아들였다. 그는 점잔빼고, 까다로우며, 경건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만약 19세기 옥스퍼드 대학의 학감이 진수가 있다면 그가 바로 그 진수였다. 그는 너무도 선해서 그의 누이들은 그를 숭배했고, 너무도 순수해서 그의 조카는 그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루이스 캐롤의 삶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가능성이 틀림없이 있다고 암시한다. 허나 다지슨 씨는 당장에 그런 그림자를 부인한다. 그는 “나의 삶은 모든 시험들과 고통에서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무채색의 젤리는 그 안에 완벽하게 단단한 결정체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년 시절은 정상적으로는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기묘한 일이다. 유년 시절이라는 작은 뭉치는 소년이나 소녀가 성장한 남자나 여자가 되었을 때도 지속된다. 유년 시절은 때로는 낮에, 밤에 더 자주 돌아온다. 하지만 루이스 캐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었다. 무슨 까닭인지, 우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유년 시절을 예리하게 절단하였다. 유년 시절 전부가 원래대로 그의 안에 숨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흩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나이 들면서, 그의 존재 한가운데에 있는 이 장애물, 순수한 유년 시절이라는 이 단단한 덩어리는 성숙한 남자에게 자양물을 차단하고 굶겼다. 그는 어른의 세계를 그림자처럼 통과해갔고, 단지 이스트본의 해변에서 작은 소녀들의 실내용 어린이옷을 안전핀으로 꽂아 고정시켜 주면서 견고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유년 시절이 그의 내부에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이들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것을 재창조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우리 또한 다시 아이들이 된다.         

우리를 아이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는 우선 우리를 잠들게 한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낙하가 절대로 끝나지 않나요?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우리는 그 무시무시하고, 터무니없이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논리적인 세계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시간은 달음박질하고, 그리곤 완벽하게 정지했다. 그곳에서 공간은 길게 뻗어나갔고, 그리곤 수축했다. 그곳은 잠의 세계이고, 그곳은 또한 꿈의 세계였다. 어떤 의식적인 노력도 없이 잠이 왔고, 하얀 토끼, 해마 그리고 목수장이가 차례로, 하나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바뀌었다. 그들은 마음을 가로질러 깡총 뛰고 펄쩍 뛰어서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두 권의 앨리스1)는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우리가 아이들이 되는 유일한 책들이다. 윌슨 대통령, 빅토리아 여왕, 타임즈 지의 선도적 작가, 작고한 샐리즈베리 경, 당신이 얼마나 나이가 들었건, 당신이 얼마나 중요하거나,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건, 당신은 다시 아이가 된다. 아이가 되는 것은 과장 없이 바로 글자 그대로다. 모든 것이 너무도 기묘해서, 어떤 것도 놀랍지 않다. 너무도 무자비하고, 너무도 냉혹하지만, 너무도 격렬해서, 속물 한 명, 그림자 하나가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것은 그런 것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것 또한 그렇다. 그것은 세상을 뒤집어서 보는 것이다. 많은 위대한 풍자작가들과 도덕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세상을 뒤집어서 보여주었고, 어른들이 세상을 보는 대로, 우리가 그것을 잔인하게 보게 만든다. 오직 루이스 캐롤만이 아이가 세상을 보는 대로 그것을 뒤집어서 보여주고, 아이들이 웃듯이 대책 없이 웃게 해준다. 순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의 작은 숲으로 따라 내려가며, 우리는 웃고, 웃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들은 골무를 끼고 그것을 찾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찾았다.

그들은 포크를 들고 기대에 차서 그것을 뒤쫓았다….

 

그리곤 우리는 깨어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어떤 전환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깨어나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C. L. 다지슨 목사였나? 루이스 캐롤이었나? 아니면 둘이 합쳐진 것인가? 이 집합된 대상은 보울드러2)보다 한술 더 떠서 셰익스피어의 삭제 판을 영국의 처녀들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들려 의도했다. 그들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언제나, 언제나 ‘삶의 진정한 목적은 인격을 성장시키는 것’임을 깨달으라고 간청한다. 그러니 1,293쪽 안에조차, ‘완결’같은 그런 어떤 것이 있을까?

 

1)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와 Through the Looking Glass를 말한다.

2) Thomas Bouldler (1754~1825) : 영국의 편집자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도덕상 부적당한다고 생각되는 대목을 삭제하고 The Family Shakespeare를 10권으로 1818년에 출판했다.

 

|세계의 명산문⑦|

버지니아 울프와 <루이스 캐롤>

                                       

 해설_ 정명희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인 버지니아 울프는 주로 모더니즘의 소설가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녀는 400편이 넘는 에세이들을 쓴 에세이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에세이들은 주요한 영국 작가들을 거의 다 포함하는 서평들이 주를 이루는데, 일반적인 서평들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비평적 에세이는 일반적으로 작품과 작가를 설명하는 정보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비평하는 작품과 작가가 당연히 중심이며, 비평가의 의견은 이차적인 것이다. 하지만 울프의 에세이는 작가와 작품에 관한 평론이라 할 수 없게 여러 요소들을 복잡하게 결합한다. 그녀는 장난스러울 정도로 허구의 요소를 사용하며, 자유롭게 주제를 벗어나서 결론이 나지 않는 몽상을 전개하기도 하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제기하며, 제기된 주제가 무엇이건 전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에세이를 비평자의 견해 내지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별개의 예술 장르로 만든다.  

〈루이스 캐롤〉에서 울프는 언제나처럼 이분법적으로 대립된 이해의 패턴을 제시한다. 그녀는 C. L. 다지슨 목사와 필명인 루이스 캐롤을 대조시키며, 이름들이 상징하는 양극화되고 모순된 인상들로 한순간 작가의 초상을 완성한다. 루이스 캐롤은 단순히 하나의 특질, 혹은 상충하는 특질들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없이 애매모호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두 이름이 구성하는 복잡한 인물을 말끔하게 해명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두 권의 《앨리스》는 “그 안에서 ‘독자’가 아이들이 되는 유일한 책들”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원칙으로 캐롤이라는 작가의 전 존재를 한순간 강렬하게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의 역할을 한다. 그녀의 짧은 에세이는 《앨리스》들을 축약하듯이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역동적인 유희의 리듬을 구현하며, 작품들의 진수가 마치 환상처럼 순간적으로 감지되는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옮긴이 및 해설

New York University에서 Virginia Woolf's Aesthetic of Androgyny 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Mediating Virginia Woolf for Korean Readers>, 〈≪세월≫: 불연속적인 내러티브의 연속성>, <≪막간≫: 집적된 의식의 내러티브> 등이 있고, 역서로 ≪댈러웨이 부인≫, ≪막간≫, ≪버지니어 울프: 존재의 순간들, 광기를 넘어서≫ 등이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