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 다시 읽는 글 ⑮ |추모의 글|

 

난대서숙蘭臺書塾

 

 

                                                                                           김국자

난대서숙에서 이응백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배운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나이가 먹어 가면서 체력이 약해지니 배우는 것으로 힘을 내려는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배우다 보니 그곳에 즐거움이 있었다. 사실 학교 시절 이런 즐거움을 맞보았더라면 세상을 다르게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1996년 6월에 마포에 있는 선생님의 국어연구소 사무실에서 손바닥만한 칠판을 임시로 세우고 몇몇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첫 교재는 고문진보古文眞寶였다. 고문진보는 글자 그대로 고문의 참된 보배라는 뜻으로  고문 중에서 특히 보배로운 것을 뽑아 시詩와 문文으로 분류 편찬하여 전집은 시편, 후집은 문편으로 언제 누가 편찬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첫 작품은 주무숙周戊叔의 애련설愛蓮說이었다. 중국의 고전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내용도 좋지만 글을 읽어 주시는 낭랑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글방의 분위기가 나서 더욱 좋았다.

‘물수, 풀초 이끼야…….’ 한 자씩 차근차근 풀이해 주시는 가르침은 초보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질문을 친절하게 받아주시고, 숙제도 내주셨다. 배운 문장을 써오면 틀린 글자를 고쳐주셨다. 그곳에서 만난 이백李白, 한유韓愈, 도연명陶淵明 등등……. 주옥 같은 문장은 나에게 샘물을 마시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이백의 시에 매료되어 그의 시를 외우는 재미도 붙였다. 그런데 배우는 재미를 느끼는 순간부터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딱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물이 흘러내려도 콩나물이 자라듯이 내 몸 속 어디엔가 저장되어 있겠지 하며 위로했다.

‘學如猶恐失之’. 공부란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것이라는 공자님의 말씀도 있지 않은가!

그 후 논어論語를 배우기 시작해서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을 끝마치고 2008년 시전詩傳을 시작하다가 선생님과의 공부가 중단되었다.

그동안 난대서숙을 거쳐 간 학생들도 많았다. 여러 분야에서 은퇴한 선생님의 제자들도 그곳에서 만났다. 선생님께 배운 공부도 많지만 선생님의 긍정적이고 반듯하신 모습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의 만남은 큰 행운이었고 나는 퍽 행복한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사진을 잘 찍으셨다. 봄이면 진달래꽃 앞에 학생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 주셨고, 사무실 앞 장미넝쿨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 주셨다. 봄마다 사진 찍는 일이 연중행사가 되었다.  

선생님은 간간이 조시는 시간을 빼고는 늘 책을 보고 계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중국 장강 삼협 여행을 할 때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까지도 우리는 선생님과 공부했다. 노래도 잘 부르셨다. ‘노들강변’을 제일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병실에 누워 계시다니…….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시다 회복하시어 병실로 옮기셨다는 소식을 듣고  글방 학생들이 모여 S병원을 찾아갔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선생님은 여러 줄에 묶여 눈을 감고 계셨다. 간병인이 토닥토닥 선생님을 두드리니 눈을 힘없이 뜨셨다.

“한계주입니다. 조한숙입니다. 김국자입니다…….”학생들은 각자 자기 이름을 대고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말씀은 못하시지만 선생님은 흥분하시는 것 같았다. 메모지와 연필을 가져 오라고 간병인에게 손짓을 하셨다.  

메모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입문이 트면 말문이 트일 것입니다.”라고 쓰셨다. 목 속에 가래가 있어 말씀을 못하시고 식사도 죽을 코로 넣고 계셨다.  두 다리는 건강하시다는 표현으로 다리를 흔들어 보여 주셨다. 평소에 소신이 투철하고 매사가 반듯하신 선생님을 십 년 이상 옆에서 뵈었기에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에게 처음 배운 ‘애련설’을 외워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목청을 가다듬어 외우기 시작했다.

“水 陸草木之花에 可愛者甚蕃하니 晉陶淵明은 獨愛菊 하고…….

噫라 菊之愛 陶後에 鮮有聞이려니와 蓮之愛 同予者何人고 牧丹之愛 宜乎衆矣로다.”

선생님은 기뻐하며 박수를 쳐 주셨다. 퇴원하면 할 일이 많다고 하시며 방문한 사람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회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글방 학생들은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하며 병실을 나왔다.

그런데 2010년 3월 29일 새벽 4시에 난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영안실로 갔다. 노인 제자들로 가득한 영안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니 환하게 웃으시던 평소의 선생님이 거기 계셨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텅 비어 있던 저를 고문진보, 논어, 맹자, 중용, 대학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영면하시옵소서.”

 

 

《수필공원》으로 등단(93년).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하늘에는 새의 발자국이 없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