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乳泉

 

 

                                                                                    오세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란탐보르 국립공원 내 늪가, 어미호랑이 마킬리가 마른 숲 위에 누워 덩치가 자기만큼이나 한 두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첫배로 난 두 아들을 수호랑이 없이 혼자 키워온 어미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다른 수놈에게 자신과 자식들의 안위를 위해 마지못해 교미를 허락하고 숨어있는 새끼들에게 와 젖을 물리는 참이었다.

빤빤하게 말라붙어 나올 것도 없는 젖을 핥는 새끼들의 머리통을 앞발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어미, 이별의식(?)을 끝내고 돌아서 느릿한 걸음으로 떠나가는 새끼들을 촬영한 다큐를 TV에서 설 특집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 정경은 부지불식간에 나의 시계를 10년 전의 어느 가을날 오후로 되돌려 놓았다. 타계한 지 8년째인 벗, 박 지점장과 그의 노모 사이에 있었던 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사이 8년, 근래 들어 하나둘씩 유명을 달리하는 벗들 중에도 나는 유독 박 점장의 빈자리를 보다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해 오고 있다.

지방 출신인 그는 법대를 졸업하자 바로 은행에 입사해 대리승진이 빨랐다.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그에게 신세를 졌다. 그의 중?고, 대학동창들은 물론 타교 출신들인 우리들 여럿도 대출이라든가 금전관계의 법적 문제가 생기면 주저 없이 그에게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 함께 자취했던 고교동기의 중학 동창일 뿐으로 겨우 이름이나 알던 그와 가깝게 된 것도 집 장만을 위한 대출 건 때문이었다.

그는 발이 넓었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누구라 가리지 않고 임의롭게 말을 트고 스스럼없이 대했다. 계산에 밝은 반면 정에 약해 누구의 부탁도 거절을 못했다. 그것이 금융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일에 휘말리게 되고 끝내는 능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점장을 정점으로 옷을 벗어야 했다.

그와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음악에 대한 취향이 같았고 산을 좋아하는 것이 같았다. 맛에 대한 취향도 거짓말처럼 닮았다. 주량마저 비슷한데다 바둑 급수마저도 같았다. 그는 장안의 내로라하는 서민풍의 맛집을 기막히게 많이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덩달아 맛을 즐기고 맛집을 순례하는 식도락가가 됐다. 주중이면 만나 바둑을 두거나 새로 개발한 음식점을 찾는 것으로, 일요일이면 함께 산에 오르는 걸로 그와 나는 죽이 맞아 지냈다.

그는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서울생활이 답답하다며 혼자되고 나서도 계속 시골에 머물던 자당은 박 지점장이 은퇴를 하자 기꺼이 농사일을 접고 올라와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산 아래 2층집, 조망을 생각해 위층에 기거하시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아래층으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대퇴골 골절을 입는 불상사를 당했다.

응급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노모는 나흘 만에야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바로 문병을 갔다. 커튼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연하게 비쳐드는 병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얼어붙듯 입구에 그냥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젖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말라 붙어버린 앙상한 가슴, 시든 오디처럼 오글쪼글 오그라든 까만 꼭지를 박 지점장이 진지한 얼굴로 빨아대고 있었다. 침대 위에 기진하게 누워, 풀어헤쳐진 가슴을 아들에게 내어맡긴 채 고개를 벽 쪽으로 돌린 무표정한 팔순 노모의 얼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침대보를 자작자작 적시고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모성에 연결되는 강인한 생명력을 일깨우려함이었을까.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한 위로의 행위였을까. 모정을 그리는 어린 날로의 회귀였을까. ‘로마인의 이웃사랑 Caritas Romana’을 소재로 한 암스테르담 리츠 미술관의 루벤스 명화. 푸에르토리코 애국의 상징이라며 우리나라에도 한 차례 소개되어 화제를 불러모았던 그림 <노인과 여인 Cimon & Pero - 옥에 갇힌 아사지경의 아비에게 젖을 내어 물리는 딸> 보다도 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불가해한 장면. 기원전 옛 이야기의 그림일 뿐인 명화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생생한 정경이 속을 아릿하게 저몄다.

산다는 건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 가슴이 관장하는 영역이란 것을, 참으로 산다는 것은 가슴으로 사는 것임을 나는 그때 절절하게 깨달았다. 비록 실수하고 상처받고 거듭 좌절하더라도, 슬퍼하고 기뻐하고 감동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싹 틔우면서 가슴으로 사는 게 인생이란 것을 나는 그때 저리게 알게 됐다.

무인년 정초의 고즈넉한 저녁참, TV에 방영되는 호랑이의 모정을 보는 중에 고인이 된 지 한참인 벗, 박 지점장이 새삼 그리워지고 있다.

 

오세윤

《시와 신문》으로 등단. 소아과 전문의 개원 은퇴.

수필집 《바람도 덜어내고》,  《은빛 갈겨니》 등.

《에세이플러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