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한부 인생

 

 

                                                                                         유석희

72년부터 의사 노릇을 한 지도 거의 40년. 여러 환자, 여러 병들을 많이 보아 왔는데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70년 대 중반 서울대학병원 내과 전공의 시절, 전공의에게 턱없이도 누군가 찾아와 왕진을 청한다. 환자를 기억해 보니 벌써 1년 전에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퇴원한 간암환자이다. 지금이야 의술이 많이 달라져 간암환자에서 색전술, 고주파 열치료, 심지어 수술까지도 하여 생존율이 길어졌지만. 북촌의 커다란 고가에서 누워있는 맑은 정신의 환자를 본 순간, 아! 말이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췌장암 환자가 종합병원에서 근치술을 받고 수술장을 나서는 집도의에게 가족들이 물었다. 환자는 앞으로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기분 좋게 수술을 마친 외과 의사는 자신만만하게 실제는 6개월 이상의 생존을 생각하면서도 “예, 3개월은 삽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환자는 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가족들이 의사를 상대로 건 민사 소송이 ‘연명 이익 침해’. 그러니까 환자는 더 살아야 할 2개월에 대한 보상이 결국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천오백만 원을 위자료로 지불, 즉 말 한마디에 2백오십만 원 꼴, 정답은 “최선을 다하여 수술하였습니다만 여명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가 아닐까?

소위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가 얼마나 더 살 수가 있습니까? 주치의로서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인명은 재천이요, 제가 염라대왕도 아닌데 이승에서 데리고 갈 날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도 우정 여명을 물어대면 “예, 이런 경우 5년간 생존율은 몇 %, 평균 여명은 얼마”로 답변할 수밖에. 그러나 이도 극과 극이라 진단 후 불과 몇 주 만에 생을 마감하는가 하면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자연 치유되어 천수를 누리는 경우도 몇이나 보았으니.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 의사는 입이 싸거나 경험이 일천한 때문이다.

 

이런 경우의 시한부 인생은?

십여 년 전 아동문학가이며 시인이 내가 잘 아는 후배의 소개로 나에게 왔다. 소화가 잘되지 않고 위의 통증으로 입원하였는데, 여러 검사를 실시한 결과 주위 조직에 전이된 진행성 위암으로 수술을 해 보았자 어차피 때가 늦어 항암요법을 시작하였다. 얼마 후 암이 진행되어 장폐색의 증상으로 음식이 내려가는 통로를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악액종과 간에 전이되어 황달이 발생하였고, 담액 배출 우회 튜브로 상태가 약간 호전되자 집에서 지내시겠다고 퇴원하였다. 하지만 퇴원한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심하게 탈수되고 패혈증이 병발하여 다시 입원하여 며칠 만에 패혈성 쇼크로 돌아가셨다.

찾아간 시인의 빈소에는 영정 앞에 당신의 병환 중 출간한 마지막 시집인 《詞華集 栗木에 바람 불다》가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이 시집의 책머리에서 시인은 생사는 신의 소관이지 사람이 발버둥쳐서 될 일이 아니지요. 가도 조금 먼저 가는 것이고, 있어봤자 얼마를 더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워 한 세상 살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 길지 않은 남은 시간 동안 시인은 일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정리하셨고,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나 사모님이 갖고 온 좋은 술 한 병은 아직도 따지 않고 보관 중이고, 그분이 주시고 간 몇 권의 시집은 서가에 꽂혀 있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본다.

다른 시집 《내 작은 창문을 열면》의 끝에 작품 이해를 위한 사족蛇足 중 ‘시간의 의미’에서 주치의인 나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가족사항이 어떻습니까?”

시인은 대답을 않고 씽긋 웃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아내가

“딸 하나 아들 하나 있어요.”

“결혼했습니까?”

“딸은 출가해서 외손자가 있고, 아들은 아직이에요.”

“네 그러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네요.”

이런 경우 환자는 항상 남은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나타내는데 시인은 아래 두 편의 시로 이를 가름한다.

 

선고 후 2

자, 이제 무엇부터/어떻게 해야

시간의 낭비를 막을 수 있을까.

이승에 남은 내 시간이/노루 꼬리만할수록

귀하고 귀한 것 - -.

돌아가서 千祥炳은 자랑했을까/“거기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나도 자랑할 수 있을까/“거기는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아내의 눈물

내게 와 삼십 년이 넘도록/참 고생 많았다고 해야지만

이 말 듣고 흘리는 눈물이 서러워/난 정말 못한다.

이승 남은 나달 덤덤하게 살다가/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해야지만

이 말 듣고 흘리는 눈물이 무서워/난 정말 못한다.

그 눈물 서럽고 무서워라도/오래오래 살아 주마고 해야지만

이 말 듣고 흘리는 눈물이 아까워/난 정말 못한다.

 

나는 시인에게 시한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도. 허나 시인은 남은 시간을 쪼개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서 이 세상을 떠났다. 사형집행일처럼 날이 정해 있는 것이 아니나 우리 모두가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인생은 영겁에 미루어 보면 찰나인 것을!

오늘부터 1년간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먼저 소원하였던 친구, 친척들에게 전화도 걸어 보고, 이메일함을 뒤져 간단한 편지도 보내고, 안부 휴대폰 문자까지 챙기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고, 잠든 처의 얼굴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다 큰 애들도 한 번 안아 주자.

그저 우리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들을 보며 느끼면서. 새벽의 그믐달이나 석양의 저녁놀, 봄철 길섶에 핀 야생화, 여름철의 시끄러운 매미소리, 가을철 보도에 떨어진 낙엽들, 겨울철의 눈 덮어쓴 나무들까지도.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72년 서울의대 졸업.

현재  중앙의대 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