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습

 

 

                                                                                         김경희

어제는 고인이 된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 30년 전 친구가 고인을 소개할 때는 나도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우리들은 2박 3일 동안 가정과 산천을 돌면서 우정의 뜻을 다졌습니다. 건축업을 했던 고인은 돈이 생기면 무조건 나를 끌고 가 함께 술 마시며 춤을 추기도 했던 젊은 날의 마음 큰 벗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와 있을 때, 그는 아는 분이 이사를 왔기에 방문했다고 할 때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제는 두 친구와 태인에 있는 그의 공원묘지에 갔습니다. 가을이라서 바람도 각이 지고 건조해져 까슬한 분위기 속에 소주 한 잔 따라 놓고 우리도 한 잔씩 나눠 마시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돌아섰습니다. 오면서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그림자를 거두었을 때 누가 찾아와 무덤에 눈길을 주고 갈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점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1965년 초 봄이었습니다. 이어서 군대생활 사회생활 교직생활로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게 영향을 끼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정희?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근안?전두환?노태우 등입니다. 이 일은 내 선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독재와 군사문화와 데모와 고문, 그리고 연설문화와 감옥가기, 석방문화와 대통령 되기의 과정 속에서 나는 청소년에서 회갑을 지낸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 독재를 독재가 아니라고 하고, 신군부의 잘못이 잘못 아닌 듯 외형적으로는 긍정하고 따르는 가운데 사업도 취업도 출세도 할 수 있다는 이중심리가 형성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름다운 삶은 횡령당하고, 가치 있는 삶은 차압당하고, 민족적인 삶의 문화는 왕따당하고, 조용한 삶은 유배지 문화같이 되었습니다. 총소리? 불도저소리?망치소리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이 되지 못한 사람은 서민에서 영세민으로 가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압축된 민주화는 압축된 만큼 부작용을 낳게 되었습니다. 뼈대는 있을지 몰라도 살이 없고 높이는 있을지 모르나 옆으로의 안정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붓으로 한 획을 긋듯 획일화라는 문화만을 생산해냈습니다. 그리고 끼리끼리의 잘사는 문화와 신화를 이루어왔습니다. 뼈 있는 사람보다 뼈 없는 사람을 양산해냈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는 한때 ‘노(No)’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잘 나가는 줄과 대열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리가 드세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따라가야 하고 동참해야 하는 강박관념의 생활문화가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조직에서 떨어져 나오면 죽을 것 같은 ‘섬사람’ 스트레스와 ‘무인도’ 공포심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어느 일간지에서 읽었습니다. 한국인은 복제인간이나 붕어빵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도시는 복제 도시라고 했습니다. 서울의 명동과 광주의 충장로와 대구의 동성로와 부산 중앙로가 똑같다고 했습니다. 빌딩도 비슷비슷 판박이고 음식 소비도 서울에서 마라도까지 ‘판박이소비’라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표정이 없고 미모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모두가 김태희, 전지연이 되고, 학생들의 쌍꺼풀 수술은 입학 기념, 코 수술은 졸업 기념, 보톡스는 효도 선물, 주름살 제거는 정년기념 사업이 되어 미모의 평준화를 기하는 성형수술공화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직장인은 특히 그렇습니다. 주말에 모임이나 결혼식이 없으면 갈 곳이 없어 기분이 좋다가도 곧 긴장이 되어 뒷목이 뻣뻣 썰렁해집니다. 아무 계획 없이 할 일 없이 있으면 불안감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퇴직과 정년이 더욱 두렵습니다. 혼자 못 노는 아이처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술이라도 마셔야 시간을 보내는 것 같고 ‘살아 있음’ 같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면 자기 삶이 아닌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퇴근하면 누군가와 술 약속이 있어야 그 날의 일이 덜 팍팍합니다. 퇴근해 술판에서 얻은 정보가 회사에서의 처세에 유익하고 그렇게 줄을 서고 곁에 있어야 내일 근무가 보장된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인사철이 되어도 조금 안심이 됩니다. 보험에 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응시할 때인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그냥’의 삶인가, 흘러 보내는 ‘뜻 둔’ 삶인가를.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원도 오두막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 행복하다는 무소유의 수필가요 수행 스님의 말이 큰 귀울음이 되어 내면을 맴도는 시간입니다.

 

 

1985년 《월간문학》 수필 신인상 데뷔.

수필집 《내 생명의 무늬》외. 시집 《태양의 이마와 햇살을 등에 지고》,

칼럼집 《매화 눈트는 이 아침에》.

현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전북매일신문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