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스케치

 

 

                                                                                       권태숙

 

1.  하늘을  찾아서

높은 계단이 앞을 막아서면 후유하고 쉬고 싶어진다. 그런데 내가 오르고 싶은 계단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에는 양쪽 전시관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있고 그 뒤편에 가로로 길게 누운 계단이 하늘을 이고 벽처럼 섰다. 뭉게구름 몇 데리고 파아랗게 빛나는 창공은 가슴속을 환하게 열어준다. 그곳에 가면 나는 선녀의 날개옷이라도 입은 양 하늘을 향해 오르곤 한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하다가 답답하면 아파트 주변이나 공원을 거닐며 멀리 하늘에 시선을 준다. 가까운 곳에 넓은 들이나 강, 바다가 없으니 그나마 위안은 시원스레 뚫린 하늘이다. 갑갑할 때 울적할 때 속상할 때 화날 때 하늘은 엄마의 따스한 품이 되어 준다.   

<열하일기>에서 압록강을 건넌 박지원은 요동벌을 만나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했다. 천이백 리에 뻗은 평원과 맞닿은 하늘을 바라보며 칠정七情에 맺힌 감정을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다고 울음철학을 토했다.

하늘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 사실 하늘이란 것 자체가 어떤 존재라고 말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지표를 둘러싸고 있는 무한대의 공간. 공기 분자나 먼지 등에 의해 햇빛의 산란散亂으로 푸르게 보일 뿐인 허공. 하늘을 볼 수 없다면,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낯선 동네에 있는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일러 준 대로 목적지를 찾을 때는 그 일에만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료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건물을 나서며 주위를 살피다가 난 발을 멈췄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가 빌딩의 유리창이었다. 주거 중심지인데도 초고층들이 숨 막히게 에워싸고 있었다. 얼마나 높은지 올려보다가 순간 ‘하늘이 조각났구나.’했다. 90도로 목을 젖혀야 보이는 조그만 하늘, 여기서는 하늘 보기 힘드는구나 싶었다. 하늘을 찌르고 솟은 거대한 건축들은 비싼 아파트로 소문난 69층의 타워팰리스를 선두로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그 후 내가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어 잊어 버렸는데 우리 이웃에도 유사한 마천루아파트가 들어섰다. 주상복합이란 단어는 늘 초고층을 동반한다. 순수 주거 아파트도 재건축을 하면서 30층은 예사로 넘는다. 도처에서 하늘은 작게 부숴진다. 눈을 가슴을 후련하게 해줄 것이 없다. 갈수록 편협해지고 옹이진 마음에 하늘을 들인다면 삶이 좀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날로 늘어난다는 자살률도 낮아지지 않을까.

이제 하늘을 보러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

 

2.  잠들지  못하는  서울

저녁을 먹고 온다던 아들이 좀 늦겠으니 먼저 자라고 연락을 했다. 주말이란 해방감이 작용하는지 모른다.

오래전, 신촌에서 늦은 모임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른 적이 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마침 집 방향의 버스가 있어 누가 뒤쫓기라도 하듯 뛰어서 탑승하고는 안도의 숨을 쉬며 차창을 내다봤다. 그때서야 웬 사람이 그렇게 많이 태평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지 놀랐다. 아무도 허둥대지 않았다. 23시란 시간은 13시와 다르지 않았다. 혼자서 또는 쌍쌍이 아니면 무리지어 가면서 여유만만이었다. 어느 상점도 술집도 네온사인도 잠자지 않았고 잠들 준비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울의 곳곳에서 그러리라.

요즘 ‘24시간 영업’이란 간판이 부쩍 늘었다. 음식점 편의점 슈퍼마켓 찜질방, PC방, 손님이 없다면 그런 업소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심야 영화관, 호프집들은 밤을 새우고 문을 닫는다.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경우도 많으니 그들에겐 필요한 곳이기도 하리라.

언젠가 새벽기도에 동참하러 밤 2시 반에 집을 나선 적이 있다. 도반들과 만나 절에 도착한 시각은 3시15분이었는데 법당 안이 가득했다. 천 명도 넘는 인원이 뿜어내는 기도의 열기는 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평소 내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이런 별천지가 있었구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생이 많이 아파서 한밤에 병원에 갔을 때 그때도 난 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보았다. 의료진의 눈길이 필요한 위급환자, 사고로 실려온 사람, 빈 병실을 기다리는 대기환자로 응급실과 복도까지 북새통이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당직의사 간호사, 또 안타까움으로 밤을 밝힐 가족들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연구실에서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전동차 정비실에서 그렇게 잠 못 자는 사람이 많아서 가로등의 불을 밝히고 한강다리도 아름답게 꾸며야 하나 보다. 매머드 서울은 이래저래 잠들지 못한다.

 

3.  기다림은  참는  것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러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며 “아뿔싸.”했다. 어제 오전에 왔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닐 텐데, 계획을 바꾼 것이 후회가 된다. 전시관 밖에 거대한 뱀처럼 굽이굽이 줄지어 선 사람들은 이미 기다림을 각오한 모습이다. 국립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으로 일본 천리대도서관에 있는 것을 9일 동안만 전시하는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재를 일본에 뺏기고 그걸 빌려와서 감질나게 봐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지만 여태까지 없었던, 또 언제 있을 지 알 수 없는 행사라서 전국에서 모여든다.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 핀 노인은 내 살아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대전서 왔노라고 한다. 유치원생 같은 꼬마는 두 가닥 묶은 머리를 달랑거리며 연신 대열 밖을 나가 장난을 하다 온다. 엄마는 가자고 떼쓰지 않는 아이가 기특할 것이다. 안내판에 쓰여 있는 ‘여기서부터 4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과연 어린애가 그 시간을 견뎌낼까?

만만치 않은 시간 앞에서 나도 처음은 망설였다. 하지만 바깥에 선 사람의 수로 봐서 설마 그 만큼이나 걸릴까 하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식구들의 저녁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결정을 도왔다. 준비해 온 읽을거리를 꺼내어 한동안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뻣뻣해 오고 늦가을의 한기가 바람을 앞세워 온다. 해가 지면서 뱃속에선 생존을 위한 시위가 일어난다.

“아니 왜 이리 줄이 줄지 않지요?” 내 뒤 60대 중반으로 뵈는 남자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문을 연다. 옆 줄 비껴 앞에서 여인의 대답, “건물 안에도 아주 많대요.” 그 말을 듣자 마지막 대열의 두 젊은이가 중도 하차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참을성이 적은 사람은 기다림이 고통일 수 있다. 특히 야외에서 열을 지어 기다린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문화재가 많은 서울에서 관람객들의 대열은 낯설지 않다. 지난 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모습을 보려는 행렬도 언론의 머리를 장식했다. 천만 인구의 거대도시 서울에서 이제 기다림은 다반사다. 더구나 교육, 경제, 예술, 의술 거의 대부분의 중심이 되어버린 수도 서울에 살기 위해 수행하는 선사들을 배워야 할 모양이다.

 

 

《계간수필》로 등단.(98년)

전 연서, 서울 성산여중 국어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