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의 미소

 

 

                                                                                           조순배

버스 정류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거나 서서 자신들이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젊은이, 나이 든 이, 남자, 여자,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다.

문득 이들의 옷차림에 눈이 간다. 모두가 자기 개성에 맞추어 입은 듯 제각각이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로 한다. 하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같은 옷차림을 계속 찾는다. 드디어 같은 모습을 찾았다. 전경 두 명이 발걸음을 맞추어 걷고 있다. 아! 정복…….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직업, 종교 등 신분에 따라 또는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른 것이다. 어떤 큰 스님께서 생전에 입던 옷은 기운 자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수행자들의 낡은 옷은 오히려 수행의 증표로 보여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성스럽다고 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우선 나부터, 죄송스럽게도 초라해 보이는 것을 어쩌면 좋으랴.  

오래전이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남편을 만났다. 차에 오르니 낯이 익은 수녀님이 앉아 계셨다. 가깝게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끔 뵙는 수녀님이었다. 반가움에 다가가 인사를 하고 남편에게,

“병원에서 원목하는 수녀님이세요.” 하고 소개했다.

마침 뒷좌석이 비어 있어 자리에 앉자 남편이,

“수녀님 옷차림이 왜 그려셔!” 했다.

반사적으로 수녀님 옷을 바라봤다. 낡은 두건과 오래된 듯한 수녀 복이 새삼 초라하게 보였다. 그동안 수녀님이 입은 옷을 보고 낡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의 한마디에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듯 가슴이 먹먹했다. 그날 밤 남편의 한마디로 초라해진 수녀님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 뒤로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기도해주고 성사를 모시는 수녀님을 뵐 때마다 수녀님의 낡은 옷차림만 눈에 들어왔다. ‘수녀님들의 옷 한 벌 값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나는 조금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목표했던 돈이 채워졌다. 그런데 어떻게 전해야 할지 오히려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하여 선뜻 드릴 수가 없었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봉투의 귀퉁이가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호스피스 일을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 길이었다.

“자매님 이제 가세요?”

하는 소리에 앞을 보니 수녀님이셨다. 이때다 싶어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낡은 봉투를 꺼내어,

“수녀님 옷이 너무 낡았어요.”

고개를 숙인 채 봉투를 내밀었다. 수녀님은 놀랜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옷 말고 내가 사용하고 싶은 데 써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안 돼요.” 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녀님을 만날 때마다 새 옷 입은 모습을 기대해 보았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였다.

그리고 또 몇 달이 지났다. 호스피스 재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그곳에서 수녀님의 강론이 있었다. 그런데 새 옷을 입고 계신 게 아닌가. 눈부시게 하얀 옷이었다. 아마 내 눈에만 더 희게 더 눈부시게 보였으리라. 내 귀엔 강론 내용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수녀님의 새 옷만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수녀님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번졌다. 아, 수녀님의 미소!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나는 새 옷을 입지 않은 수녀님을 뵐 때마다 서운한 마음을 가졌었다. 수녀님의 낡은 옷만 보느라, 그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오로지 내 욕심 때문이었다. 새 옷을 입으신 수녀님의 모습이 더 눈부시게 보였던 내 눈은 속기를 벗어나기엔 아직도 멀었나 보다. 속된 내 마음이 그분을 초라하게 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일하실 수녀님. 수녀님의 미소를 떠올려 본다. 그날 그분이 지으셨던 미소의 뜻을 지금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때,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막 정류장에 들어선다. 저만치서 똑같은 옷을 입은 전경이 자신들의 구역을 다 돌았는지 발맞추어 되돌아가고 있다.

 

 

《서울문학》,  《창작수필》로  수필 등단, [토방] 동인.

공저 《둘이 하나 되어》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