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철든 애국자

 

 

                                                                                     구양근

공관장회의 참석차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 작년에는 자카르타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공관장들이 지역별 모임을 가졌지만, 올해는 117개국 대사들 모두 서울에서 모여 1주일의 빡빡한 일정을 갖게 되었다. 부인들 또한 영부인이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운동을 비롯한 여타 일정들을 수행하기 위해 동행하였다.

우리는 을지로 입구의 빌딩 숲 사이에 있는 한 호텔, 30·31층에 짐을 풀었다. 도심의 호텔에 숙박할 일이 없었던 나인지라 내려다보는 경치가 새삼 신기했다. 서울 도심의 우뚝우뚝한 빌딩들이 눈아래로 펼쳐지고 정면으로 북악산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한국에 오기 전에 내린 큰 눈으로 북악산은 바위 갈피 위로 아직 흰 눈을 이고 있었다. 그 안쪽으로 아늑하게 자리잡은 푸른 기와집이 눈 속에 정겨웠고, 근거리에는 서울 타워가 마치 손에 잡힐 듯 솟아 있었다.

이른 새벽에 나는 아내 몰래 가만히 호텔을 빠져나왔다. 아침 산책을 나가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침 풍경, 서울의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싸늘한 한국 겨울의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추위를 모르는 대만의 아열대 공기에 익숙한 내 코에 차갑고 알싸한 공기가 닿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지하도를 지나 덕수궁 앞으로 올라서니 어스름한 새벽녘의 흩날리는 눈발이 가로등 불빛에 어지럽다. 덕수궁 뒷담을 끼고 미국대사관 앞을 지나 광화문으로 나왔다. 한국의 수도 한복판을 나에게 맡기고 천만 동포는 곤히 잠든 모양인지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아름다운 나의 나라.”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코끝이 찡해졌다.

세종로로 들어서자 새로 단장된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상이 나를 맞이한다.

“선열이여, 지금의 후손들을 보소서. 지금 우리는 세계 10대 강국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때에는 황제의 밀사가 회의장도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을 배회하다가 분사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G20의 의장국이 되었습니다.”

토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예의 나의 삼국론을 다시 펼쳤다. 중일은 예로부터 동양의 주도권 다툼을 해 왔기 때문에 통합자의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한중일 삼국의 결속을 위해서는 한국이 나서야 제격이다. 한중일 삼국이 주축이 되어 아세안 10개국과 합쳐서 AU가 성립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조직이 된다. 역사의 무대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이 세계의 중추적 역할을 떠맡게 된다. 가슴 울렁이는 이 청사진은 사막 위의 신기루가 아니며, 실현 가능성이 확실한 조감도이다.

대만과 대륙이 FTA(그들은 ECFA라 한다.)를 강구하고 있다. 그들의 행보가 빨라질 때 IT 강국인 우리와 대만은 대륙을 놓고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는 법이다.

어쩌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에 불과한 것을 말하면서도, 그러나 나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부터 나는 무슨 대단한 애국자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즈음에 특별히 내가 애국자연하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된다. 너는 언제부터 그처럼 네 나라를 사랑했었는가? 자문해 본다. 그 느낌은 조금은 쑥스럽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대한민국 그 누군들 애국자가 아닐까? 너 혼자 왜 애국자연 하는가? 그렇다고 해도 내 속에서 자꾸만 열정이 솟아나오는 것을 어쩌랴!

영빈관 만찬에서 경험이 많으신 어떤 대사 한 분이 발언을 한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영빈관 만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한국음식을 맛보았습니다.”

이 말이 웬 말인가. 돌이켜보니 나 역시 몇 번 되지 않지만 영빈관에서 중국요리만 먹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내가 초대받은 만찬 이전에도 계속하여 외국요리만 나온 모양이다. 하기야 한국요리를 세계화 하자는 운동이 이번에 처음 벌어지고 있으니 짐작할 만도 하다. 이전에야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상 가득 푸짐하게 내오는 만물상 한식차림 외에 요즘처럼 코스로 내오는 세련된 한국요리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듣자니 국내 유명 호텔엔 한국요리를 하는 곳이 없단다. 어찌 그럴 수 있나 해도 현실이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한국에서 식사를 대접할 경우 자연스럽게 일본요리나 중국식 또는 불란서 식을 선택했다. 대만에서도 관저만찬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손님대접을 중식, 일식, 양식으로만 했다. 한식 세계화 바람이 시작되었어도 한국요리는 아직 국제무대에서 고급 코스 요리로 정착이 되기엔 시기상조인 모양이다.

타이베이에는 외교활동 겸 한국문화를 알리기에 자부심을 느낄 만한 고급 한국식당이 없다. 한국음식을 자랑할 좋은 곳이 생기기를 소원하던 차에 얼마 전 어떤 한국인이 타이베이에 식당을 열 계획이라며 협조를 요청했을 때 나는 내 소원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코스 요리로 최고급 손님을 모시고 갈 수 있는 식당이 아니라면 협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장금’ 드라마로 대만에서 한류가 시작되었듯이 멀지 않은 날에 한국음식으로 타이베이에서 다시 한 번 한류가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늦게 철든 아이처럼 내 조국이 새삼 소중하고,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 애국자인 양 많은 생각에 젖어본다.

 

 

현재  주대만 대사.

전 성신여대 중문학 교수 겸 총장.

수필집 《새벽을 깨는 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