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

 

 

                                                                                  심상옥

우리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삶을 살면서 희. 로. 애. 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도예의 신비와 밴쿠버의 자연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였다.

2009년, 제43회 한국미술협회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나는 도예품인 ‘자연의 소리’를 출품했다. 눈에 덮여 있는 밴쿠버를 묘사한 산의 모양에 코발트로 조합하여 흐릿한 그림자가 되게 그렸다. 철사로 윤각선과 산을 그리고 시유한다. 빛이 쏟아지는 산과 길을 묘사하기 위해서 합성비율로 조합하는 것이다. 유약의 조합은 불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고, 저마다 작품의 특성을 가져온다. 거기에 숨겨진 신의 힘은 여태까지 예상하지 않았던 좋은 작품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로부터 중세, 근세를 통하여 다양한 도자기가 구워지고, 귀족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생활을 장식해 왔다. 유럽은 알프스를 경계로 하여 남유럽과 중부, 그리고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풍토와 민족이 다른 만큼 문화에도 차이가 있다. 그만큼 생활 감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도예는 다양하고 매력이 있는 세계를 낳는다. 중세 후기는 비잔틴제국에서 도기가 민중 사이에서 퍼지고, 그 기법이 프랑스를 위시하여 현재의 네덜란드와 스칸디나비아에까지 미치고 있다.

출품한 나의 작품은 초벌구이 한 살결 바탕에 갈색과 백색의 곡선문曲線文을 배합해서 눈이 내리는 모습과 밴쿠버의 자연을 그렸다. 눈과 산으로 묘사한 문양은 어두움과 무게를 가지면서 비약하고 싶은 욕망으로 채운다. 그러면서 대비와 균형, 반복하는 형과 색에 관련되는 조형의 세계까지 펼치고 싶었다.

도자기를 만들 때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미지를 스케치한다. 유약적인 색채와 안료에서 흐름으로 만든다. 나의 경우는 유약과 형식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틀이 있고 그때 생긴 나의 기분에 의해서 정해진다. 전위적인 형식의 추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전통적인 것은 초월한 곳에서 전위로 가지 않고, 현대도예로 모색해 가는 양식이 어려웠다.

금년 밴쿠버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이곳의 자연은 산 아래 펼쳐진 평야에 강이 흐른다. 흰 눈이 덮인 산은 사방으로 둘러쳐 장엄한 풍경이다. 작년 여름,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미니 밴을 타고 로키에서 밴쿠버로 넘어 왔다. 만년설로 뒤덮인 산들을 배경으로 하늘을 지르는 돌산들이 펼쳐지는데, 푸른 침엽수 삼나무들에 둘러싸여서 산 전체가 검게 보인다. 호숫가에 흐트러진 백송의 하얀 나무줄기가 쑥 벋어서 바람에 나부낀다. 아득히 먼 하늘을 향해 벋은 백양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환상의 세계로 빨려드는 듯하였다. 밴쿠버는 아직도 잠자고 있는 땅이 많다고 한다. 광대한 천혜자원을 지닌 캐나다가 부러웠다.

밴쿠버는 국제 도시 중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밴쿠버만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는 드물다. 세계 미항  중에 하나로 알려진 밴쿠버, 무엇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일까. 랍슨과 함께 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그랜빌스트리트 주변에는 많은 버스커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에서 노래, 팬터마임까지 재주를 선보인다. 버스커들은 거리에서 각양각색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또 다른 문화의 메이커로 등장한다.

이곳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펼친 두 차례 연기는 힘과 기술, 표현력을 갖춘 피겨스케팅에서 세계 최고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분9초 동안 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이 날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숨을 죽였다. 그녀는 우아하게 빙판을 누빈 모습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정확한 동작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표정 연기에 심판진은 역사상 최고 점수를 내놓았다. 나비처럼 날렵하게 솟구쳤다가 부드럽게 내려앉는 연기는 무대예술이었다. 이곳은 그녀를 통해 눈에 덮어 있는 자연의 소리도 들려온다.

밴쿠버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퀸엘리자베스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53에이커에 해당하는 곳에 작은 산으로 꾸며진 공원이다. 여름에는 재즈와 포크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옛날 채석장의 자리에 인공적으로 흙을 매립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공원 전체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가득하다. 5백 종이나 되는 열대식물이 가득 찬 곳에 왔을 때, 마치 원시림 속에 파묻혀 버린 것 같았다. 이 공원은 일 년 내내 피는 갖가지 꽃들이 고층 빌딩들 너머로 보이는 전경이 아름답다.

1940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밴쿠버 방문을 기념해서 퀸 엘리자베스 공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달콤한 향기가 풍겨오는 장미 정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 수십 명 가족이 결혼기념촬영을 하고 있어서 더 한층 화려한 모습들이다.

눈으로 덮인 산이 사방으로 둘러쳐 있다. 거대한 봉우리가 끝없이 이어진 만년설과 진록색의 침엽수림으로 뒤덮인 숲은 커브를 돌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전개된다. 한쪽 산 위에 맑은 하늘과 흰 구름, 다른 쪽은 검은 구름이 산을 가린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기상 속에 뿌리는 비를 맞으면서 달린다. 호수 위에 하늘을 인 산들은 구름을 수놓고 수십 폭의 병풍처럼 깎아질러 서 있다.

흙과 불로 이룬 도예는 그 기원에 있어서 단순히 실용성만이 아니고, 형과 장식을 시문하는 것으로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우리 생활에서도 행복을 추구하고 싶지만 재災와 화禍가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복은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선한 마음으로 음덕蔭德을 쌓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 또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한국수필》 로 등단. 도예가.

저서 :  《그리고 만남》,  《화신》,  《환상의 세계를 넘어서》 외.

수상 : 동포문학상(1996), 한국수필문학상(2001), 노산문학상(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