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콘

 

 

                                                                                   김애양

오늘밤도 눈가에 정성스레 약을 바른다. 속눈썹을 자라게 한다는 물약인데 어쩌다 잊은 날엔 잠결에도 벌떡 일어나 챙기곤 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나는 치명적으로 눈이 작다. 눈이 차지하는 안와眼窩의 면적이 적을 뿐더러 속눈썹이 보잘 것 없이 짧아 아무리 눈 화장을 해봐도 보람이 없다. 이 볼품없는 눈에 대한 미적 열등감뿐 아니라 어쩐지 남들보다 시야가 좁은 것 같은 피해의식으로 성형외과를 찾은 적이 있다. 하지만 두 곳 선생님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토록 전형적인 동양인의 눈은 섣불리 쌍꺼풀수술을 했다간 멍청해 보일 수가 있다며 그냥 생긴 대로 살라는 것이었다. 그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랑 똑같이 생긴 딸아이에게도 함께 해준 처방이었다.

성형수술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빈약한 눈인데 속눈썹이 쑥쑥 자라준다니 오색풍선 같은 희망이 생겨났다. 어쩌다 인조 속눈썹을 붙였던 날엔 내 눈이 한결 또렷했던 걸 떠올리면서 앞으론 서양 여배우처럼 그윽하고 매혹적인 눈매를 꿈꾸어도 될 것 같았다.

눈썹을 자라게 한다는 이 약은 본래 안압을 낮추는 녹내장 치료제이다. 환자들이 이 점안액을 눈에 넣다가 이따금씩 주변에 흘리면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털이 자라나는 현상을 보고 착안을 한 것이란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약물작용을 응용하여 종종 신약을 만들어낸다. 그 대표적인 예로 비아그라는 심장약으로 개발되었다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각광받고, 어떤 위장약은 뜻밖에도 분만 촉진제로 활용된다. 그러니까 약물에 한 가지의 작용이 있다면 그 이면에 또 다른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의학적으로 묘약이면서도 동시에 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파르마콘(pharmakon)이라 부른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비해 글은 파르마콘이라 일컬은 것으로 유명해진 단어이다. 또한 자크 데리다가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안과 밖 등의 대립되는 이항二項이 서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파르마콘처럼 공존하고 있다고 해서 더욱 부각된 말이다.

그러나 매사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산부인과에서 처방하는 갱년기 치료제만 해도 그렇다. 여자 나이 50세 전후로 폐경을 맞게 되면 여성호르몬이 더 이상 분비되지 않아 불편함을 겪는다. 안면홍조나 수면장애, 골다공증, 심혈관 기능의 약화 등등이다. 그래서 호르몬제를 처방해주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조심스레 묻는다.

“부작용은 없나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그 질문에 기실 나는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왜 없겠어요? 세상에 오로지 좋기만 한 일이 있기나 하던가요?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점도 동반하는 게 세상 이치가 아니던가요? 그러나 당신이 폐경기 증상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그리고 100세까지 팔팔하게 건강을 유지하려면 다소의 부작용이 있다 해도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걸요.’

하지만 그런 뼈 있는 말 대신 나는 약의 장단점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복용을 유도한다. 갱년기 호르몬제에는 백 가지의 좋은 점이 있지만 단 한 가지의 단점은 유방암의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 그 암을 빨리 발현시키는 점이라고. 그러므로 유방암 검사만 정기적으로 받는다면 안심하고 복용해도 된다고.

약물 부작용에 대해 번번이 듣는 또 다른 질문사항은 응급 피임제에 관한 것이다. 피임이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쉽고 간단한 방법이 없어 자칫 함정에 빠지기 일쑤이다. 9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된 응급피임제는 관계 후 72시간 내에 복용하면 임신이 예방되는 신기한 약이다. 우리나라가 그나마 낙태천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이 약의 덕택이라 여기는데 그 처방을 받으러 온 환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묻고 간다.

“부작용은 없나요? 선생님!”

그럴 때마다 미리미리 대비를 하지 않은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심정에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왜 없겠어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착상되는 그 자연본연의 수태를 방해하는 호르몬제이니 얼마나 강력하겠냐구요? 어쩌면 난소 기능에 차질을 초래하여 이담에 불임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이 되어 인공유산을 받는 것보다야 천 배쯤 낫지 않겠어요?’

그러나 환자들의 불안감을 모르는 바도 아니기에 이런 심통맞은 말 대신 상냥한 낯빛으로 설명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안정성이 입증되었다는 점과 다달이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번쯤의 복용으로는 건강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조금도 손해는 보지 않고 최대한의 이득만 얻으려 하는 게 아닐까? 높은 산엔 반드시 깊은 골짜기가 있듯이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 되는 파르마콘마냥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공존한다는 걸 이해해야 하는데…….  마치 축복이란 저주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란 생겨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나는 한 달째 눈썹 자라나는 약을 열심히 바르면서 매일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처음부터 대뜸 눈썹이 길어지는 것은 아니고 먼저 두터워진다더니 조금씩 그런 것도 같다. 돼지 꼬리털 같던 내 눈썹이 싸리로 만든 마당비처럼 뻣뻣해져 간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파르마콘인가 보다. 가뜩이나 작은 눈에 두꺼운 눈썹이 매달리니 눈꺼풀이 배기질 못하고 점점 내려온다. 이러다 아예 감기지나 않을까?

 

 

은혜산부인과 원장.

1998년 《책과 인생》으로 등단.

2008년 수필집 《초대》로 제4회 남촌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