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박현정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잦아든 십일월 오후 창덕궁 낙선재에 갔다. 창덕궁 입구에 도착해보니 관람객은 나와 세 커플뿐이다. 아마 오전 내내 비가 내린 탓으로 사람들이 관람 예약을 취소한 것 같았다. 헌종의 사랑과 예술이 빚어낸 곳, 사랑의 전설이라는 말에 끌려 낙선재 일원을 보면서도 함께 관람하는 세 커플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에 시선이 가곤 했다.

낙선재는 헌종이 사대부 집 규수인 경빈 김씨를 궁으로 맞아들이면서 지은 품위 있고 아름다운 민간 양식의 주택이다. 헌종의 개인적인 공간이 낙선재이고, 수강재는 대왕대비를 위한 집이며, 낙선재와 수강재 사이에 숨어 있듯 깊이 자리한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이다. 크고 화려한 창덕궁의 건물들과 견주면 궁궐 건물이 아닌 듯이 아담하고, 창덕궁 안에 있으면서도 별채의 느낌을 주며 창경궁과 사이에 담을 두고 있는 아늑한 곳이 낙선재이다. 작지만 아늑하고 치밀하게 공을 들인 예쁜 건물이라는 인상이다. 그러면서도 이곳이 조선 황실 가족의 마지막 안식처였다는 점에서 애잔함을 느낀다. 왕이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위해 궁궐 안에 이렇게 사대부 집같이 소박한 집을 지었다는 것이 조선 왕조의 마지막을 예견한 듯한 건물로 보여 서글픈 심사도 든다.

책과 글씨를 사랑한 문예 군주 헌종은 조선 후기 외척 세도 정치가 절정이던 시기의 임금이다. 그는 팔 세에 왕위에 올라 두 번의 결혼을 한다. 첫째 부인이 후사가 없이 죽자, 두 번째 부인을 간택하는 데 참여하여 눈에 든 이가 경빈 김씨였으나, 자신의 뜻과 다르게 홍씨가 계비로 간택된 것이다. 그로부터 삼 년 후 헌종은 계비 홍씨에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마음에 두었던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사람들은 마음으로 원하는 것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안다. 헌종이 마음에만 김씨를 두지 않고, 결국에는 궁으로 김씨를 맞아들이고 더 나아가 그녀를 위해 집까지 지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 낙선재는 더 매력적인 장소가 되고 있다.

경빈 김씨와 낙선재에 머무는 동안 헌종은 계비 홍씨가 있는 창덕궁 내 대조전에는 아예 발길도 하지 않는다. 헌종은 자신이 사랑하는 김씨를 다른 후궁들처럼 왕비가 있는 창덕궁의 어느 거처에 머물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왕비나 김씨, 무엇보다 왕 자신에게 모욕적인 일이었을지 모른다. 왕의 그러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짧았다. 기울어가는 조선 왕조의 운명 탓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둘의 사랑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라 해도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서는 결코 온전할 수 없었던 탓일까.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아들여 낙선재에 머문 지 햇수로 삼 년쯤 되었을까. 왕은 홀연히 죽음을 맞이한다.

이곳을 안내하는 이는 경빈 김씨의 처소인 석복헌 기와에 쓰인 글씨며 거미 모양, 호리병 모양을 만들어놓은 마루 난간 등의 문양 의미를 설명하며 경빈 김씨는 이곳에서 무척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말한다. 왕의 여러 여인 중에 오직 경빈 김씨에게서 후사를 보고 싶었을 헌종의 마음, 조선시대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을 이곳 석복헌에 살면서 경빈 김씨가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는 헌종의 애틋한 마음이 나타난 다양한 문양들이 바로 사랑의 징표이다. 헌종이 죽자, 경빈 김씨는 후궁의 신분이기에 궁을 떠나 사가에 머물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정성이 바쳐진 이 집을 어떤 마음으로 떠났을까.

낙선재 후원에 올라 꽃무늬 담장 곁에 서서 고궁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두 번째 이혼을 하고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는 여배우가 인터뷰하면서 하던 말을 떠올린다. 무슨 질문의 답이었는지 그녀는 도대체 사랑이 있기나 한 건가요? 하고 반문하듯 대답한다. 여러 드라마에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열연하던 이의 공허한 대답에서 나는 메울 수 없는 꿈과 현실의 간극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온다. 오늘날에는 대중스타들이 남다른 사생활이나 그들이 나오는 멋진 드라마를 통해 유행을 선도하고 일반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사랑의 환상에 젖기도 한다. 이러한 역할을 오래전에는 왕가의 가족들이 많은 부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선 후기에 지어진 낙선재는 당시 백성들에게 왕실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먼 꿈 같은 사치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헌종과 경빈 김씨의 꿈이 나타난 낙선재는 사랑을 찾지 못한 이에게는 목마른 이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고 나면 여전히 갈증이 있는 것처럼 부질없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의 꿈을 엿보는 즐거움이 없이는 삶이 적막하다. 한편 살아서 헌종의 아낌을 받으며 현실의 사랑을 체험한 경빈 김씨에게도 이곳은 밤의 환상 같은 곳이지 않았을까. 어제의 로맨스도 지나고 보면 아득한 꿈속의 일 같은 것이다.

법도에 매인 인간인 왕은 죽어서는 두 왕비 옆에 나란히 묻혀 왕비들에게 경의를 보이고, 살아서는 경빈 김씨를 위한 집을 세움으로 그들 사랑의 증거를 남겨 놓았다. 헌종의 마음만은 낙선재의 경빈 김씨 곁에 두고 간 것일까. 사람이 살아야 하는 처소는 누군가의 마음속이라는 말처럼 서로 마음 하나씩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들이었다면 현실의 이별이 길었다 해도 경빈 김씨의 마음 안에 행복한 불씨 하나는 늘 간직하고 살았을 것이다.

오후가 늦어질수록 추워지는 십일월, 관람을 마치고 낙선재를 나와 앞서 가는 커플 한 쌍의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내 뒤를 따라오던 해설사가 잠시 기다리자고 한다. 낙선재 담장 밖에 있는 공간에서 나머지 두 커플들이 사진을 찍으며 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을 만드느라 분주한 그들 뒤로 견고한 담장에 둘러싸인 낙선재 일원의 기와집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런 날 눈이라도 내리면 저 애들이 강아지처럼 좋아하겠지. 나도 눈이 내리는 날 이곳에 와서 조용히 눈이 내려앉는 낙선재와 석복헌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어진다.

 

 

《계간수필》로 등단.(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