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날다

 

 

                                                                                    이고운

부스스 북새통이다. 무성한 정자나무 같다. 새집. 크고 작은 빈 둥지가 서너 군데 보인다. 물냄새를 따라온 새가 물새알을 무성한 풀숲을 본 풀국새가 둥지를 귀 뒤에는 역풍을 맞았는지 경계선을 넘어와 포개지며 쓰러졌고, 철새 텃새들이 날아가고 날아오다 그랬는지 사방으로 얽히고 설키었다. 알맞게 솟아 볼륨을 자랑하던 뒤척새는 뒤통수에 납작 붙었다. 아니라 아니라고 밤새도록 도리질 치느라 볼썽사납게 꼬시라졌다.

내가 풋콩 같았을 때였다. 왼종일 쏘다닌 몸이 낮 동안의 일들을 수렴하는 시간. 파리똥이 별처럼 떠 있는 사방연속무늬 천장에 무성영화가 떴다. 마치 눈 안에 필름이 감겨있다 풀려나오는 것처럼, 어느 날은 다슬기가 강바닥에 슬슬 기고, 어느 날은 지천으로 나풀거리는 쑥, 삘기들이. 써레질 해 놓은 논에 물그림을 그리며 가는 실뱀, 빙빙 돌아가는 고무줄이 화면을 바꾸어가며 떴다. 그 아름다운 영상들을 보다가 등짝이 따끈한 온돌에 붙어 ‘하시시’를 먹은 것처럼 감미롭고 벽에 걸린 등잔불이 가물거린다 싶으면 스스르 눈이 감기었다. 호롱 꽃불의 마지막 흘림체가 눈꺼풀 안에서 지등처럼 잠시 온화하다가, 눈 언덕을 달리는 봅슬레이처럼 비스듬한 경사면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까아만 어둠새를 따라가곤 했다. 그러면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구부러지는 오솔길로 끝도 없이 미끄러져갔다. 담이 좋은 내 머릿결을 휘날리는 스릴이 등줄기에 저릿했다.

날마다 땅을 파던, 늘 부수수하여 머리가 어등새 같던 머슴 만길이 아재. 어느 날, 왜 그리 땅만 파느냐고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던 내가 물었다. 아재는 웃음기 없는 꽤 심각한 낯으로 말했다.

“아가, 땅을 깊이 아주 깊이 파 내려가다 보면 말이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내는 소리가 들린단다. 솥뚜껑 여닫는 소리, 살강 그릇 딸거락거리는 소리, 심지어는 애기 우는 소리꺼정 다 들린단다.”

“에끼 이사람.”

지나가던 옆집의 빛나리 할배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머리가 저리 북데기마냥 부스스한 사람들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머리를 잘 빗어야 한다고 다짐을 이르셨다. 할머니나 엄마들이 왜 아침마다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빗는지, 큰 처녀들은 왜 긴 머리를 쫑쫑 땋아 붉은 댕기를 다는지 일러주셨다. “봐라 저기 저 시님은 머리가 맨질맨질하지 않냐? 사람은 제 몸부터 가꿀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세상 살아가는 단초니라.”

그날 그 뜻 모를 말을 들은 그때부터 아마, 내 머리에는 밤새 한 마리가 어렴풋이 터 잡고 살기 시작했으리라.

감은 머리를 빗는다. 뒤틀린 머리를 바로잡느라 드라이기가 열을 올린다. 스킨로션 영양 아이크림에 선크림을 바르고 과감한 화운데이션이 기미를 감추고 흑점을 두드린다. 오늘 립스틱은 박태기꽃 색이다. 입술을 붙여 물고 빠뽀 빠뽀로 마무리를 한다. 문제는 눈썹이다. 잘 그리기가 썩 어렵다. 닦고 그리기가 네댓 번째. 흐지부지해버린 본래의 중심선을 찾아 리듬을 잘 타야 하는데, 맘이 바쁠수록 손이 떨려 산이 되다 들이 되다 한다. 눈시울 위로는 연보라색 아이섀도로 분위기를 띄우고, 뷰러가 속눈썹의 자존심을 치켜올린다. 볼터치가 홍조를 살짝 스치고서야 오늘을 살아갈 얼굴이 완성된다.

낮이면 우주 밖으로 밀려났던 나를 우주 안으로 유영하게 하는 통각의 시간. 밤새가 내 다리를 주무르는 사이 기다렸다는 듯이 벼랑에 숨어있던 부엉이가 펄럭 날아들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물어와 집을 짓고 먹이를 욕심껏 물어 나른다. 상수리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던 올빼미가 어둡기를 기다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들은 갈기를 세우고 엎치락뒤치락 다투었다. 혼을 훔치려는 못된 낮새들! 밤새가 그들을 내쫓았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다시 날아들었다. 게다가 소쩍새 해오라기까지 와서 집 한 칸을 차지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여긴 내 자리라 안 나가겠다고 억울하다고. 저쪽은 이늠이, 이쪽은 저늠이 당겨가고, 내 휘날리는 머리카락은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렸다.

몇 시쯤이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달그림자가 구름 속을 들락거린다. 깜깜한 하늘절벽에 빛이 스러진다. 하룻밤, 세상의 반 바퀴를 도는 시간에 가물거리는 의식, 살아있는 몸을 지키려고 영혼은 잠자지 않는다. 위선僞善과 지선至善의 쟁투. 낮이라는 빛에 구속되면 내 몸을 저지하지 못하는 영혼의 새. 맑고 깨끗해지는 어둠새가 돼서야 침입자들을 쫓아내느라 나의 아바타는 많이도 퍼덕거렸을 것이다. 때 묻은 내 영혼을 정화하려고.

아침에 머리를 빗으면 어디론가로 날았다가, 내가 잠들면 순수의 여명黎明을 저어 돌아오는 새.

그가 사는 신전에서 밤새 정신없이 날았다.

 

 

《계간수필》(2004), 《월간문학》으로 등단.

개천문학상 수상.                 

대표에세이회,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