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력日曆

 

 

                                                                                         허세욱

공자는 물 위에서 세월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많은 사람은 뚝뚝 떨어지는 물시계로 세월을 들었다. 그뿐인가? 옛 사람은 맨땅에다 막대를 박고 그 그림자로 시간을 읽었었다.

우리들 현대인은 거실의 한 벽이나 책상 위에 달력을 걸어놓고 그 아래를 부리나케 퉁탕거리다가 출근 때만 되면 참새처럼 푸드렁 날아갔다. 방앗간 모이를 주워 먹다가 푸드렁 날아가는 참새처럼 말이다. 그렇게 푸드렁거리느라 그날이 어느 날이요 그날이 무슨 날인지도 모를 뻔했다.

아주 옛날엔 시계가 없었다. 해와 달이 시계였고, 아침저녁이 시간이었다. 해가 오르면 낮이었고 해가 지면 밤이었다. 달이 차면 보름이요 달이 기울면 그믐이었다. 그만치 시간의 인터벌이 넉넉했다. 낮과 밤은 12시간 간격이요, 차고 비임은 보름 간격이었다. 어느 시인이 말하길 깊은 산중에 가면 아예 책력이 무용타고 했었다.

 산중에 사는 불자들은 북과 쇠북으로 시계를 삼았다. 어스름 달빛에 안개가 피어오를 때 그것은 문득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하는 북소리요, 샛별이 깜박이는 하늘 끝으로 동이 틀 때 그것은 멀리 우리 마음을 펼치는 쇠북소리다. 그래서 손목마다 시침時針을 맬 까닭이 없었다.

인간은 서로 얽혀 사느라 서로 시간이란 푯말을 세우고 산다. 그 푯말이 책력이다. 나 어렸을 때는 여러 가지 책력이 있었다. 황소 껍데기처럼 누르께한 판지에 시커먼 한자의 잔글씨로 오밀조밀한 만세력万歲曆을 비롯 신문만한 넓이의 모조지에 365일을 빽빽하게 박은 뒤 대문짝만한 국회의원 이름을 올린 연력年曆이 있다. 만세력이 사랑방 문갑 위에서 쓸쓸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 연력은 거실이나 마루의 넓은 벽에 당당히 가슴을 펴고 있었다.

그 무렵 또 한 가지 책력이 있었다. 얇은 미농지나 거친 딱종이로 365장을 엮어 장마다 그날의 날짜?요일?일진을 박아 매일 한 장씩 찢거나 젖히게 만든 일력이 있다. 그것들은 대강 신문지 반절 크기에 울긋불긋한 활자가 북두성처럼 찍힌 채 대청 기둥에 버티고 있다.

일력의 쓸모도 여러 가지였다. 대청을 지키는 장승 구실은 물론 그날의 음양과 일진을 알렸다. 하루가 지난 뒤 더러는 영감네 호주머니에서 잎담배를 말았다가 매캐한 연기로 사라졌고, 더러는 뒷간을 찾는 사람에게 화장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만세력이나 연력?일력이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월력이 책력의 주종이었다. 간혹 주력週曆이 바쁜 사람의 책상에 올랐지만 그것도 접철식 탁상용 월력이나 부착용 월력에 밀려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월력은 단연 현대인의 인기 품목이었다. 공간을 아낀 데다 한결 편리했었다. 따로 수첩이 무용했었다.

그런데 월력은 한 장 넘기거나 한 장 찢어서 한 달이 지났다. 일력처럼 한 장 넘기거나 한 장 찢어서 겨우 하루가 지나는 그러한 속도가 아니었다. 그래선지 책상 위에 접철식 월력을 놓은 뒤 세월은 화살처럼 빨랐다. 팔랑개비를 물고 골목을 질주하는 어린아이의 그림자와 같았다.

오늘 따라 4, 50년 전 뉘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력이 그립다. 날마다 꼬박꼬박 찢어야 기둥 위에서 새 날이 바뀌었던 그 일력 말이다. 주인이 어쩌다 외출하면 시간이 꼼짝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 일력 말이다. 찢어야 새 날이 오고 넘겨야 세월이 바뀌었다. 작은 조각배지만 노를 젓지 않으면 강둑에 매여 있는 이치와 같다.

일력을 찢는 시간은 하루 일이 끝난 밤중일 수도, 새 날이 떠오르는 새벽일 수도 있다. 마치 산사에서 시간을 알리는 모고暮鼓와 신종晨鐘 두 가지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력을 하루에 두 번 찢을 수 없는 일이다.

늦은 밤에 일력을 찢기란 아무래도 소중했던 하루를 쓰레기로 버리는 일 같았다. 피곤한 허리를 굽혀 굳이 서둘러 결산할 일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하루를 산산이 찢거나 갈기갈기 구기는 일은 측은해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부연 안개 속을 뛰어서 성큼 머리를 내미는 아침 햇살과 함께 널찍한 벽면에 걸려 있는 일력을 찢고 싶다. 그것은 개벽의 시간, 찰가닥 빗장을 여는 소리?스님이 첫 새벽에 뜨락의 낙엽을 쓰는 싸리비 소리?농부가 이른 아침 긴 사래를 가느라 이랴낄낄 소 모는 소리?병사가 꿈에서 일어나 청랑하게 부는 기상의 나팔소리다. 아니, 우지직 일력 한 장을 내차게 찢는 것은 싸움에 나가는 사람이 저 어둠을 자르며 휘두르는 보검인 것이다.

한 해에 한 번 걸면 그만인 연력보다 한 해에 열두 번 넘기면 그만인 월력보다 날마다 새벽마다 365번 어제를 넘기면서 오늘을 맞는 일력이 좋다. 그 한 장을 찢으면서 빗장 소리? 싸리비 소리? 소 모는 소리? 기상의 나팔소리를 듣고 싶다.  (2010)

 

 

시인. 고려대 교수로 정년.

현재 외대 대학원 초빙 교수.

저서  《움직이는 고향》 등 수필집 8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