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용설란

 

 

                                                                                        박준수

밀집한 단독주택 속에 묻혀 있는 내 집은 동네에서 몇 안 되는 고옥古屋이다.  오랜 세월 뿌리내리다 보니 구석구석 체취가 배어 정겹고 담박한 맛도 있지만 이런저런 불편한 점 또한 있다. 보수해야 할 곳이 심심찮은데다가 무엇보다도 오래된 일층 건물인지라 공간 활용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 중에도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앞집이다. 삼층 벽이 현관 턱 앞까지 다가와 절벽처럼 떡하니 버티고 서서 일층에 사는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아 반쪽도 안 되는 하늘만 남겨놓았다. 답답하기로는 우리보다 마당 응달에서 나날을 보내야 하는 화초들이 더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겨울을 기다릴는지도 모른다.

첫 추위가 시작되는 십이월 들머리엔 화초들 겨우살이를 준비한다. 잘나고 못난 구별 없이 우듬지에서 화분 바닥까지 먼지와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거실로 이주한다. 안온한 거실에서 주인의 숨결을 들으며 삼동三冬을 함께 지내다가 이듬해 봄 남녘에 꽃소식 전해올 무렵이면 다시 마당으로 나간다. 화초들이 거실을 점령하면 공간이 그만큼 좁아지긴 한다. 하지만 화초의 싱그러움과 풋풋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주고 일상에서 묻어온 심신의 피로를 씻어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용설란은 마당에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꼬부랑 노인처럼 등이 굽어서였다. 응달진 곳이 싫어 햇살을 쫓아 몸을 틀다보니 등이 굽어버린 것이다. 근년 들어 부쩍 옥아 보기에 흉하다. 그동안 쌓은 정에 짠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완상용 화초로서 더 이상 제구실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동장군과 싸워 요행히 살아남으면 오는 봄에 거실의 화초들과 합류할 것이고 얼어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예보했던 대로 수은주가 영하로 뚝뚝, 한파가 기습해왔다. 전날 화초를 거두어들인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보송보송한 화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화초들 사이로 유리창 밖의 용설란이 보였다. 반들반들 얼어붙은 바닥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들어다가 부산스레 목욕시켜 거실의 화초들 틈에 앉혔다. 용설란이 무리 속에 합류하니 거실에 더욱 생기가 돌고 한층 초록이 짙어 작은 화원의 모습을 갖춘 듯했다. 하루 만에 그렇게 부산떨 일을 전날엔 어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용설란이 우리 가족과 맺은 인연은 깊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역시 어린것으로 우리 집에 와 매년 거실과 마당 사이를 오가며 지금껏 함께 해온 식구다. 우듬지에 새순이 돋으면 밑에 묵은 잎을 잘라주고, 키가 자란 만큼 알맞게 분갈이를 해주며 아이 바라지하듯 해왔다. 그동안 탈 없이 자라 늠름하고 강한 화초로서의 위용을 갖추었다. 어슷비슷 자란 아이들은 이미 장가들어 보금자리를 찾아갔지만, 짝을 만날 일이 없는 용설란은 여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 세월을 어이 그리 쉽게 버리려 했는지.  

식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한다. 사랑받은 화초가 더 건강하게 자라 더 고운 꽃을 피운다고들 말한다.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용설란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가끔 화분을 조금씩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예전 모습을 잃지 않았을 것을. 너무도 쉬운 일을 무관심으로 방치해왔으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려한 내 옹졸함이 용설란 앞에 부끄럽다.  

용설란 곁에 지지대를 세우고 굽은 곳을 끈으로 칭칭 동여매주었다. 환자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반나마 등이 펴지니 옛 모습이 제법 어렴풋하다. 어느 정도 교정되면 다시 한 번 더 조여 동여매주리라. 그때면 얼추 원래의 곧추선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늦어도 내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때엔 예전에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용설란 우듬지에 동방박사의 별을 매달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