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정情 때문에

 

                                                                                김재은

외국인들 중 한국에서 살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와서 결혼까지 하고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니면 잠시 머물다가 가려고 왔다가 눌러앉은 사람도 있고, 개중에는 귀화까지 한 사람도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지금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된 이참 씨이다.

 이 이참 씨가 방송에 나와서 한국의 정신문화의 특징이랄까 매력은 정情, 흥興, 한恨에 있다고 요약해 주었다. 외국인(?)이 이 정도로 한 나라의 정신문화의 특색을 정리하다니 기특한 일이다. 공감이 간다. 여기서 나는 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가 30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는 몇 달만 있다 가겠노라고 마음먹고 왔지만 그만 한 한국인 여인의 정에 끌려 결혼을 하고 여기에 주저앉게 되었단다. 한국인의 정을 설명해 줄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보겠다.

일본에 학회관계로 갔다가 아침에 조반을 들고 잠시 쉬는 동안 호텔 창밖을 내다보는데, 어린이집 마이크로버스가 와서 큰길에 서 있는 꼬마들을 태워가는 것이었다. 아기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엄마와 손을 흔들면서 “빠이 빠이”를 하고, 차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했다. 일본 엄마들은 버스가 떠나자마자 곧 뒤돌아보지도 않고 제 길을 갔다. 우리네 엄마와 다르구나 싶었다. 매정스럽게 보였다. 그래야 아이들이 독립심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우리네 엄마들은 아마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을 게다.

또 한 가지 이야기. 일본인은 인사 잘하기로 유명하다. 너무 절을 많이 해서 언제 그쳐야 될지를 외국인은 가늠하기 어렵다. 한 번은 일본인 집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다. 헤어질 때 집안에서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현관에 나와서 또 인사를 하고, 현관 밖에 나와서 또 인사를 한다. 언제 그쳐야 되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면 그게 끝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야 그런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손님이 담 모퉁이를 돌아서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손사래로 들어가라고 사인한다. 손님은 또 어떤가? 담 모퉁이를 한 번 돌았다가 다시 나타나서 손사래로 주인보고 들어가라고 한다. 그때서야 인사가 끝나는 것이다.

영국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있었던 이흥우 박사가 영국에 교환교수로 가서 연구를 끝내고 귀국할 때의 이야기다. 자기 지도 교수에게 귀국인사를 할 겸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라 선물을 사들고 런던 교외에 있는 교수사택을 전차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눈이 무릎 높이만큼 내려서 통행이 불편함에도 어렵게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교수사택에 당도해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교수가 현관문을 도아 체인을 건 채로 반쯤 열고는 “왜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왔느냐?” 고 묻더라는 것이다. “귀국인사 겸 그동안 지도에 감사를 드리고 싶었고, 메리크리스마스 축하인사를 하러 왔다.”하면서 조그만 선물을 내밀었더니, 도아 록 체인을 건 채로 그 문틈으로 선물만 받고 “바이 바이.”하고는 손님이 아직 안 떠났는데도 현관문을 닫아버리더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돌아오면서 서양의 합리주의 문화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우리와 문화가 다르니 그러려니 하면 된다. 어디 똑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문화건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네 같으면 이렇게 했겠지. “오! 이 교수 웬일이야?, 어서 들어와요. 이 추운 날에, 이 먼 길을 오다니!” 그리고 따끈한 차 한 잔쯤 대접해 보내겠지. 극동의 개발도상국에서 온 외국인 제자니까 그동안 든 정을 생각해서라도 선물이라도 조그마한 것 쥐어 줘 보냈을 게다.

이 세 가지 이야기에는 분명 정이라는 정서가 크게 개입되어 있다. 도대체 정이란 뭔가? 감정, 정서情緖, 정의情義의 총칭이다. 일본인은 정서를 정동情動이라 번역한다. 그 이유는 정성의 영어가 emotion인데 여기서 e는 ‘밖으로’라는 뜻이고, motion은 ‘운동’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분히 외현적인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미묘한 정서이다.

우리나라 민요 〈박연폭포〉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간 데마다 정들여놓고 이별이 잦아서 못 살겠네.” 정을 설명하는 데 아주 적절한 예에 속한다. 정들여놓고 이별이 잦아서 ‘못 살겠다?’ 우리말에 “정 때문에” “그 놈의 정이 뭔지…”하는 푸념 비슷한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결국 ‘정에 끌려서 나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라는 뉘앙스를 가진 말이다. 그 정도로 정은 은근하지만 강력한 동력 같은 것이다. 정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거의 무의식적인 심리상태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이다.

정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예컨대 ‘애정’ ‘순정’ ‘연정’ ‘우정’ 같은 긍정적인 면도 있고, ‘치정’ ‘매정’ ‘무정’같은 부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정이 많다는 말은 이 두 가지 면이 다 있다는 뜻도 된다. ‘정이 많으면 어떤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한국인의 정 씀씀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정이 두터우면 배신을 안 한다든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처리에서 매정스럽게 맺고 끊고를 안 한다든가, 정이 많아서 눈물겹도록 고맙게 해 준다든가, 다른 사람의 불편을 일일이 챙겨준다든가,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여기고 오래 간직한다든가,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든가, 남을 염려해서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반면에, 정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의사결정에서 정실情實에 흐를 수가 있다. 전직 외교통상부장관이 정실인사로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듯이 공정성을 해칠 염려가 많다. 조직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발전에서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다. 즉 지연, 학연, 혈연 그밖에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가 이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공정사회, 개방사회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우리끼리’가 정든 사람과 정들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별을 부추긴다. 정들면‘우리끼리’가 되고 정이 안 들면 ‘남’이거나 ‘적’이 된다. 영화 〈친구〉에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대사가 나온다. ‘남’이 아니면 목숨도 바쳐야 한다. 부부간에도 정이 떨어지면 헤어진다. 형제간에도 정이 멀어지면 서로 고소하고 칼부림을 한다. “그 놈의 정이 뭔지?”

정은 따뜻하나 이렇게 차갑고 치사한 데도 있다. “더러운 게 정이야.”라는 말이 있다. 못 살겠다고 보따리 쌌다가도 그동안 쌓은 정 때문에 다시 눌러앉는다. “간다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가더라.”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정 떼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아들네 집이나 딸네 집에서 손자들 봐주다가 할머니가 너무 늙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와 ‘정 떼기 연습’을 한다. 정 떼기 연습은 시집간 딸들도 한다. 그래야 충격완화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분리불안이나 애착성 장애가 온다. 한국인들은 그놈의 정 때문에 이런 병리현상을 많이 앓게 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에게 정이 많아서 좋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한 번 와 본 사람은 그 정 때문에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한동안 못 보았던 외국친구를 만나서는 “톰, 그동안 잘 있었어? 보고 싶었어.” 하면 될 걸, “톰, 아직 장가 안 갔어? 왜 안 갔어? 올해 안으로 가.” “매리, 아직 그 남자하고 살아? 아직 안 헤어졌어? 왜? 나 같았으면 벌써헤어졌지.” 이건 망발이고, 인격모독이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사생활간섭이다. 이런 무례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것을 마치 인정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천만에다. 이건 정이 아니다. 자기중심적 간섭일 뿐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까 내 생각과 감정을 받아줘야 돼.’라는 일방적 강요이다. 정도 사랑도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려 들지 말라. 정은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여러 사람의 정이 뭉쳐지면 흥興이 되고, 정이 멀어지면 한恨이 된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근후 교수의 말이다. 정 준다는 핑계로 도리어 정을 떼게 만들어 한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정을 서로 나누는 일이다. 정을 서로 나누면 복이 된다. 그게 행복이다.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

블루닷 창의성 연구소 소장, 숙맥동인,

저서 《천재의 창조성의 비밀》 등 90여 권,  《창조적 삶의 즐거움》,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 《 낡은 옷은 벗어라》 에세이집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