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鳶

 

                                                                         이용학

지난 연말에 몇 장의 연하장을 받았다. 그 중 하나에는 특이하게 조그만 방패연 두 개가 마치 하늘에 떠 있듯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엔 새해에 소망을 이루기를 기원한다는 글이 또한 적혀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설날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 올라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풍습을 즐겼다. 그것은 새해의 소망을 실어 연을 한껏 높이 띄우면 그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그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의 기억으로는 어른들이 연을 날리는 것을 좀체 본 적이 없다. 추운 겨울에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절박한 생활고 속에서 어른들은 세시풍습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날 연날리기는 한동안 어린아이들의 놀이로 전락해버렸지만, 아버지는 설날에 방패연 만들어달라는 아들의 간청만은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창호지를 챙기고 대나무 살을 다듬어 좌우상하로 정밀한 균형을 이룬 방패연을 만들어 주었고, 연을 받아든 아들의 흐뭇한 표정을 보고 아버지는 궁색한 살림에도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의 모습에서 가슴 뿌듯하게 대견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20대에 접어든 때, 절기상으로는 설이 지난 지 얼마 안 되고 아직 겨울의 냉한 기온이 머물러 있을 무렵, 시급한 용무로 시골에 사는 사촌형의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겨울 해가 빨리 떨어지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 탓에, 삼십 리 길을 절반도 가지 않아서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엄청난 양의 검은 구름이 무서운 기세로 서쪽 하늘을 온통 뒤덮고 휘몰아치며 진눈깨비를 몰고 왔다. 눈은 잠시 후에 그쳤지만 이미 사위는 까맣게 어두워져버렸다. 게다가 도중에 인가가 전혀 없고 중간에 공동묘지까지 통과해야 하는 호젓한 산길을 앞에 두고 있었다. 적막한 암흑의 공간을  나는 압도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걷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두 발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허공을 둥둥 떠서 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경황 속에서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어언간 나는 무사히 공포의 산길을 벗어났다. 그리고 산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걸어가자 저 앞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보였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흙담집의 창호지 봉창이 노랗게 불빛을 받고 있었다. 그 안에서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나왔다. 이 시간 저 오두막 집 방안을 밝히고 있는 등잔불빛이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 가족들의 대화가 내 귀에 들어왔다. 어린 아들의 목소리가 아버지에게 연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고 있었고, 이어서 아낙네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바쁜 아버지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아들을 꾸짖었고, 잠시의 침묵이 흐르면서 남자의 굵은 헛기침소리만 무겁게 들려 나왔다. 길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연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우울한 여운을 남겼다. 그 아버지가 아들이 소원하는 연을 실제로 만들어 주었는지 어쨌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아들이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밤새 만든 큼직한 방패연을 받아들고 입이 함박만 해졌을 것으로 믿고 싶다.

어렸을 적에 어느 해인가 설날에 아버지가 나에게 방패연을 만들어 준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렸었고, 방패연을 한껏 높이 띄우는 것은 두렵고도 벅찬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연을 날리고 있었다. 곁에서 어떤 큰 아이가 여유 만만하게 연 실을 한껏 풀어 방패연을 멀리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그의 큰 연은 아득히 높이 떠올라 손바닥만 하게 작아져, 마치 하늘에 맞닿은 듯이 보였다.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나도 연을 높이 띄우고 싶은 열망에서 조금씩 연 실을 풀어주었다. 연이 조금씩 높이 떠오르는 것이 재미있어 차츰 더 많이 실을 풀어 주다가, 급기야 나는 연이 받는 바람의 힘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갑자기 연 자새가 내 손아귀에서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순식간에 연 실이 다 풀려 버렸다. 그 순간 손아귀에 느껴지던 연 실의 팽팽하고 완강한 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연은 아득히 먼 하늘 위에서 바람을 받으며 매처럼 경쾌하게 날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겐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창공 위에 연을 한껏 높이 날리고 싶었던 꿈이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두렵고도 자랑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희열과 긍지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갑자기 더 강한 바람이 불어 왔다. 연 실은 곧 끊어질 듯이 팽팽해졌다. 나는 연 자새를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움켜쥐었다. 그러자 연은 더 높이 솟아오르면서 옆에 있는 큰 아이의 연 실에 내 연 실을 걸었다. 부지불식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 싸움을 걸어버린 셈이었다. 그 아이는 짐짓 나를 책망하는 척했다. 사실 그는 얽힌 실을 간단히 풀어 줄 수도 있었지만, 나의 연 실을 끊어 먹는 재미를 즐기기 위해 심술궂은 미소를 머금고 연 실을 감았다 풀었다 하길 반복했다. 그의 연 실은 사기가루를 섞은 풀을 먹인 것이어서 톱날처럼 날카로웠다. 급기야 나의 연 실은 끊겨버렸고, 그 순간 내 연 실에선 팽팽하던 힘이 쑥 빠져나갔다. 주변의 아이들은 환성을 질렀고, 그 큰 아이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연 실을 느긋하게 풀어주고 있었다.

나는 연 자새를 땅에 떨어트리고 멍하니 서서 둥실둥실 멀리 날아가는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나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것 같은 허망한 기분이었다. 연은 앞산 너머로 넘어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문득 나는 연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이 날아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앞산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들 건너 마을 쪽으로 점차 고도를 낮추며 내 연이 가물가물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연은 물결치듯 너울거리며 건너 마을 뒷산 숲에 학이 내리듯 떨어지고 있었다.

연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마구 달려갔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엎드러졌다. 온몸이 얼얼하게 아프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참고 일어서서 다시 뛰었다.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숲에 당도하여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연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에선 벌써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침 나뭇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던 나무꾼이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금방 어두워지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허망하고 허탈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해 맥없이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사방은 어두워져버렸고, 나는 심신이 지친 데다 배도 고팠다. 집에까지 돌아가는 길이 멀고 아득히 느껴졌다. 더구나 밤길을 혼자서 가야 했고, 도중에 서낭당을 지나야 했는데, 그곳은 옛날부터 밤에는 귀신이 출몰한다고 알려져 있어 어른들도 해가 진 뒤에는 혼자서 지나가길 꺼려하는 장소였다. 일가 아저씨 한 분은 어느 날 밤 이곳에서 귀신을 만났는데, 갑자기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겁에 질려 기절할 정도였지만, 그는 정신을 차려야 산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당황하지 않고 정신을 가누고 잠시 기다렸더니 다시 사방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귀신에게 홀릴 뻔했다가 목숨을 건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극도의 두려움에 싸여 집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저 앞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생각하며 인기척을 냈다. 그러자 그 그림자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였다. 나는 달려가서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밤길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안도감, 연 때문에 겪은 고초와 슬픔, 그리고 허기와 허탈함이 뒤범벅이 된 감정이 북받쳐 나는 서럽게 울었다. 아버지는 내 등을 다정스럽게 다독거리며 달래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연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집으로 오면서 나는 곤한 잠에 빠졌고, 꿈속에서 하늘 높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 아버지도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그러나 그 아버지 덕택에 나는 지금까지 마음속 창공에 연을 높이 띄우고 살아왔다. 새해를 맞아 그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버지처럼 나도 내 아들에게 소망의 방패연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서울대 교육과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