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루치아

 

                                                                           염정임

“쑥대머리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으로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郎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는가,

연이신혼宴爾新婚 금슬우지琴瑟友之 나를 잊고 이러는가…”  

 

쪽머리에 한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으로 안숙선 명창은 구성지게 판소리 춘향전 중의 <쑥대머리>를 부른다. 오른손에 든 쥘부채를 가끔 펴며 온몸으로 춘향의 한 맺힌 통곡을 재현한다. 춘향이가 남원 부사 변학도의 수청요구를 거절한 죄로 옥에 갇히고 머리는 산발하여 쑥대머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애통해 하는 장면이다. 언제 들어도 구구절절 비통의 노랫가락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후반부는 이 도령이 장원 급제하여 변학도를 징계하고 춘향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비극적 상황이 역전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 춘향전이 씌어진 비슷한 시대에 스코틀랜드의 작가인 월터 스코트는 《램머무어의 신부》라는 소설을 썼다. 스코틀랜드의 램머무어에 세력을 다투던 레이븐즈우드가와 아스톤가가 있었다.  어느 날 미친 황소에 쫓기던 아스톤가의 루치아는  레이븐즈우드 가의 에드가르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는 루치아와 권력가의 아들과 정략 결혼을 시키려고, 가짜편지를 이용해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에드가르도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루치아는 그가 변심했다고 생각하고  결혼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만다.  그때 프랑스에 가 있던 에드가르도가 등장하며 루치아는 모든 것이 계략이었고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충격받는다.  결혼한 첫날밤에 그녀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신랑을 죽이고 축하객들 앞에 나타나 자살을 하며 쓰러진다. 엔리코와의 결투를 기다리며 조상의 묘지 앞에 서 있는 에드가르도에게 루치아의 죽음이 알려지고 그는 절망에 빠져 목숨을 끊는다.

이태리의 작곡가 도니제티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작곡했다. 이 오페라의 3막에 유명한 아리아 〈광란의 장면〉이 나온다. 루치아가 신랑을 죽인 후 피묻은 흰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이다.

 

 달콤한 소리가 나를 때린다. 그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가 나의 마음으로 내려온다.

에드가르도여, 나는 당신에게 굴복합니다. 나의 에드가르도!  나는 당신의 적으로부터

도망쳤소. 한기가 올라와요. 나의 가슴이 떨려요. 온몸이…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는 푸른 조명을 받으면서 사랑하는 연인의 환영을 좇으며, 슬픔과 고통의 아리아를 부르고 오페라는 파국의 절정을 이룬다.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은 시대와 동서를 초월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강요된 사랑을 요구받았을 때, 그 당시 사회적 약자이며 결혼에 관해서 결정권이 없던 여자들이 그 극한 상항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루치아는 자기의 운명이 가족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절망감에서 정신이 분열되고, 그 광기는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비극이 탄생한다.  춘향이 고립된 채 감옥에 유폐되어 사회체제에 순응했다면, 루치아는 증오와 적의를 행동으로 나타낸다.  춘향은 인내와 절제로 결국 사랑에 승리하여 이몽룡과 맺어진다.

루치아는 충동적인 광기로써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에드가르도가 루치아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영원히 승화되는 감동을 준다.

춘향이 전통적인 동양적 여성상으로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라면, 루치아는 서구의 여성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맞서며 반항적 에너지를 표출했다고 볼 수 있겠다.   

《춘향전》은 해피엔딩으로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만족감을 준다. 대부분의 설화가 그렇듯이  춘향과 이몽룡은 필부필부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일상적 삶에 함몰되어 결국은 희미하게 빛이 바랬을지도 모른다.  

《루치아》는 그 비극미로 청중들을 카타르시스시킨다.  그들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속적인 사랑이다.  죽음의 길을 함께하며 영원을 약속하기에 사랑의 본질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소설은 픽션이지만 삶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들 소설 같은 인생이라고 하듯이, 실제의 삶이 더 극적이고 소설 같을 수도 있다.

월터 스코트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신문에 난 어떤 기사가 동기가 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일로, 정략결혼을 강요당한 어느 신부가 첫날밤에 신랑을 죽이고 자신도 2주 후에 죽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한 국문학자는 여러 가지  문헌적인 증거를 들어 춘향전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이몽룡은 봉화 출신의 성이성이란 실존 인물로 부친이 남원 군수로 오면서 춘향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암행어사로 활동하며 53세에 남원을 찾는다. 그는 《호남 암행록》이라는 문집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 길에 길을 나서서 십 리가 채 안 되어 남원 땅에 닿았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불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과 기생들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 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연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마 그는 그의 신분에 맞는 일생을 보내고 노년기에 들어서야 다시 남원을 찾았던 것 같다. 춘향의 죽음은 의문에 싸여 있어, 목을 매 자결했다고도 하고, 매를 맞아 죽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그 학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우리의 조상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스토리를 반전시키고 행복한 춘향이로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해학과 풍자를 섞어 판소리를 만들어 춘향의 혼을 위로하고 있다.

춘향과 루치아는 비슷한 시대에 태어난 사랑의 순교자들이다.    

<쑥대머리>와  <광란의 장면>에서 그 순결한 영혼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듣는다.    

 

 

수필공원(현 에세이 문학)과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에세이스트 상,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펜문학상 수상. 수필집 《미움으로 흘리는 눈물은 없다》,  《유년의 마을》  수필선집 《회전문》,  《작은 상자, 큰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