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비금以古非今

 

                                                                                  박영자

TV를 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KBS1 〈아침마당〉 프로는 빼놓지 않고 보게 된다. 오늘은 사회자가 한지붕 아래 살면서 메모지로만 대화를 하며 6년을 살았다는 어떤 노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라면 며칠 전 신문에서 나도 읽은 일이 있었다. 그 기사를 같이 읽은 남편은 부부 사이가 그렇게까지 된 것은 여자 잘못이라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듣고만 있었을 텐데 한 마디 대꾸를 했다.  

“당신은 그런 말할 자격이 없어요.”

지난날을 우리 부부가 오순도순 살아왔었다면 남편의 견해에 맞장구를 쳤을지도 모르나 그렇지를 못하니 남의 집 싸움이 내 집 싸움이 되어 모처럼 조용하던 집안이 시끄러웠었다.

그 집 남자의 메모란 것이 이런 따위의 것이라고 한다.

‘두부 자른 것은 찌개 냄비에 한꺼번에 넣지 말고 여러 번 나누어 넣어라. 김치는 짧게 썰고 김칫국물은 넣지 마라.’  등등.

치고받는 싸움보다야 낫겠지만, 그런 메모지를 건네받고 아내가 만든 음식이 제 맛을 냈을까. 그들에게도 서로 사랑한 시절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그토록 그들의 대화를 단절시켰을까. 함께 살아도 그렇게 살아서야 같이 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 가슴이 다 답답하다.

그렇게 오래도록 대화를 메모지로 해온 노부부의 고집도 대단했지만, 그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법은 어떤 것일까 흥미로워 TV에 바짝 다가앉았다. 그러나 프로진행자는 법정에서 이혼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말만 전하고, 화제의 초점을 행복한 부부생활 쪽으로 옮겨버렸다.

매스컴에 관계하고 있는 참석자 여덟 사람은 짝을 맞추려는 의도였는지 남녀가 반반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젊은 층이라 서로 자유분방하게 대화를 주고받아 분위기는 좋아보였지만, 노소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

가운데 앉아 웃으며 말을 하는 사람은 현직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니까 그도 무척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일 텐데, 집에서 설거지는 이천  원, 구두 닦는 것은 천 원, 방청소는 제일 비싸게 오천 원으로 해주고, 그 돈을 아내에게서 받아쓴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전 국민이 보는 TV 카메라 앞에서 여자가 하는 일을 한다며, 웃어가며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의 태도에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더욱이 참석자 모두가 그 이야기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뒤집어본다면 여자의 파워가 그만큼 커졌다는 이야기가 되겠는데, 어느 사이에 여자의 힘이 이토록 강해졌을까 오지랖 넓게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천층만층이듯이 부부생활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을 보러 갔다가 아들이 스스럼없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장 고국으로 되돌아오고 싶었었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이 돌고 돌아 얽히다 보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우리네 가정의 변화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웃기는 하지만 씁쓸함이 따른다. 하루 세 끼를 다 집에서 안 자시는 남편은 영식 씨, 먹는 남편은 삼식 새끼라고 한다던가. 이사를 가게 되면 남편은 강아지를 안고 짐차 앞자리에 얼른 타야한다느니,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집을 나간다는 뜻이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아내에게 매 맞는 남편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해마다 그 수가 늘어 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죽도록 밉고 싫어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속으로만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것이 부부다. 남편을 두들기면서도 부끄러움 없이 남 앞에 설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러나 한 아파트의 이웃끼리도 아무런 교섭 없이 살고 있는 요즈음이고 보면 남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3주간 서로 연구하고, 3개월간 사랑하고, 3년간 싸움을 하고, 30년간은 참고 견디는 것, 그 뒤를 이어 자손들이 또한 그 짓을 되풀이하며 사는 것이 부부라고 하면 얼핏 듣기에 불행하게 여겨지지만, 어머니도 그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왔기에 훈장 없는 결혼생활이라 할지라도 서글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양처를 가지면 행복한 자가 되고 악처를 가지면 철학자가 된다고 한 소크라테스가 같은 시대에 톨스토이와 그의 부인 소피야를 보았다면 어떤 평가를 했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18세에 결혼하여 13명의 자식을 낳고 48년간 톨스토이의 아내 자리를 지키며 남편의 원고를 교정해 주고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내조했던 소피야는 노후에 상반된 이념에서 오는 애증으로 남편을 밖으로 몰아냈다. 아내의 존재를 무시하고 농민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그의 사유재산 전부를 농민에게 돌리고자 했던 톨스토이의 의도를 소피야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부싸움에 지친 톨스토이는 이제는 그만 쉬고 싶다며 시베리아의 아스타포보 역에서 죽음을 맞는다.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사랑이라는 잣대로도 풀 수 없었던 세계적 문호의 부부생활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언젠가 젊은이들과 내가 살아온 경험담을 들려주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두 번의 전란을 겪으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절약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여자의 미덕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결과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무슨 강사라도 된 양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을 이어갔다. 수천 냥을 모아두고 먹지 않고 아끼다가 굶어 죽었다는 수전노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이 주는 돈을 아끼며 누룽지로 끼니를 때우고, 적은 돈이나마 은행을 드나들며 통장에 한 푼씩 모아 갈 때의 즐거움은 쓸 때의 즐거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고 장황하게 늘어놓자니, 듣고 있던 K양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내 말을 막았다. “10년 고통을 인내하고 살면 노후에 20년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 20년을 포기하고 10년을 즐기며 살겠다.”고 말하고는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을 왜 그토록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느냐.”며 오히려 힐문을 해왔다.

그들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역시 요즘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그 비례만큼 행복해졌는지 의문이 생긴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그의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좋은 여자가 되는 것보다 좋은 아내가 되는 게 행복하다. 좋은 여자란 남편이 만약 도둑일 경우 더 나은 일을 하도록 변화시키는 사람이고, 좋은 아내란 남편이 도둑질을 할 때 망을 봐주는 사람이다.’

남남끼리 만나 50년을 살아왔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현명한 부부생활인지 단언을 하지 못하겠다.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이가 안쓰럽게 보이는 것은 이고비금以古非今이라고 옛것만 좋다고 주장하고 지금을 배격하는 늙은이의 고집은 아닐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이 된다.

 

 

《수필공원》으로 등단. 수필집 《한 장의 흑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