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겪은 나의 9.11

 

                                                                               문희화

2001년 9월 11일, 그때 나는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행정대학원(SIPA)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강의도 없고 학생 면담 시간도 없었으나 언제나처럼 학교 연구실에 나갔다. 마침 비즈니스 스쿨 뒤에 있는 코트에서 오전 10시에 같은 대학원 동료인 할 힐 교수와 테니스를 같이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빌딩 9층에 있는 나의 연구실에 정확히 아침 9시에 도착하였다. 방에서 테니스 반바지로 갈아입고 테니스장을 향해 가는데 같은 9층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소 세미나 장에서 TV를 보던 직원 몇 사람이 나를 보자 빨리 와서 TV를 보라고 했다. 화면에는 ‘세계무역센터’ 빌딩 중 하나가 8시 48분에 테러분자들이 장악한 비행기에 의해 부딪치는 장면이 비쳐지고 있어서, 그 순간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크게 충격을 받았었다.

9시 40분쯤 테니스장에 도착해서 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나타나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10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연구실에 되돌아와서 힐 교수의 비서에게 물었더니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무척 걱정이 되었다. 테니스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근처의 퓨핀 물리학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흐느끼는 사람도 꽤 보였다. 이때 나는 비로소 내가 테니스를 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11시경에 힐이 내 방에 와서 사과 겸해서 한 이야기는 더더욱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었다. 9시에 자기가 살고 있는 교직원 아파트 빌딩(학교에서 약 2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고층 빌딩)에 캠퍼스경찰이 와서 아무것도 갖지 말고 빨리 빌딩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옷도 옳게 못 입고 지갑만 들고 나와 근처 커피가게에서 다시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 나올 수가 없었고 더구나 경황이 없어 휴대폰도 못 가져 나왔기 때문에 나에게나 자기 비서에게 연락도 못하였다고 미안해 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 캠퍼스경찰은 뉴욕경찰청의 긴급지시로 모든 고층건물에서 폭발물 검사를 빨리 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아파트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키고 폭발물 검사를 한 것이었다.

연구실에 다시 돌아오니 당일 수업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학교의 통지가 있었고,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여는 순간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지인들이 나의 안전을 염려해 야단이 난 것을 알았다. 답장으로 우선 잘 있다고 쓰고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오늘 이침 월드무역센터 첫 빌딩이 공격을 당한 8시 40분경에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에 내려서 학교로 오는 지하철 9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타임스 스퀘어 지하통로를 걷고 있었으므로, 만일 테러리스트들이 그곳을 그 시간에 폭발시켰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라고 답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혹시 그곳을 폭파시켰더라면 모르긴 해도 아침 러시아워라서 아마 그 지하에 있던 몇십만 명이 죽고 타임스 스퀘어 지상의 빌딩들도 내려앉아 또 몇십만 명이 추가로 죽는 끔찍한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더구나 뉴욕의 거의 모든 지하철라인이 타임스 스퀘어를 경유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뉴욕의 교통도 최소 반 년 정도는 마비가 되었을 것이란 상상도 해보았다.

연구실에서 보다 정확한 상황을 알기 위해 평소 자주 보는 CNN.com을 접속하려 했으나 워낙 접속하려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접속이 되지 않았다. 대신 국내소식을 듣기 위해 자주 로그인하는 Chosun.com 에 들어갔더니 꽤 새로운 정보가 많이 있었다. 테러의 배후에 빈 라덴이 있을 것이라는 것과 부시 대통령이 아틀란타에 연설하러 갔다가 백악관도 폭격 당할 뻔했다는 뉴스(펜타곤이 United Airline 여객기에 의해 대신 공격받음)에 내리지 않고 계속 비행 중이라는 등, 쓸모 있는 뉴스가 참 많았었다. 이 뉴스들을 그날 점심 때 교수클럽에서 점심을 같이 한 SIPA와 동아시아연구소의 몇 교수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어디서 알았느냐고 신기하게 생각해서 약간 폼을 잡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미국의 언론들은 보안통제 때문에 대개가 극히 제한적인 뉴스만 전해주고 있었고. 특히 TV에서는 거의 같은 소식만 반복해서 전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뉴저지 쪽에서 오는 다리(GW 브릿지 포함)와 터널만 통행을 차단하더니 나중에는 시내 모든 전철을 통금시키고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웨스트 체스터 카운티에서 학교로 내려오는 도중에 있는 브롱스 지역에서 맨하튼 쪽으로 오는 육로도 차단을 시켰다. 열차는 다니고 있었지만 택시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랜드 센트럴 역까지 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날 점심을 같이 먹던 동아시아연구소의 로버트 임머맨 교수가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할렘 역까지 걸어가서 허드슨 강을 따라서 다니는 기차 매트로 노쓰 라인을 타고 너의 집에 가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흑인지역을 10 블록 이상 통과하여야 할렘 역에 가기 때문에 크게 불안은 하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다고 느끼니까 다소 안심이 되었었다. 점심을 먹으며 임머맨을 포함한 세 사람의 교수가 만일 집에 못 가면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라고 청하지도 않는데 제안해 주어서 컬럼비아에 도착한 지 몇 주밖에 안 되고 몹시 불안한 나로서는, 그 교수들의 이 제안에 정말 눈물겨운 인간애를 느꼈었고 또 크게 위안이 되었었다.

학교에서 오후 3 시경 나와서 임머맨 교수 말대로 할렘 역을 향해 걸어서 출발하였다. 70년대 워싱턴의 세계은행에 근무할 때 뉴욕에 형님이 계셔서 가끔 와 보았을 때만 해도 뉴욕은 정말 살인사건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나던 때여서, 할렘지역을 차로 대낮에 지나가도 무시무시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정말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서웠다. 그러나 나의 공포는 곧 많이 진정될 수 있었다. 할렘 역으로 가는 길에 경찰이 매 블록마다 깔려 있었고 특히 도중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아담클레이튼파월 빌딩 앞에는 장갑차까지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뉴욕이 쥴리아니 시장의 재임 중에 범죄가 거의 소멸되다시피 해서 컬럼비아대학 가까이 있는 할렘 지역도 전보다 범죄가 획기적으로 줄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역으로 걸어 가는 도중에 125가의 한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역이 나오는지를 길가의 아이스크림 행상에게 묻고 나서 몇 발자국 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 보니까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백인여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자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나에게 할렘 역으로 가는 길이냐고 묻고 자기와 같이 가 줄 수 있느냐고 청하기에 좋다고 하고 역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나도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차라 정말 잘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여자는 컬럼비아대학 근처에 있는 한 종합병원의 내과 의사였는데, 자기는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했지만 모든 차 길이 막혀서 부득이 기차로 간다는 것이었다. 마침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되어 기차 안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난생처음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위기 앞에서는 똘똘 뭉친다는 사실이었다. 수천만 명의 미 국민들이 각 지방마다 마련된 희생자들의 빈소에서 진심으로 애도하고 명복을 비는 것과 심지어 수없이 많은 흑인들이 자기 차나 집에 미국 국기를 달고 애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감격하였다. 내가 세계은행을 그만 두고 귀국한 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꽤 있어서 흑인들의 눈에서는 백인들과 미국 사회 전체에 대한 증오가 이글거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터라, 9.11 이후 목격한 흑인들의 태도에서 그동안 미국 사회가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서로 이해하고 단합할 수 있게 된 것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단일 민족이면서도 남과 북, 그리고 같은 대한민국 내에서도 서로 이유 없이 헐뜯고 비방하는 우리의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정과 너무나 대비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또 사건 발생 며칠 후 미국 여, 야의 의회 지도자 그리고 주지사들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서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 조지 부시가 이 위기를 수습할 때까지 모든 정파를 초월하여 지지한다.”는 TV 장면을 보고서 다시 한 번 미국의 위대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약 일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경찰은 뭐 했느냐? FBI 와 CIA 는 뭐 하고 이런 사건을 예방하지 못했나?”하는 추궁을 않는 것을 보고, 역시 위기 때는 단결할 줄 아는 놀라운 국민이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