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를 명천의 김 서방이 잡았다면?

 

                                                                              임채욱

나는 명태를 볼 때마다 저것이 ‘명김’이 될 뻔했겠다고 생각해 보곤 한다. 이는 어린 시절 국민학교 때의 한 기억과 잇닿아 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대구 중심지에 있었는데, 해방 다음 해 일제 때 이름을 바꾼다면서 대한제국 시기 개교 때의 이름대로 했더니 대구국민학교가 되었다. 마치 대구를 대표하는 학교나 되는 듯해서 우리들은 좀 우쭐했지 싶다. 나는 해방되던 해 4월에 입학하여 네 달 뒤 바로 해방을 맞았고 9월부터는 우리말로 공부했을 터인데, 그때부터 6년간 배우던 학과 중에서 주로 국어과목 내용들이 이따금 떠오르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도 아마도 3학년에 배웠을 것으로 여겨지는 국어교과서에는 명태를 잡은 명천의 태 서방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이를 가르치던 여선생님은 목이 희고 길었다. 나는 제일 앞줄에서 선생님의 목을 유심히 올려다보면서 수업을 받았다. 그 선생님이 미모라고 생각되었던 것도 희고 긴 목 때문일 것 같다. 지금도 그 성함이 안 잊히는 선생님은 옆 반 담임선생님으로, 우리 담임선생님이 안 계신 날 들어오셔서 “여러분, 명천의 태 서방이 잡아서 명태지만 만약에 김 서방이 잡았으면 명김이 되었겠지요.”했다. 그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명김’하시던 그 음성과 표정이 어찌나 곱던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명태’를 비롯해서 그때 배우던 국어교과서의 내용들이 내 나이 60대로 향하던 어느 시기부터 그립도록 떠올라 그때의 교과서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6학년 때까지 배운 국어교과서에서 김정호·한석봉·김황원·솔거·윤회·황희·서화담 등 인물에 관계된 내용이나 욕심 많은 개, 입에 붙은 표주박, 온돌, 바람과 해, 등대지기의 딸, 금시계 등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하여 무슨 교과서 전시회라든가, 교과서 박물관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한 교과서 전시회에서  〈등대지기의 딸〉이 실린 교과서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책장을 펼치지 말라는 주최 측 관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내용을 단숨에 읽었던 일도 있다. 그때부터 다른 내용들도 보기를 열망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드디어 그 소원을 이뤘다. 대학에 강의 나가는 딸이 어느 날 자기 과제의 자료로 쓸 요량으로 구한 국민학교 교과서 복사본들을 가져 온 것이다. 생각나는 글들을 여러 편 찾아서 솔솔하게 재미를 느끼며 읽었다. 명태 이야기도 이 가운데서 찾아내어 읽었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明太

           명태는 함경 남북도와 강원도에서 특히 많이 나는데, 우리 나

                                水産物

          라의 한 유명한 수산물입니다.

         

           명태 잡는 철은 시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인데, 잡은 것은 대

 

          개 스무마리씩 꿰어, 쾌를 만들어서 말리어, 각지로 보냅니다.

                    北魚

          이것을 북어라고 합니다.

                      明卵

           그 알은 명란이라 하여, 소금에 절이어 젓을 담가 먹으며, 그

          肝                                                          肝油

          간에서는 기름을 짜서 약에 씁니다. 이것을 간유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명태가 없었다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오백년

                                 明川   太

          전에, 함경북도 명천가라는 어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고

 

          기를 잡는데, 여태까지 보지 못하던 고기가, 그물에 많이 걸렸습

 

          니다. 그래 매우 이상하여서, 군수에게 가지고 가, 그 이름을 물

 

          어 보았습니다. 군수도 역시 이름을 몰라, 명천이라는 명ㅅ자 하

 

          고 어부의 성 태ㅅ자하고 붙이어 ‘명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

 

          다 합니다. (철자법, 띄어쓰기 등은 원문대로임)       

 

이야기 내용은 실제로 조선시대 문신이던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林下筆記》란 책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1946년 4월 15일 군정청 학무국 명의로 발간된 초등국어교본 (중)에 있었다. 저자는 조선어학회, 발행소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로 되어 있다. 당시 한자 병기를 위쪽에 했고 고유명사에는 밑줄을 쳤다.  

초등국어교본은 해방되면서 군정청에서 조선어학회에 의뢰해서 급히 만들었던 것 같은데 우리 정부가 수립된 뒤 문교부 명의로 간행된 초등국어 3학년 1학기와 2학기 교과서에는 이 글이 사라지고 없다. 전반적으로 교과서를 대폭 수정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렇게 나의 국민학교 국어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명태, 우리나라 동해 바다 밑 150미터 한류에서 살며 많이 잡히던 명태가 이제는 잡히지 않는단다. 이상고온의 영향이라나…. 특히 휴전선 이남 연안에서는 전혀 잡히지 않아서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일대에서 매년 열던 명태축제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명태뿐이란다.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한창 많이 잡히던 때는 연간 27만 톤(1940년) 이상이었는데 함경남도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혔다. 1960년대에 북한 통치자도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 앞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를 남쪽에 줄 용의가 있다면서 남북경제교류 품목으로 올리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 쪽도 옛날 같지는 않을 것 같다. 궁금해서 수산관계 어떤 연구자에게 물어봤더니 오호츠크 해에서 잡아오는 남한 쪽 어획량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대답이다.    

명태잡이의 하한선이었던 포항 근처에서 요즘 명태는 안 잡히고 개복지만 잡힌다고 어부들은 섭섭해 한다는데 우뭇가사리처럼 흐물흐물한 개복지도 맛은 있더라만 온갖 반찬을 만들 수 있는 명태처럼 귀할 수야 없겠다. 명태가 아주 좋은 생선이어서인지 전라도 어떤 지방에서는 조기를 두고 전라도 명태라고도 한다는데 명태는 그만 언제부터인가  비싼 ‘금태金太’가 되고 있다.  

이 ‘금태’에 얽힌 교과서 기억은 결국 ‘말한 입이 10년이면 들은 귀는 100년’이라는 격언대로인가. 이 기억이 여선생님의 미모 때문인지, ‘명김’이란 낯선 어감이 귀에 너무 인상 깊게 박혔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명태를 보면서 금태가 아닌 명김을 떠올린다.  

 

 

동양방송 프로듀서,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수석연구위원, 문화연구소 소장 역임.

저서 :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북한 상징문화의 세계》, 《북한문화의 이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