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수필 ⑪

 

행복을 찾는 소리

 

                                                                                안익수

작년 크리스마스 때 KBS 성우실 ‘북 카페’ 회원들과 함께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다녀왔다. 이 평화의 마을은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된 정신질환자, 장애인, 노인 등이 한가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사회복지 법인으로, 여기에서 오순절은 기독교에서 일종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곳을 함께 방문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북 카페’ 회원들로부터 받았을 때 나는 봉사활동이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고, 모처럼 크리스마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수락했다. 호사다마라고, 요즘 나에게 찾아든 행복이 왠지 부담스럽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런 봉사 활동을 통해서 내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년 12월 1일 나의 첫 번째 책 《폴리아티스트, 소리를 부탁해》가 출판되었다. 도서관에 가면 수백만 권의 책들이 있는데 겨우 책 한 권 가지고서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하다. 이십 년간 나의 젊음과 열정을 바쳐 해온 일을 한 권의 책에 승화시켰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은 나를 부끄러움마저 모르는 철부지로 만들어 버렸나 보다.

나는 방송국에서 소리를 방송 프로그램에 적절히 사용하는 일을 하는 음향 효과맨이다. 소리는 특히 드라마에서 조미료 역할을 하는데, 그 감칠맛을 돋우는 소리는 녹음기를 들고 여기저기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채음(소리를 채집하는 일)하기도 하고, 도구를 이용해 직접 만들기도 해서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폴리아티스트’라고 한다. 여기서 폴리는 헐리우드의 영화에 도구를 이용한 소리 연기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 ‘잭 폴리’의 이름을 고유명사화 한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기자의 호흡에 잘 맞추어 생동감 있게 소리연기를 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효과 즉, 생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길을 다닐 때면 건물 홈통이나 계단 난간을 두드리고 귀를 대고 들어보고 다니질 않나, 심지어 매미와 개구리, 귀뚜라미나 여치까지 잡아가지고 와 어디서 소리가 나오나 살펴보고 해부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즐겨 들으시는 트랜지스터라디오까지 분해해서 엄청 혼났던 기억도 난다.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나에겐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내가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05년, 내가 직접 극본도 쓰고 음향효과 작업에도 참여한 ‘효과맨의 꿈’이라는 라디오드라마 단막극 작품이 방송의 날 특집으로 방송된 다음부터였다. 그 작품은 방송에서 소리를 다루는 효과맨의 일상과 소망을 담은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 ‘아! 내가 해야 할 일이 소리를 알리는 일이구나! 소리는 꼭 방송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리는 무한한 무형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속적인 거대한 소리는 열에너지화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고, 의료기술로 작은 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이용해서 인간의 내부의 장기를 수술하기도 한다. 특히 사람에게 있어서 소리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와 관련하여 소리를 이용한 치유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나도 미력하나마 삶의 고통으로 응어리진 사람, 충격적인 사고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 버림받아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 맘껏 듣게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들뜬 나는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생긴 지식과 노하우나 글귀를 적어두거나 원로선생님들을 찾아가 인터뷰도 하고, 선배들의 보배 같은 이야기를 메모하면서 관련 서적을 찾아 기록해 나갔다. 그 결실이 드디어 책으로 맺어진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 ‘효과맨의 꿈’ 극본이 올해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중학교에 올라가는 우리 둘째딸이 그 책으로 공부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아! 작년엔 참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책을 집필하면서도 내 본연의 음향효과일인 방송프로그램들은 물론 〈효과맨 안익수의 소리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KBS 제3라디오를 통해서 1년 가까이 방송했고, 그 와중에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 입학하여 소리를 문화콘텐츠 화化하는 연구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살아오던 나에게 작년 크리스마스 날의 봉사의 제안은 나를 순간 멈칫하게 할 정도로 정신을 번쩍 나게 만들었다. 마치 순간의 깨달음처럼, 아니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혹시 나는 그동안 이 세상을 나 혼자만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을 간과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평화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내 나는 이런 나의 오만과 방종의 부끄러움을 더욱 더 명확히 깨달았다.

우리들은 우선 선물로 가져간 케이크와 과자, 책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함께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연례행사처럼 왔다 가는 사람들을 많이 겪은 듯 쉽게 친근감을 보였고 때론 투정도 부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과연! 이런 일시적인 행사가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혹시 더 큰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하며 씁쓸한 마음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이내 ‘편하게 생각하자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보다는 당장 아이들이 좋아하니까!’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독서와 다과 후 우리는 준비한 작은 공연을 아이들을 위해 무대에 올렸고, 공연이 끝난 후 연에 소원을 담아 날리는 시간도 가졌다. 연을 날릴 때는 평화의 집 앞마당에 우리들을 축복하기라도 하는 듯 하얀 눈이 송이송이 내렸다. 연 날리기를 끝으로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는데 몇몇 아이들은 너무나 아쉬워 “꼭! 또 오세요.”라고 반복하며 애원 섞인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 표정이 마음에 남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여주에서부터 올라오는 길, 차 안에서 문득 나를 돌아보니 부끄러움이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그동안 책을 쓰고 극본이 교과서에 올라가고, 대학원에 다녀서 행복하다고 느낀 것은 사치고 오만이 아니었던가. 그냥 건강하게 태어나 부모 슬하에서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잘살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그들에겐 눈물겹도록 부러운 행복일 텐데….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이 또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재미있는 소리 이야기, 소리 풍경, 소리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일이다. 그 소리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게 해야겠다. 그래서 모두가 희망으로 들떠 그들의 얼굴이 미소짓고 마침내 행복에 겨워 활짝 웃도록 하고 싶다. 나쁜 말과 자극적인 소리에는 평생 상처받을 수 있지만 좋은 말과 좋은 소리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복을 찾는 소리일 테니까 말이다.

 

 

폴리 아티스트. 특집극 <효과맨의 꿈> 창작 극본 방송.

현재, 한국방송공사 음향효과 담당(1992년~)

프리랜서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