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수필가②

 

정진권 편

 

비닐 우산

 

언제 어디서 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집에도 헌 비닐 우산이 서너 개나 된다. 아마도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서 내가 사 들고 온 것들일 게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그래도 버리긴 아깝다.

비닐 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눈만 흘겨도 금방 부러져 나갈 듯한 살하며, 당장이라도 팔랑거리면서 살을 떠날 듯한 비닐 덮개하며,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주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우산이기도 하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날 때, 가난한 주머니로 손쉽게 사 쓸 수 있는 우산은 이것밖에 없다. 물건에 비해서 값이 싼지 비싼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一金 一百원也로 비를 안 맞을 수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비닐 우산의 덕이 아니겠는가?

값이 이렇기 때문에 어디다 놓고 와도 섭섭하지 않은 것이 또한 이 비닐 우산이다. 가령 우리가 퇴근길에 들른 대폿집에다 베우산을 놓고 나왔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우리의 대부분은 버스를 돌려 타고 그리로 뛰어갈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오래 손때 묻어 정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백 원짜리라면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가高價의 베우산을 받고 나온 날은 어디다 그 우산을 놓고 올까 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썩인 머리로 대포 한잔 하는 자리에서까지 우산 간수 때문에 걱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버리고 와도 께름할 게 없는 비닐 우산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비닐 우산을 받고 위를 쳐다보면, 우산 위에 떨어져 흐르는 물방울이 보인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내는 그 통랑한 음향도 들을 만한 것이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물방울의 그 청랑晴朗함, 묘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빗소리의 그 상쾌爽快함, 단돈 백 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藝術이다.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비닐 우산이 홀딱 뒤집혀지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잡는 한동안, 비록 옷은 다소의 비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즐거운 짜증을 체험할 수 있고, 또 행인行人들에게 가벼우나마 한때의 밝은 미소微笑를 선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날이 그날인 듯, 개미 쳇바퀴 돌 듯하는 우리의 무미無味한 생활 속에, 그것은 마치 반半박자짜리 쉼표처럼 싱그러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좀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다 보니, 부슬부슬 창밖에 비가 내린다. 나는 캐비닛 뒤에 두었던 헌 비닐 우산을 펴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살이 한 개 부러져 있었다. 비가 갑자기 세차졌다. 머리는 어떻게 가렸지만, 옷은 다 젖다시피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책가방을 든 어린 소녀少女였다.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나 하나의 머리도 가리기 어려운 곳을 예고도 없이 뛰어든 그 귀여운 침범자는 다만 미소微笑로써 양해를 구할 뿐 말이 없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소까지 함께 걸었다. 옷은 젖지만, 그래도 우산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마침내 소녀少女의 버스가 왔다. 미소微笑와 목례目禮를 함께 보내고 그는 떠났다. 이상한 공허감空虛感이 비닐 우산 속에 남았다. 그것도 百 원으로 살 수 없는 체험일 것이다. 나도 곧 버스를 탔다. 차가 M 정류장에 설 때였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정류소엔 우산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딸들, 오빠나 누나를 기다리는 오누이들, 남편을 마중나온 아낙네들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용하게도 그를 맞으러 나온 우산을 찾아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때 나는 차창 밖으로 한 젊은 여인女人을 보았다. 그녀는 비닐우산을 받쳐들고 버스 안을 살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신혼新婚의 여인女人이었을까?  

버스는 또 떠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몇 번이나 버스를 그냥 보냈을까? 말없이 떠나는 버스를 조금은 섭섭하게 바라볼 그녀의 고운 눈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버스에선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꼭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용하게 알아보고는 그녀의 비닐 우산 속으로 성큼 뛰어들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는 원망의 눈길과 미안해 하는 은근한 미소微笑, 찬비에 두 온 몸이 다 젖는대도 그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비닐 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효용성이 있음으로 하여 두고두고 보고 싶은 우산이다. 그리고 값싼 인생人生을 살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듯한 부실不實한 사람, 그런 몸으로나마 아이들의 머리 위에 내리는 찬비를 가려 주려고 버둥대는 삶, 비닐 우산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데도 적지 않은 것 같아서, 때때로 혼자 받고 비 오는 길을 쓸쓸히 걷는 우산이기도 하다.  

 

쪹 《계간 수필》은  ‘이 계절의 수필가’ 코너를 저자의 화보와 함께 게재하기로 했다. 이것은 기성과 신인의 구별 없이 이미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주목을 받을 만한 우수한 수필 한 편을 선정해서 그것이 지닌 숨은 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밝힘으로써 타성과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 수필계에 새로운 지적 충격을 주기 위해 마련 된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정진권

한국체육대학 명예교수. 전 문교부 편수관.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빛깔들의 합창》역해서 《한국고전수필선》등 《내 아내는 잘라 팔 머리가 없다》, 선집 《짜장면》《빛깔들의 합창》, 번역서 《한국 한시선》, 《한국고전수필선》.

 

 

은유적 표현의 미학적 울림

 

                                                                      해설_ 이태동

정진권 선생은 1935년생이다. 그래도 선생은 아직까지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근자에는 아포리즘에 가까운 모순 어법(oxymoron)의 미학으로 쓴  <효불효孝不孝에 관하여>라는 훌륭한 작품을 발표했는가 하면 국어 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숭 학술상’을 수상했다. 그가 사용하는 우리말은 항상 맑고 깨끗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정확하다. 월터 페이터가 “말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듯이, 그의 성품 또한 그의 작품처럼 따뜻하지만 지나침이 없고 결곡하다. 지난해 허세욱 선생이 타계한 후, 그를 기억하는 몇 마디 말을 해야 할 때 눈물을 보였지만 그것이 전혀 감상적인 눈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내면적으로 깊은 문학의 샘을 파왔었기 때문이다.

이번 봄호에 정진권 선생의 <비닐우산>을 ‘이 계절의 수필’로 선정한 이유는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삶을 바라보는 그의 문학적인 자세를 가장 잘 반영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닐우산>이 훌륭한 수필로서 성공하게 된 것은 그가 정성스럽게 끌질해한 자연스러운 언어와 탁월한 은유로서 삶의 도덕적 진실을 절제의 미학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이 작품은 비오는 날의 서정적인 거리 풍경을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 같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비닐우산이 라는 은유를 통해서 인간과 삶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비닐우산’의 은유는 니체가 말한 일종의 ‘차별화하려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일상적인 풍경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진권 선생이 말했듯이 비닐우산은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우산이다. 그래서 헝겊 우산과는 달리 잘 간수하기 위해 신경을 쓰지도 않고 아무 곳에나 둘 수 있는 하찮은 물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진권 선생의 시선은 사람이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것을 이야기할 때 헝겊 우산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비닐우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비닐우산’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풍경에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진권 선생은 ‘비닐우산’의 은유를 통해서 이 작품의 주제를 사랑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것을 사회적인 의미로 확대시키는 탁월한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정진권 선생이 이 작품에서 나타내고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거나 돕는 일은 귀하고 잘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못나고 비천하지만 순박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비가 꼭 죽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햇빛과는 대조되는 불행이나 어려운 일을 나타내주는 상징적 이미지이기 때문에,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주고 있다는 것이 값싼 비닐우산이라는 사실이 이것을 침묵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화자話者가 영국 신사의 스틱 모양의 튼튼하고 고급스러운 헝겊 우산을 두고 비오는 날의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비닐우산이 언제라도 비바람에 살이 부러지고 덮개가 찢어져서 날아갈 위험에 처해 있지만 스스로 비닐 포장을 펼치고 주변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히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스스로 비를 맞는 것은 고통이지만, 그 비닐우산 아래로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는” 책가방을 메고 “미소로써 양해를 구하면서” 뛰어 들어오는 아이에게 팔을 펴고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축복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비닐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다음과 같이 만들어내는 싱그러운 음악 소리는 분명히 침묵 속에서 타자他者를 위한 자신의 희생에서 얻어지는 초절超絶적인 기쁨의 상태를 나타내는 경지에 이르게까지 된다.

 

비닐우산을 받고 위를 쳐다보면, 우산 위에 떨어지며 내는 싱그러운 빗소리가 들린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그 맑은 빗방울, 묘한 리듬을 튕겨내는 그 싱그러운 빗소리, 단돈 백 원으로 사기에는 너무나 미안한 예술.

 

그런데 이 작품이 우리에게 수필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러한 도덕적인 감각과 분위기를 창조하는 은유적인 표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와 치밀한 구도構圖, 그리고 비오는 날 비닐우산 속에서 거리의 정류장에서 남편이 차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아내의 간절한 모습들에 나타난 겸양함의 미덕이 침묵 속의 미소만큼이나 우리들에게 미학적인 울림을 가져다 준다.

 

 

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